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진정한’ 약자는 과연 누구일까?
첫 질문부터 모순에 빠졌다. 만약 누군가를 ‘진정한’ 약자로 규정하려면 그 약자와 비교되는 모든 자는 강자여야 한다. 약자는 절대적 개념이 아닌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강자와 약자는 상황에 따라 그 입장이 뒤바뀔 수 있다. 예전에는 나이가 많거나 힘이 센 사람이 강자였다. 그리고 강자는 약자를 나이나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약자는 강자에게 나는 약자니 강자인 당신이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만약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지 않고 억압한다면 사회적 지탄을 면할 수 없다. 그런 사회 속에서 약자뿐만 아니라 강자도 ‘약자 코스프레’에 몰입한다.
내가 제일 처음 경험한 가장 강력한 약자는 불효 막심하게도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전쟁 통에 초등 교육도 제대로 못 받으셨다. 학창 시절,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너무 억울해 가끔 항변을 할라치면...
그래, 엄마는 못 배워서 그런다. 배운 네가 이해 좀 하면 안 되니?
이런 상황에서 더 나가면 난 패륜아가 된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물러 서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내가 부모의 위치가 되었다. 구질구질한 잡정이 많은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자신이 낳고, 양육을 하고 있는 약자인 아이들에게 끌려 다닌다. 아이들은 아무리 막 나가도 자신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차례의 ‘간 보기’를 통해 깨닫는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 나오는 은자의 딸은 대놓고 엄마 이름을 부르고 막말이 일상인 소위 패륜아다. 정해인이 엄마한테 왜 그렇게 막 하느냐고 물으니 엄마가 자신을 아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뻔뻔하게 대답한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대충 사춘기 전후가 되면 힘으로도, 논리로도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저 통제의 대상이 아닌, 자아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니...
태어나는 것 자체가 자발성에 의한 것이 아니니 “누가 낳아달라고 했냐?”는 말에도, 비교의 기준이 다르니 “엄마, 아빠가 해 준 게 뭐가 있냐”는 말에도 부모는 마땅히 대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운영해야 하는 ‘자본’과 그 뒷배를 봐줘야 하는 ‘국가’는 노동 세대의 노동력을 극대화시키시 위해 자본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국가가 노후와 교육을 책임지는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마련한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덴마크에 교육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가이드는 오후 3시가 덴마크의 러시아워라고 했다. 노동자가 그 시간에 퇴근을 하면서도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은 약 두 배 정도 높으며, 은퇴한 노인, 공부하는 학생, 심지어 그 비용을 대는 노동 세대 모두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인해 경제적 수준은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문화적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천민자본주의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민국에만 있다는 재벌은 세금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쓰이는 것을 아까워하고 있으며, 은퇴 세대의 부양과 자녀의 교육은 여전히, 그리고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상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받아도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에 버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참 꿋꿋하게 잘 버티고 산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