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때, 김요섭, 그린비 2024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여러 댓글 중, 곱씹고 싶은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글쓴이 : '어린 왕자 JW' /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19750944
17개의 강의는 학생과의 대화, 영화를 통한 예시,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움에 머무는 낯선 생각’의 구성으로 반복된다. 제시된 개념은 예시를 통해 이해할 수 있으며, 책과 함께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깊게 끄덕이며, 어떤 부분에서는 괜스레 반박하고 싶어 진다. 헤어질 결심, 드라이브 마이카, 매트릭스, 피그, 타르, 기생충, 스즈메의 문단속, 에에올(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까지 재밌게 봤던 영화들이 예시로 잔뜩 나와 반갑기도 하고, 이해를 돕는 부분도 확실히 몰입을 도와준다.
먹고사는 것에 지칠 때면, 살아있는 의미를 아름다움을 찾는 것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돈벌이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것들에 자주 관심을 두곤 했다. 나는 무용한 것의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퇴근하면 자주 씨네큐브에 갔던 사람이라, 약 2시간으로 압축된 아름다움을 통해, 회생되어 다시 생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읽으면서 그 시간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고된 일상에 도착하는 '아름다움의 구원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생존을 위한 시간에서 벗어납니다. 필자는 '씨네큐브'에서 독립 영화를 보며,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죠. 특히 마지막 문장,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때』를 읽으며, 그 시간이 '계속해서 떠올랐다'는 표현은 울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바깥의 기억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찬사보다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군요.
저도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틈틈이 독립 영화관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에 거리를 한참 서성이기도 했죠. 아마도, 어떤 우울은 소모되는 상품처럼 타자를 취급하는 세계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감정일 것입니다.
책에 소개된 <멜랑콜리아>의 '저스틴'처럼, 우리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교환 시스템에서 소진되며, 필연적으로 우울감을 겪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죠. 필자 역시 2시간의 영화 상영이 끝나면, 어쩔 수 없이 생업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멜랑콜리아를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그곳.
절대적 타자(아름다움)와 마주치는 무한한 감각은 이 세계에서 분리된 나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순식간에 바꿉니다. 크레바스처럼 아득한 불가능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선사하죠. 혹시 여러분은 그런 아름다운 파토스로 빠져들어가고 싶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