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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섭 Nov 12. 2022

기다리며, 계속해서 기다릴 뿐인

「나를 만지지 마라」 몸의 들림에 관한 에세이, 장 뤽 낭시 읽기(8)



1.

 절대적으로 떠남'은 부재하는 장소로 향한다. '부활'은 '삶으로의 복귀'가 아니기에. '거리를 둔 자'를 향해, '저곳'으로 멀어진다. 그는 '현존을 넘어선 광휘'. 지금 여기, '보이지 않지만 빛나는 이'이며, '빛 속에 없고, 빛 뒤에' 있는 영광. 절대적으로 '닿을 수 없음'이자, 완전히 '새로운 이음'이다. 죽음 이후 '삶의 연속'이 아닌, '죽음 속'에서 '단속(斷續)'되는. 불가능의 머무름으로 열린 '죽음의 품 안에' 있는 장소.


2.

 '부활'은 '재생 절차'가 아니다. '죽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닌, '죽음 앞에서 꿋꿋한 자세'를 견지하는 가능성. 이 '자세'가 '일으킴', 혹은 '들어 올림'의 존재 사건을 만든다. '환생, 다시 태어남, 재생'이 아닌, '들림'은 '죽음'에서 '어떤 삶의 진리'를 '일으켜 세움'인 것이다.


 그가 떠난 '무덤'에 머무르며, 단 한 번의 진리 사건을 '무'로 돌리지 않는. 오직 비어 있음을 지키는 일. 부활은 신성과의 '관계'속에 '있음'이다. 결코 '범접할 수 없음'에도 기다리며, 계속해서 기다릴 뿐인. 당신을 향한 끝없는 사랑이자, 기이한 망각.


(35~37p)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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