더 이상 자리를 내주지 않는 중력의 지점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35)

by 김요섭



1.

'모호한 관계'는 나를 상실하며, 우리와 '합일'하는 순간이다. '그녀의 생각'이 그에게로 향하는 확실성 속의 고통. 나로부터 나를 떼어내는 '시간의 미궁'은 서로를 떨어뜨려 놓는다. '무한한 거리'로 멀어지며,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불확실한 시간'. 풍성한 '불화'는 '거대한 구 속'으로 미끄러지는 '행복한 흩어짐'이다. 그곳으로의 초월하는 망각된 도취. 강요된 자상의 흔적은 '미지의 인식'으로 향한다.


2.

미끄러짐 속에도 '더 이상 자리를 내주지 않는 중력의 지점'은, 유동하는 부동자이다. 텅 비어 있는 심연에 도착한 무명자. 또 다른 어둠이 무릎을 껴안은 곳으로 향한다. '머물러 있으며', 극단적으로 움직이는 이름 없는 노마드. '망각'할 수 없는 '부동의 동자'는 지금 여기서 사랑을 나눈다. '의심'할 수 없는 확실성은 가장 멀리서 오는 감각. 시간을 잃어버린 순간은 '기다림' 없이 영원한 '중력'에 뿌리를 내린다. 풍성한 열매는 가장 '내밀한' 장소에 있는 갈라짐. '즐거운 흩어버림'에서 또 다른 생성을 집요하게 기다린다.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멀어져 가는 죽음을 앞둔 환상, 혹은 더 깊은 실체.



그녀가 서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서는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났다. 나의 고집과, 거의 집요함에 가까운 방식으로 그녀의 생각을 그에게로 향하도록 강요하는 나의 필요 때문에. 그녀는 고통을 느껴 끝내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조금도. 나중에요. 저를 좀 추스르게 해 줘요." 나는 내가 말한 불화, 그러니까 일종의 흥분, 미지의 인식, 거의 도취와 마찬가지인 어떤 상처를 겪었다. 그녀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ㅡ 그것은 납득 가능한 것이었고 그녀는 아무것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만 그라는 인물 때문에, 그녀를 잃고 나를 상실할까 봐 두려운 모호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그 관계를 단지 그녀뿐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하는 무한한 거리처럼 여겼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데도,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롭고 하지만 그만큼 더 불확실한 시간들을 거쳐 함께 존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지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내가 다시 그 시간의 미궁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누군가가 나를 그녀로부터, 그리고 또 다른 나로부터 떨어뜨려 놓았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것은 행복한 거대한 구 속으로 즐겁게 우리를 흩어 버리기만을 요구하는 미끄러짐 같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의심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만든 미끄러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 미끄러짐 속에서 의심의 감정을 통해 붙잡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을 증폭하고 감시를 늘린다. 내가 그녀를 감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좀 더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그녀의 행보를 이해하고 우리가 함께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만약 우리가 이미 서로에게 어둠으로 존재한다면, 망각이 더 이상 갈라놓을 수 없는 이 어둠의 내밀한 곳에서 합일되어 있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기다림에 더 이상 자리를 내주지 않는 중력의 지점에서 그가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이미 한 번 이상, 이러한 예상의 원을 넘었던 것 같다. 그는 방에 머물며 침대를 떠나지 않고, 움직이지 않은 채 머물러 있을 터였다. 그가 이러한 무거움에서 도피한다면 단순히 경솔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힘에 대한 증명도 아닐뿐더러 그 힘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그가 병증의 힘을 이용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65~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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