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사슴을 읽고 빛을향하여

by 정미옥

한강의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소설 소모임에서 함께 읽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나는 네 인물—인영, 명윤, 의선, 장종욱—을 따라 천천히 어둠의 골짜기를 걸었다. 각각 다른 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 같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실처럼 얇고 질긴 연이 흐르고 있었다.


소설은 꿈으로 시작해 꿈으로 끝난다.

한강의 세계에서 ‘꿈’은 도망도, 위로도 아니다.

그저 더 깊은 내면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나는 그 계단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멈춰 서 있었다.

내 안에도 오래된 검은 것이 있음을, 그걸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읽다가 문득, 인영의 언니 민영에 관한 장면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한강의 문장은 늘 그렇듯, 상처의 가장 깊은 부분을 정확히 건드린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 닿으면 아픈 지점.

그곳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드러낸다.


작품 속 사람들은 모두 검은 아픔을 품고 있다.

말하지 않은 채 견뎌온 시간들, 스스로도 모른 척하고 싶었던 마음들.

한강은 그 과거를 들춰내고, 우리는 그 모습에 불편해하며도 끝내 눈을 돌리지 못하게 된다.


‘검은 사슴’은 무엇일까.

나는 그 사슴을, 빛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상징처럼 느꼈다.

빛을 꿈꾸지만, 그 꿈을 위해 뿔과 이빨 같은 자기 일부를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존재들.

마침내 사라지지만, 빛을 한번은 보고 싶었던 생.

우리 삶도 어쩌면 그런 모습에 닮아 있지 않을까.


의선은 그 상징을 몸으로 견뎠던 인물이다.

하루 네 시간뿐인 햇빛, 이해받지 못한 몸의 기억들, 보살핌과 방치가 뒤섞인 성장.

영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선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의선은 상처투성이였던 자신을 넘어 인영을 품어준다.

악몽에 깨어나는 밤마다 의선의 손길은 조용히, 따뜻하게 인영을 감싼다.


의선은 편지를 쓰고도 보내지 못한다.

대신 바다 사진 한 장을 건넨다.

말보다 더 깊은 마음을 담아 전한 그 사진은,

"너도 괜찮아지길 바란다"라는 아주 작은 기도의 모양 같았다.


바다는 겉으로는 잔잔하지만 속에서는 늘 부글거린다.

삶도 그렇다.

평온해 보이는 날들 아래에는 끝내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몸살처럼 들끓는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서로를 동정이 아닌 연민으로 바라보며,

서로의 어둠을 모른 척하지 않으면서도 껴안으며.


검은 사슴은 여전히 바닷속을 떠돌 것이다.

그러나 빛을 갈망했던 그것의 마음처럼,

우리도 각자의 어둠을 끌어안고 또 하루를 살아낸다.

빛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더 깊은 곳까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