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인간」 모리스 블랑쇼 읽기(46)
1.
'두려움'과 '불안'은 '내가 만족할 수 없는' 시간. '이지러뜨려진' 얼굴은 비로소 진실에 다가선다. '자각할 수 없음'은 오직 '그 순간'에 빼앗긴 끔찍한 '도약'. '겁에 질린' 얼굴은 기이한 '착란'속에 나를 상실한다. '이면 아닌 이면'을 소유하는 텅 빈 중심. '다시 한번' 기다리는 망각은 오직 그에게로 향하는 '미지의 행복'이 된다. 완전한 '자유'이자 '공허', 무엇의 바깥이 아닌, 그 자체로서 '경이로움'.
2.
'만남의 진실'은 '창피한 내습'일 것이다. '영혼의 신성성'을 선물하는 침투는 때때로 '잔인'하고 '매정'하게 느껴진다. '사실'은 '혐오스러운 불행'이기도 한. 기묘한 '우정'은 '편협'하고, '공포'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인내심'을 갖는다. 약할 때 강함이 되는, '무한한 의지'의 운동. 고통스러운 '추락'인 '진실의 내리막'은 당신의 '힘과 도약'으로 향한다. 좀 더 '열광'하고, '행복'해지는, 끊임없는 '몰락'. 그녀의 울음은 '엄청난 인내'이며, '이지러뜨려진' 한 얼굴이 아닐까?
이는 또한 그를 한 얼굴에 다다르게 하는 운동이다. 그는 겁에 질린 큰 손으로 이 얼굴을 가렸는데, 그 손 뒤에는 두려움, 불안, 착란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 그 얼굴을 이지러뜨려서 다시 한번 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 후에야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그것은 바로 자유와 공허의 경이로운 순간이데, 미지의 행복이 만들어 낸 힘과 도약은 그 순간을 통해 우리의 만남을 빼앗아 갈 것이다.
고통스러운 꿈과 생각들은 내가 만족할 수 없고 자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가 했던 것과는 반대로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면 우정의 정신이거나, 생각이 아니라 손, 그를 두드리는 손만이 가능하다. 생각의 이면이 아닌 생각 그 자체여야 한다. 역겨움도 없고, 그를 알려 든다거나, 원하지 않는 생각. 만약 내가 그의 종착지가 되어야 한다면 이 운명은 그를 붙잡아 추락시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금방 이런 생각을 한다. 그것은 훨씬 더 맥 빠진 일이지만, 나에게 고요하고 보호받는 한 영혼의 신성성을 남기도록 하는 것이라고.
그런 건 있을 수도 없고 만약 있다 해도 단지 공포스러운 것일 뿐이다. 혐오스러운 불행, 아무도 고치지 못한 역겨운 상처, 매정한 사물, 흉측하고 더러운 것, 저속하고도 창피한 내습, 진부한 앙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한 번이 아니라 매번, 그것이 추락할 때마다 더 약해지고, 더 고통스러워지는 반면에 자아는 좀 더 힘을 발휘하게 되고, 열광적이며 좀 더 행복해진다. 자, 여기 우리가 갈 곳, 바로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만남의 진실이다. 이 진실의 내리막. 그녀는 그러한 사실을 알았을까?
만약 그녀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기다리는가? 나는 자문했지만 답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때때로 잔인해 보였고, 아니, 그녀는 잔인했고, 편협했고, 냉혹했다. 그녀가 돼 던진 것은 거칠게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무한한 의지와 엄청난 인내심을 보였는데, 예를 들면 짐승과 같은 존재에게 그러했다.
그녀는 그에게 얼마간의 이해심과 짐승들에게 보였던 우정을 보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녀를 공포스럽게 했을 테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어느 날엔가 내가 했던 말에 대답해 주었다. "당신은 그가 누군지 몰라요" ㅡ "네, 저는 그를 잘 몰라요. 하지만 저는 그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렇다. 그녀는 그를 받아들였다.
(83~8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