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사이

by 정미옥

6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금세 어둠이 내려앉았다.

동지가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해가 이렇게 짧아졌나 싶다.

가을이 깊어간다. 겨울을 기다리는 가을만큼 마음도 쓸쓸하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몸이 축 처진다.

몸이 느끼는 계절은 이미 겨울이었다.

기운이 빠지니 삶의 향기도 옅어지는 듯하다.


토요일 오전, 전주학생교육문화관에서 열린 독서동아리 리더 역량강화 강의에 다녀왔다.

참가자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었고, 우리 팀 네 명 중 세 명은 젊은 엄마들이었다.

팀 이름을 정하라는 말에 아이디어가 통통 튀었다.

하얀 털 가디건을 입은 분을 보며 누군가 “양 같다”고 했고,

회색 옷을 입은 분은 “염소 같네”라며 웃었다.

나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어서 “유니콘”이라 불렸고,

남은 한 분은 귀엽다며 “코알라”가 되었다.

그렇게 양, 염소, 유니콘, 코알라가 만나 ‘동물농장’이 만들어졌다.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었지만, 책이라는 매개 덕분에 금세 마음이 풀렸다.

두 시간 동안 책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라포를 쌓았다.


일요일에는 소설 소모임 선정도서, 한강 작가의 『검은 사슴』을 읽었다.

도입부는 쉽지 않았다. 며칠 동안 100쪽 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하루를 온전히 쏟아 남은 이야기를 끝까지 읽었다.

책의 두께가 주는 압박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이 작품을 이십대에 썼다는 사실이었다.


한강의 문장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 같다.

인물의 내면과 주변 공기가 맞닿는 순간마다 가슴이 벅찼다.

564쪽을 완독하고 나서야, 오래 덮어두었던 마음의 상처를 마주했다.

보지 않으려 했던 그 상처 속에서야

비로소 서로를 치유할 길이 보였다.


소설 소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 시간 동안 위로받았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마음 한쪽이 조금은 따뜻해졌다.


가을이 깊어간다. 겨울의 문턱이다.

찬 바람이 불지만, 그 속에서 마음의 불씨 하나는 지켜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