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사랑(1)

[100만 번 산 고양이] 인문적 읽기 / 영원회귀, 차이 없는 반복

by 김요섭
고양이.JPG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고양이는 왜 백만 년이나 죽지 않았을까요? 백만 번이나 죽고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기껏 백 년을 돈을 잘 벌고 건강하기를 희망하는 이에게 백만 년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건강과 돈 버는 것 너머를 상상하지 못하는 이는 '백만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나도' 알 수가 없지요.


어쩌면 백만 원처럼 감정 없는 숫자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풍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더라도 말이죠. 고양이 역시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백만 번을 반복하면서도 말이지요. 참을 수 없는 삶과 죽음이 가볍게 반복되는 것으로 서사는 시작됩니다.



영원회귀의 굴레


어떤 큰 사건도 궁극적인 차이도 발견하기 힘든 백만 년의 삶은 감옥일 것입니다.

권태를 넘어선 지독한 권태감으로, 버틸 수 없어서 죽고, 살 수가 없어 죽기를 반복하는 일이겠지요. 원하지 않는 비슷한 삶을 백만 번 넘게 반복하는 것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사유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마치 민머리를 내밀고 비바람을 견디는 거대한 암석의 시간처럼 말입니다. 감정 없는 사물이나 가능한 시간이 아닐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고통이 비슷할 것입니다.


영원히 돌아오는 백만 년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입니다.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고양이는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존재를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삶이 축복은커녕 '또 살아내야 하나'라는 비극의 반복이었을 것입니다.

고양이는 백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표현에서 그것이 드러납니다. 감정이 메말라버린 고양이는 돌처럼 딱딱해져 있지요. 어떤 대상을 만나도, 어떤 삶을 살더라도 결코 사랑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사랑했지만 누구도 사랑하지 못한 삶


고양이는 한때 '왕, 뱃사공, 마술사, 도둑, 할머니, 여자 아이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방식대로 고양이를 대했습니다. 자기 일상 속에 고양이를 물건처럼 갖다 놓고 쓰다듬습니다. 누구도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양이는 그들을 싫어했지요. 갖가지 사고로 고양이를 죽게 만드는 것도 그들의 이유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어쩌면 다채롭게 죽습니다. 전쟁 중에 날아온 화살이, 바다에 떨어져서, 서커스 중에 톱으로 잘려서, 도둑질 중 개에게 물려서, 세월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의 포대기 끈에 졸려서 죽지요. 고양이의 죽음은 이유가 각기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동일합니다. 단 한 번도 존재 자체로 사랑받지 못했던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이유가 다르지 않지요.


그들의 어쩌면 평범한 일상이 고양이를 죽게 합니다.

그러나 고양이의 존재는 오직 죽을 때에만 애도의 형식으로 발현됩니다. 인간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깨닫게 되지요. 고양이는 외로움을 달래는 대상, 너머의 존재였다는 사실을. 고양이는 부재를 통해서만 자신이 드러나는 역설적 존재로 묘사됩니다.


왜 고양이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품게 되었을까요? 인간들이 단지 욕망의 배설구처럼 고양이를 대했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 만져지며 고양이는 소비되고, 껴안음을 당하며 고양이는 사라집니다.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으로써 고양이는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사랑했지만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했는 진실은 오직 죽음으로만 애도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제 가는 곳마다, 카페에서나, 거리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음이라는 시선으로,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죽어야 하는 존재들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 사실만큼이나 분명하게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그 사실을 결코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 [애도일기], 롤랑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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