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요섭 7시간전

불확정적인 타자를 향해 자신의 전부를 주는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장 뤽 낭시 읽기(3)



'신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해보죠. 물론 사랑은 어디에도 없고 동시에 도처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겠지만, 잘 아시다시피 사랑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사랑의 상징인 하트를 그려 넣은 카드를 보낸다 해도 말이죠. 그것은 사랑의 신호이지 사랑 그 자체는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46p)


1. 

  '도처에 있으나 어디에도 없음'은 기다림으로 연결됩니다. '하트를 그려 넣은 카드'가 상대에게 도착한 뒤 그의 마음속에 뜨거운 무엇이 살아날 때. 카드를 보낸 나와 그의 마음이 시차를 두고 동시적 상태가 되는 사건. 그것은 사랑의 현상이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불확실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 카드가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릴 수도, 상대에게 그저 적당한 관심의 표현 정도로 치부되고 사라지고 말지도 모를 일이죠. 


2.

  그러나 어떤 기다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확정적인 타자를 향해 자신의 전부를 주기도 합니다. 도처에 부재하는 사랑은 그러한 '약함' 때문에 지금 여기 현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지요. 만약 상대가 그 낯선 가능성에 마음을 열 때, '어디에도 없던' 사랑은 뻔한 '하트'를 매개로도 각자의 마음속에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며, 어쩌면 '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닐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