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씨의 새해 인사 시리즈 2
1. 시대에 따른 노동의 변화
2. 여유를 찾지 못하면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얼마전 인천시교육청 주최로 '교육 거버넌스'에 대한 민과 관의 입장, 그리고 입장 밖에 존재하기를 희망하는 내가 주제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민은 서울형혁신교육지구에서 민간 협의체를 이끌었던, 그리고 지금은 강북에서 협치조정관을 하고 있는 이철우(형)님이, 관은 2013년부터 금천구청에서 교육전문관을 해 왔고, 2020년부터는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조성익 주무관님이 발제를 했다.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의 발제가 끝난 후 한 선생님(교사)께서 질문을 하셨다.
유익한 발제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학교에 돌아가서 동료 교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발제자가 돌아가면서 답을 했다. 그리고 내 순서가 되었다.
먼저, 동료 선생님께 정말 고생이 많았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교사)에게 주어진 100%의 일을 하지 말고, 70%만 하자고, 그래도 된다고... 그렇게 만들어진 30%의 여유를 가지고 그동안 100%일을 하느라 보지 못했던 것, 하지 못했던 것을 해 보자고... 여유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거버넌스는, 그리고 혁신교육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새로운 일일 뿐이라고...
옆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를 본 적이 있는가? 그 경주마와 무한경쟁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무엇이 다른가? 앞을 보고 달리는 경주마는 그 끝에 승리라고 하는 목표라도 있다. 관계 속에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이 앞만 보고 달린다면? 그리고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해 관계에서 떨어져나가는 인간이 있다면? 달려 나가는 인간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간극이 만든 것이 바로 양극화다.
모두가 자신의 일에 과하게 몰입하며 살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가끔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기도 한다. 박힌 가시를 뽑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가시는 더 깊게 살을 파고들 뿐이다. 그럴 땐 먼저 주변에 있는 사람의 손에 박히 가시를 뽑아주자.
집단의 목표가 개인의 목표를 억압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집단의 목표보다 개인의 목표가 더 중요한 시대다. 그 어떤 집단도 집단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집단의 목표가 우선되는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개인의 목표를 위해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집단이 파괴되어서도 안된다.
과거 원시인류는 그 규칙을 알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원시인류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신의 의미를 부여했다. 태양과 달, 하늘과 바람, 그리고 바위와 풀에게까지... 인간은 그렇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을 경외함으로써 생존해 왔다.
지금은 자연이 아닌 집단보다 더 큰 존재가 된 개개인이 사회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어르신의 자발성을,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 가며 학교를 거부하는 사춘기 아이의 충동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인간 사회는 이제 확신에 찬 개인으로 구성된 집단, 그 자체가 단단하게 구조화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 인정하자. 과거 원시인류가 자연을 경외하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듯,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사회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그 누구에게도 일방적으로 물을 수 없음을! 그리고 사회문제를 이렇게 키워온 것이 바로 확신으로 가득찬 우리 자신임을... 물에 빠진 사람에 물에서 빠져 나오려면 먼저 자신이 물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내가 우리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사회문제의 가장 단단한 구성 요소임을 먼저 인정하자!!!
3. 간극을 줄이는 것이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