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감의 무한한 가능성, 창조적 정의
「신정의사랑아름다움」 장 뤽 낭시 읽기(2)
'정의, 신과 같은 의미에서의 정의, 즉 세계 전체를 위한 정의는 모든 것이 잘 분배되어 더 이상 형성해야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세계의 창조는 마치 레고놀이 같이 나타나고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것입니다.' (40p)
1.
우리는 변함없는 사랑 같은 완벽한 상태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가장 완전한 순간에도 둘 사이는 결코 동일하지 않으며 어떤 시차 안에서 하나가 될 뿐입니다. 극단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체로 묶이는 순간. 그것은 우리 안의 비존재적인 지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 안에 오래도록 잊혀져 있던 무엇, 나보다 먼저 있었으나 물러나 있던 텅 빔. 본래적 실존의 원형적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 그것이 고착된 주체를 허물고, 새로운 '분배'와 '형성'을 이루어 갈 때, 비로소 진정한 정의는 가능한 것이죠.
2.
낭시적 정의는 신이 자신의 완벽함에 머무르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을 극단적으로 낮추었을 때 '세계를 위한 정의'가 실현된 것 말입니다. 이는 단지 신적 영역에만 속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다른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신의 형상이 도착합니다. 도무지 불가능한 순간, 어떤 '창조'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리죠.
그것은 결코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상태, 나는 여기 있고 너는 거기 있음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건 변형 가능성이 없는 단지 '레고놀이' 같은 것이겠죠. 자신에게 주어진 소여를 뛰어넘는 순간, 그 건너감의 무한한 가능성에 '신정의사랑아름다움'은 머물 수 있다고 낭시는 말합니다. 그것이 그가 강조하는 '열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