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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섭 Mar 02. 2023

일생을 보다 넓은 전체 안으로 위치시키려는 의지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죽음에 대하여」 읽기(6)



1.

  '위험'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근본적 취약성'을 지닌 우리의 몸. '모든 틈새'로 열린 '위험성'은 항상 '불확실성' 안에 있다. '미래의 부재'로 이끄는 완벽한 '절망'. '장래 일체를 파괴'하는 절대적으로 '무관한' 바깥은, '현세'와는 너무 멀리 있다. 나만은 예외이고 싶은 '방어기제'. 극단적 부정성은 오직 타인의 문제로 '국한'시킬 뿐이다. '전가'될 수 없는 것을 '미루고 지연시키는'. 의식의 틈새에 똬리 튼, '본질적 기만'.


2.

  알고 있으나, '전적'으로 '수긍'하지 않는. 예정된 끝은 도무지 품어지지 않는다. 어떤 돌파도 허락하지 않는, 불가능성 그 자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열려있는 '가능성의 문'은, 어쩌면 도착 시점을 '알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닐까.


3.

  희미한 빛은 삶 속에서 새로운 '합목적성(finalite)'를 찾고자 한다. 목적지가 완전히 닫혔을지라도 서늘한 열정을 지속하는 생명의 약동. '일생을 보다 넓은 전체' 안으로 '위치'시키려는 의지는, 비로소 또 다른 '의미'를 생성시킨다. '한 운명'의 '닫힘' 이후에 남겨진 밝은 '어둠'. 혹은 '의미가 비어있는 메시지'의 가득 들어찬 상태 같은. '일종의 신비'는 '구체적 희망'은 결코 아닐 것이다. 


(28~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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