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추락 이후, 옛 집을 찾은 리디아. 엄마의 간청에도 오지 않던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지금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몰락의 간극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허기진 존재. 그녀는 어린 시절 받은 메달을 목에 걸친다. 영화 중반, 자신의 기사를 슬쩍 스크랩해 두는 것과 유사한 나르시스적 자의식. 정주할 곳을 잃은 주체의 대리보충은, 벌거벗겨진 몸을 과거의 기억으로 덮으려 할 뿐이다.
복도에서 마주친, 남루한 행색의 오빠. 그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성공했을 때처럼, 여전히 오만한 표정이다. 그런 리디아를 관심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알바는 아니지만, 엄마가 네가 올 거라고 했어."
2.
그녀는 오래된 벽장으로 손을 뻗어, 수많은 녹화 테이프 중 하나를 고른다. 낡은 흑백 TV로 재생되는 번스타인의 시간. 어린 시절의 우상은 지휘를 멈추고, 리디아를 향해 돌아선다.
"너무 깊어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은, 오직 표현될 수 없는 방식으로만... 언어가 아닌 어떤 음으로..."
낯선 열림은 그의 목소리와 함께 느닷없이 시작된다.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는 리디아. 마지막까지 머뭇거리던 아니무스는 "음의 무한한 변화가, 음악의 본질"이라는 부분에서, 하릴없이 오열한다. 태곳적 장소이자, 죽음의 공간이기도 한 그곳에서, 완전히 균열된 주체. 단단하기만 했던 모나드에게 도착한, 전적인 신현은 그녀를 산산이 해체시킨다. 비로소 부드러운 아니마의 가능성을 입는 리디아.
"지휘자의 집은 지휘대 밖에 없죠. 우리는 유동하는 존재예요".
3.
그녀가 객원지휘자를 퇴출시킬 때 했던 말을, 정작 본인은 살아내지 못한다. 결코 정주를 허용하지 않는, '신정의사랑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했던 지배욕. 그러나 안주하며, 절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존재는 무엇보다 위험한 순간에 처해질 뿐이다. 얼굴을 크게 다치기도 하며, 단순 근육통이라 생각했던 것이, 신경이상으로 서서히 감각이 사라질 것이라, 선고받기도 하는.
영화 초입, 아바도의 말러 5번과 번스타인의 말러 9번의 LP 이미지를, 나란히 보여주던 것처럼. 그녀는 모태적 장소에서, 시작과 끝이 중첩된 지점을 새롭게 발견한다. 짓이겨진 전체성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감각. 순식간에 들이닥친 사태는 그녀를 어떤 시원적 순간으로 데려간다. 균열된 주체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하는, 재앙의 아름다움.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타쿠를 위한 음악을 지휘하는, 그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어떤 열정. 리디아가 끝내 공연할 수 없었던 말러 5번 교향곡은, 또 다른 음악으로 유동하며 이어진다. 비록 게임을 위한 음악일지라도, 계속하는 타르(영화 속 그녀의 책 제목처럼). 그녀의 지배에 응답한 코스프레족들의 가슴은 북받쳐 오른다. 존재자들의 함성과 함께 연주되는, "5함대여 전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