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사랑(2)

[100만 번 산 고양이] 인문적 읽기 / 사자의 정신, 나르시시즘

by 김요섭
고양이.JPG



사자가 된 고양이


누구의 것으로 죽음을 반복하던 고양이는 이제 거리에서 태어납니다.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으며, 자기를 무척 좋아했다'는 문장이 돋보입니다. 드디어 자신만의 존재가 되었지요. 길 위의 삶은 대체로 만족스럽습니다. 암고양이는 갖은 선물을 하고 그의 신부가 되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고양이는 정을 주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요.


낙타의 삶을 벗어나 사자의 정신을 획득한 고양이는 그것 자체로 행복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알지 못했지요. 오랜 세월을 일방적 관심을 받아왔기에 거부감이 앞선 것 같습니다. 자기애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고양이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낯선 고양이의 등장에서 드러납니다.


어느 날 '딱 한 마리, 고양이를 본 척도 하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나타납니다.

그는 새하얀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나는 백만 번 죽어봤어, 서커스 단에도 있었고'라며 자랑합니다. 하지만 흰 고양이는 '그래'라고 대꾸할 뿐입니다.



사자의 정신의 한계


고양이는 백만 번을 죽으면서 비로소 자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이제 자기를 찾았을 뿐이지요. 자신 만을 사랑하는 정신은 불완전합니다. 홀로 섰다고 생각하는 주체의 한계는 그의 말속에 온전히 드러납니다.


백만 번 죽은 횟수를 자랑하는 고양이는 자신이 부정하는 것에 기대고 있지요. 백만 번 죽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서커스 단에 있었다는 과거 역시 그가 싫어했던 마술사의 소유로서 가능했던 것이었지요. 벗어났다고 생각한 과거는 여전히 고양이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왜 사자의 정신은 자유롭지 않을까요? 주인에게 'NO'라고 외치고 길 위의 삶을 선택했으면 된 것 아닌가요?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그럼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요?


니체가 말한 사자의 정신은 강합니다. 자신을 지배하던 이를 향해 '나는 당신의 노예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것은 '힘의 의지'가 다분하지요. 하지만 '당신의 노예'가 아닌 것과 '온전히 자유로운 나'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사자는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자신의 존재가 자기가 부정하는 것의 대척점에만 머무르기 때문이지요. 과거에 대한 부정이 자기 현존재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에의 의지로 자기만을 사랑하는 고양이는 아직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타자가 들어올 빈틈이 없습니다. '빈틈'을 모르는 사자의 정신은 결코 '타자'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빈틈'의 사유에서 '아름다움'은 스며들어올 수 있지요. 사자는 결코 진정한 아름다움을 모르며, 사랑도 알지 못하지요. 이는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타자를 통해 여실히 드러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사랑을 알지 못했지요.


아이의 정신이 궁금하신가요? 다음 연재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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