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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섭 Jun 27. 2023

혀 끝에 맴도는 어떤 이름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부테스」 읽기(16)



1.

  '여기로 와요, 즉시'. 세이렌의 유혹은 '개별성'을 무너뜨린다. 언어적 설명 없는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한 노래. '여기(ici)'는 곧 '그곳(la)'이며, 밝힐 수 없는 공동의 장소이다. 에우리디케가 뒤로 '끌려가는', 오르페우스가 돌아본 바로 그곳. '머리가 헝클어진 여자들'이 오르페우스를 향해 '손을 휘젓는다'. 당신의 '총체적 해체'가 일어나는, '붙잡을 수 없는' 심연의 밑바닥. 키타라 소리로 대적하지만 그의 음악은 진짜가 아니다.


2.

  '벌거숭이' 여자들에 의해 몸이 찢겨 죽은 오르페우스. 그의 머리가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죽음과 분리되지 않은 시원적 존재로의 귀환. 비로소 오르페우스의 입에서 최초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사라진 여자'를 '되뇌고' 난 뒤에야 시작된 존재의 함성. 오직 혀 끝에 맴도는 어떤 '이름'은 그곳으로 재-연결된 기억이다. 시뻘건 피를 '대양'까지 실어 나르는 기이한 '신음소리'. 강의 연안이 그의 목소리에 응답한다. '숨이 끊어졌음'에도 요동치며 웅성대는 '혀'. 비로소 물속에서 누군가 고개를 돌린다.

'마지막 노래와 함께,

심연으로 사라져 가는

가장 오래된 음악.  


(77~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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