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 TAR」 토드 필드 감독, 케이트 블란쳇 주연, 2023 (4)
"자아와 정체성을 내려놓고, 신 앞에 서야 하는 거야"
1.
음악적 절대를 향해 있는 주체는 상대주의에 머무를 수 없다. 이념적 잣대, 호명된 것으로 환원될 뿐인 어떤 이분법. 울타리를 공유하는 관계는, 전적인 타자성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이곳에 대조되는 저곳이 아닌, 완전히 다른 바깥. 개별적 인격, 성적 취향, 인종적 편견을 넘어선, 낯선 평균율.
편협한 반항과 낮은 자의 증오심으로는, 결단코 그곳에 다다르지 못한다. 그것 너머, '어떤 절대'를 지향하는 '줄리어드 씬'의 대화. 무엇보다 확실하며 가장 모호한 순간은, 모든 것을 부수며 모든 것을 감싼다. 도무지 만질 수 없음으로 어루만질 뿐인, 불가능 속의 기이한 정주. 전적인 아름다움은 오직 절대적 타자를 향한 주체만이, 품을 수 없는 채로 품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EKD3UTbNGhA&list=OLAK5uy_k_uWQKYBaljdfVDtXD9V__2hB73bf4q9k&index=18
"음악을 지휘하려면 작곡가를 존중해야 해."
2.
그녀가 말하는 '작곡가에 대한 존중'은, 적당한 존경일 수 없다. 상대적 관계를 초월하는, 타자를 향한 몰락. 그는 신성의 계시처럼, 악보에 '응답'한다. 작곡가에게 도착했던 '무한'이 다시 한번, 도래하기를. 극단적 낮음은 무릎을 꿇고 엎드릴 뿐이다. 지극히 높음을 맞이하는 무엇보다 낯선 시차. 희미한 빛의 형태는 계시받은 얼굴을 향해, 느닷없이 도착한다. 오직 에로스 그 자체이기도 한, 끝 간 데 없는 아름다움.
'나 진리는 떠나간다'
어떤 무명은 완성의 순간, 절대적 장소를 선물하며 사라져 간다. 텅 빔이자 무엇보다 가득 들어 찬, 찰나. 오직 타자를 타자인 채로 환대하며, 철저히 해체되는 순간의 동시성이기도 한. 이는 불가능 속에서도 어떤 가능성을 열어젖히기 위해서, 계속 '움직'인다.(번스타인, '음악의 본질') 무엇보다 전통을 존중하며, 지속해 가는 계시받은 단독성. 오직 입회된 자에게 허락되는, 단 한 번의 사랑을 기다릴 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