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다!

백수의 사회학 #10

by 낭만박사 채희태

일생을 통틀어 백수 시절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미취학 아동과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적어도 대학생까지는 빼고 말이다. 대학생은 미성년을 벗어난 학생이다. 졸업을 하는 동시에 취업을 하지 않으면 졸지에 백수 신세로 전락(?)한다. 취업문이 워낙 좁다 보니 대학생들은 졸업을 유예하거나, 아예 창업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끝을 알 수 없는 취준생으로 살아간다. 2020년 대졸 취업자의 평균 연령은 남자가 32.5세, 여자가 30.6세였다. 1998년 IMF 당시 취업 평균 연령이 25.1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약 6세가량 취업 연령이 높아졌다. 졸업을 하고도 5~6년은 취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이어 가야 한다. 물론 나이가 찬다고 저절로 취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니 필자는 다행히 대학 졸업 이전에 취업을 했다. 학교 다니면서 가장 꼴 보기 싫었던 선배가 바로 학생운동을 한답시고 졸업을 하고도 학교에 지박령처럼 남아 있는 선배였다. 어떻게 보면 학생운동은 그 선배들이 말아먹었는지도 모른다. 선배들은 변화된 현실에 대응하는 운동이 아닌, 자신의 신념에 현실을 맞추기 위해 운동을 했던 것 같다. 졸업한 선배들은 부족한 후배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주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졸업을 하고도 학교에 남아 후배들을 지도하는 선배들이 학교마다 몇 명씩은 꼭 있었다. 결국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그 문민정부에 군부독재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던 선배들의 지도하에 대한민국의 학생운동은 무참하게 무너졌다. 물론 그저 시대적 쓸모가 다해 사그라진 것일 수도 있는 학생운동의 몰락 책임을 선배들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필자가 졸업도 하기 전에 서둘러 취업을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후배들에게 학생운동을 적당히(?) 해도 취직이 된다는 희망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과에서 노래패 활동을 했던 필자는 후배들 공연에 직장에서는 입지도 않았던 양복을 굳이 차려 입고 참석하기도 했다.


23244340_1762803340419204_9002551406631452379_n_1762803340419204.jpg 참으로 풋풋하지 아니한가!


필자의 첫 직장은 IMF 외환위기 즈음 문을 닫았다. 필자도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잃은 130만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스스로를 백수로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필자는 특히 후배들에게 전에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는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고 뻥을 쳤다. 사실 백수와 프리랜서 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일을 하고 있을 땐 프리랜서고, 일이 없을 땐 백수였다. 백수이자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선배의 속을 알 리 없는 후배들은 가끔 술을 사 달라며 전화를 했다. 지금에야 밝히지만 난 수중에 돈이 없을 땐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후배들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리고 수중에 돈이 있을 땐 아무리 바빠도 기어 나가 후배들에게 술을 사 줬다. 백수로 살고 있는 선배의 처지를 걱정해 술값을 내 준 후배는 단 한 녀석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 하늘 같은(?) 선배였던 필자는 백수가 아니라 프리랜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필자는 백수로 보내고 있지만, 사실 그때만큼 막막하지는 않다.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과 나쁘지 않게 관리를 해 온 인맥을 바탕으로 소소하게 강의나, 글을 써 달라거나, 자문을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청년 백수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필자는 그나마 복 받은 중년 백수라고 할 수 있다. 필자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경쟁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청년들은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백수가 되어 세상을 만난다. 필자의 경우는 프리랜서였지만, 청년백수의 또 다른 이름은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이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이런 세상을 물려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들에게 보내는 미안함이자 위로이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치닫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백수의 시대적 쓸모를 끄집어내는 것은 필자에게 주어진 덤이자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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