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인공지능의 미래
1. 序
지난 2016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위치한 포스즌스 호텔에서 열리는 한 이벤트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10년 동안 세계 바둑을 석권해 인간 바둑 최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이세돌 9단에게 인공지능 알파고가 도전장을 내밀었고,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열리게 된 것이다. 사실 인공지능 알파고는 이미 2015년 10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판 후이 2단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그 기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판 후이 2단과의 대국 기보를 살펴본 바둑계 전문가들은 알파고의 승리 이유를 알파고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판 후이의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도전을 받아들인 이유도 아마 판 후이 2단과의 대국 기보를 살펴본 후 어느 정도 승리를 자신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손석희/JTBC 앵커] 알파고 개발자는 아무튼 승률을 50대 50으로 보고 있던데…
[이세돌 9단/프로기사] 그것은 아무래도 그쪽 분들이 엔지니어죠, 바둑을 아무래도 잘 모르시다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 5대 5는 아니고요. 5대 0이냐, 4대 1이냐인데, 한 판 질 확률이 제 생각에는 20~30% 정도가 되지 않을까. 거의 5대0 확률이 가장 높다고 봅니다. (JTBC. 2016년 1월 28알)
이세돌 9단뿐만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세계 바둑계 전문가들은 모두 이세돌 9단은 판 후이 2단과는 다르다며 입을 모아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견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대국이 있기 하루 전인 3월 8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완승을 장담할 수 없다며 한발짝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열린 다음날인 2016년 3월 10일, 주요 일간지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첫 대국 결과를 머리기사로 다뤘다.
신문뿐만 아니라 SNS에서도 많은 네티즌들이 2016년 3월 9일을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패배한 첫 번째 날로 기억해야 한다며 무수히 많은 말들을 쏟아 냈다. 그 말들은 대부분 인공지능이 만들어 갈 안락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공포가 압도적이었다.
1) 반상 위의 우주, 바둑
인공지능이 그저 바둑을 이겼을 뿐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마치 인류의 종말이라도 목도한 듯 불안해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바둑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거의 무한에 수렴하는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 때문일 것이다. 바둑은 기원전 약 2,300여 년 전 중국의 요∙순 임금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요순창시설이 있지만, 최근에는 농경사회였던 고대에 별자리를 표시하던 도구가 발전해 오늘날의 바둑이 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한국기원 홈페이지에서 참조).
그 유래가 어떻든, 바둑은 인류 문명 초기에 시작되어 반 만 년의 역사 동안 인간과 함께 해 온 유일무이한 보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19개의 가로와 세로줄이 교차되는 지점에 번갈아가며 흰 돌과 검은 돌을 놓고, 상대방 돌을 포위하면 잡는 지극히 간단한 룰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한 규칙이 없는 만큼 활동이 지나치게 자유롭다 보니 그 경우의 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학적 계산을 단순하게만 적용해도 361!(팩토리얼)이 나온다. 2016년 1월 20일, 바둑판에서 가능한 배치의 수를 완전히 계산해 보니 무려 자릿수가 57개인 읽을 수도 없는 수가 나왔다.
208,168,199,381,979,984,699,478,633,344,862,770,286,522,453,884,530,548,425,639,456,820,927,419,612,738,015,378,525,648,451,698,519,643,907,259,916,015,628,128,546,089,888,314,427,129,715,319,317,557,736,620,397,247,064,840,935
이는 10의 171제곱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 수인 10의 80제곱 보다도 많은 수로 8~16코어, 192GB 램, 15TB 용량을 가진 서버도 몇 달을 걸려야 계산할 수 있는 수이다(바둑, 가로세로 19줄… 우주보다 큰 세계”, <프리미엄 조선>, 2014년 12월 11일). 하지만 실재 바둑에서는 상대방이 따낸 자리에 다시 바둑돌을 놓을 수도 있고, 또 패라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그 경우의 수는 무한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경우의 수가 무한하다면 그것은 계산의 영역이 아닌 직관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바둑계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바둑을 단지 수학적 경우의 수로만 인식하고 있는 과학자들조차도 계산에 기초한 알파고가 인간을 이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둑은 지난 반 만 년의 역사 동안 동일한 기보가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창의적 직관의 영역이었다. 적어도 지난 2016년 3월 9일, 한낱(?) 인간에 의해 창조된 인공지능이 바둑 인간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을 꺾기 전까지는 그랬다. 인간의 창조물인 인공지능이 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이긴 것에 대한 영광은 인간에게 돌아가야 할까, 신에게 돌아가야 할까?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알파고의 승리는 아직 ‘결정된’ 미래가 아닌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일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만들어 갈 미래가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는 인류 앞에 놓여진 새로운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 숙제를 풀기 위해 먼저 알파고에 대해 살펴보자.
2) 인간의 뇌를 복제한 인공지능, 알파고
알파고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다. 라틴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파’는 시작의 겸손함일 수도 있고, 최고라는 오만일 수도 있다. 겸손과 오만의 문자 ‘알파’ 뒤에 붙은 ‘Go’는 일본어로 바둑을 뜻하는 碁(바둑 기. 일본어 음독은 "고")를 의미한다. 알파고는 1,920개의 CPU와 280개의 GPU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는 매우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이다. 하지만 물리적 스펙만으로 알파고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어마어마한 스펙의 성능 좋은 컴퓨터를 움직이는 알파고의 알고리듬은 인간의 두뇌처럼 신경망 구조로 작동한다. 신경망 구조의 핵심은, 중요한 것만 추려서 걸러내는 수법으로 효용성이 떨어지는 경우의 수를 빨리 내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알파고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연산하지 않고 가지 치기를 통해 중요한 것만 걸러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신경망 구조는 두 가지로 이뤄져 있다. 정책망과 가치망이다. 우선 정책망(policy network)은 전문 기사 또는 고수들의 바둑 기보를 통해 그 전문 기사들의 ‘다음 수’를 예측하는 능력을 학습하는 것이다. 알파고는 일류 프로 바둑기사의 과거 기보 3,000만 수를 학습시킨 뒤 이 바둑판 상태를 추출해 데이터로 사용했다. 프로 바둑기사들의 착수 전략을 최대한 모방할 수 있도록 학습했다. 이를 바탕으로 12계층으로 된 첫 번째 인공신경망인 정책망이 만들어졌다.
가치망(value network)은 해당 위치에 바둑돌을 놓았을 때 승리 확률을 예측하는 신경망이다. 쌍둥이 알파고 프로그램과 10만 번 이상 대국을 펼치면서 승리한 판의 수들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쌓았다. 알파고는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2개의 신경망 구조를 활용해 최적의 한 수를 찾아낸다.가지망(Value Network)를 통해 상대방이 둔 수에 대응하는 최적의 수를 탐색하고, 정책망(Policy Network)은 가치망에 의해 찾아낸 최적의 수 중 어떤 수를 선택에 착수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알파고는 심화학습(Deep Learning)과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딥마인드의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를 개발하면서 프로 바둑기사들의 대국 기보 3,000만 건을 입력시켰으며 이 기보를 바탕으로 쉬지 않고 바둑을 두며 배우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딥마인드의 연구총괄인 데이비드 실버는 “알파고는 1,000년에 해당하는 시간만큼 바둑을 학습했다.”고 밝혔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펼치며 이세돌 9단이 둔 수를 분석하고, 어디에 둘 것인지를 계산하고, 가장 승률이 높은 수를 결정해 착수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는 마침내 인간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 9단에게 4대 1로 완승을 거두었다.
0과 1로 이루어져 있으며 참과 거짓 만을 판별할 수 있도록 설계된 디지털 신호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을 위협할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인간의 뇌는 물리적으로 작은 신경세포, 즉 뉴런의 집합체이다. 인공지능도 수없이 많은 0과 1이 마치 신명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되고, 겹겹이 쌓이면서 마치 인간의 뇌처럼 작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알파고는 48층의 계층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3) 인공지능에 대한 최초의 상상, 프랑켄슈타인
인공지능에 대한 인류 최초의 상상은 1818년 영국의 소설가 메리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또한 최초의 SF(Science Fiction)로 거론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과학 문명은 과거 누군가의 상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늘을 나는 상상, 지구를 떠나 우주로 여행을 하는 상상, 그리고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까지…. 프랑켄슈타인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만들어 갈 미래의 모습을 소설이나 만화, 그리고 영화를 통해 상상해 왔다. 상상 속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는 노동을 대신해 주는 하인의 모습으로, 또는 친구가 되어 인간을 도와주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아놀드 슈와제네거가 주연한 터미네이터에서는 인공지능이 핵전쟁을 일으켜 인간을 공격하는 무시무시한 적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상상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만들어 갈 미래는 과연 인간의 바람대로 유토피아가 될까, 아니면 인류를 파괴하는 디스토피아가 될까?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을 통해 인간의 상상 영역에서 현실의 문제로 급부상한 인공지능에 대해 대중들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점점 더 옅어져 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과 달리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인 인공지능에게 정치와 정책을 맡겨 보자는 주장도 충분히 제기될 법하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에 대한 이슈가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미래 사회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교육분야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다양한 영역과 관점들이 있기에 인공지능에 대한 문제는 이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사회학적 통찰이 필요하다. 필자의 한계와 주어진 시간,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의 깊은 연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동시대를 함께 헤쳐나가고 있는 인류의 집단지성에게 그 역할을 넘기고자 한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