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회학 #4
이왕 백수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으니 백수에 대한 모든 것을 한번 파헤쳐 보자. 먼저 백수의 어원이다. 백수를 한자로 쓰면 白(흰 백), 手(손 수)다. 일을 하지 않아 손이 하얗다는 의미라는 말도 있지만, 흰 백자가 희다는 의미 외에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도 있으니 아마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손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백수의 어원을 불교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바로 ‘백수건달’이라는 말 때문이다. 영화배우, ‘송강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던 영화 ‘넘버 3’에 등장하는 욕쟁이 검사 최민식은 깡패를 건달이라고 불러 달라는 한석규의 요청에 건달은 하늘 건(乾), 이를 달(達), 즉 하늘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고, 불교 세계관에 등장하는 음악을 좋아하며, 향기를 먹고 산다는 신 간다르바가 어원이라며 훈계를 한다. 불교의 신 간다르바가 하필 한국의 백수와 만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간다르바가 백수와 만나게 비난을 받게 된 이유는 농경의 문화적 산물로 보인다. 넘들은 농사짓느라 바쁘고 허리가 휘는데, 베짱이처럼 일은 안 하고 띵가띵가 음악에만 취해 있으니 사람들에게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래서 간다르바 앞에 백수라는 말을 붙여 그 곱지 않은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부러움을 담아... 고대 그리스에서 살았던 이솝(Aesop)은 이러한 정서를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에 담았다. 농경 시대엔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더 중요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본에 소속되어 경쟁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개미보다 차라리 노래하는 베짱이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더 유익할지 모른다.
미루고 미루다 행복은 없어
오늘은 또 다시 없어
어느덧 시간을 벌써
Come on and wake you up
이렇다 저렇다 거짓된 희망은 치워
싸우고 다투고 살다간 지쳐
습관이 돼버린 경쟁에 미쳐
똑같은 틀 안에 갇혀
아무도 모르게 묻혀
come on and wake you up
어렵게 포장된 거짓된 이론은 치워
입 맞춰 줄 맞춰 살다간 미쳐
Ring Ring Ring a Ring a
Ring Ring Ring a Ring a
노래나 부르며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잘고 싶어 (써니힐의 “베짱이 찬가” 중)
지금으로 치면 베짱이는 BTS나 트와이스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다행히 서양에서 태어났으니 망정이지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딱 백수건달 취급을 당하지 않았을까?
백수의 어원이 흰머리의 백수(白首)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공부만 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을 백수라고 불렀는데, 고려가요 공무도하가에 등장하는 백수광부(白首狂夫)가 바로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왜 사랑하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물에 빠져 죽을 생각을 했는지 21세기 백수로 살아가고 있는 필자도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이렇게 백수는 흰 손이든, 흰머리든, 아니면 음악을 좋아하는 불교의 신이든 어원과 무관하게 지금까지 묻 대중들의 푸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다. 백수와는 정 반대인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욕심의 상징이었던 놀부는 근대에 들어 부의 아이콘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백수로 인해 경제가 안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저성장에 돌입한 대한민국의 경제 사정이 백수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열 명 중 한두 명이 고민하는 문제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원인이 있지만,
대학생 열 명 중 여덟아홉 명이 고민하는 문제라면 그것은 사회 구조가 문제다.
(임승수, 청년에게 딴짓을 권한다)
언젠가 외국에선 실업률이 올라가면 국가를 탓하는데, 우리나라는 자신을 탓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대가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뀐다. 이제는 백수에 대한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경제성장률이 고공행진을 시절에는 하기만 하면 안 되는 게 없는 시대였다. 그 산 증인이 바로 필자다. 부끄럽지만 필자는 중학교 2학년 때 딱 한 번 5등을 해 보고 그 이후로는 성적이 서서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대학교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반에서(전교가 아니다.) 44등까지 떨어졌다. 조금씩 내신의 비율이 늘고 있던 터라 4년제 대학에 명함도 못 내밀 성적이었다. 지금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종이라도 있지... 필자는 1년 동안 재수를 하며 그 좋아하는 농구도 끊고, 친구까지 끊어 가며 죽어라 공부만 했다. 4당 5락이라고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고 해서 잠도 4시간 넘게 잔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잠이 별로 없다. 최근에 백수가 된 후 잠이 조금씩 늘어 걱정이긴 한데,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은 여전히 6시간이 넘지 않는다. 그 결과 스카이까지는 아니지만 그 아래에서 도토리 키 재기를 하던 조선시대 최고의 명문대에 당당히 마지막 문을 닫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가지고 지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하면 된다”는 얘기를 했다가는 꼰대라는 낙인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지금은 과거처럼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고성장 시대의 백수와 저성장 시대의 백수는 명백히 다르다. 청년에게 딴짓을 권해온 임승수의 말대로 고성장 시대에 백수는 백수가 문제였지만, 구조적인 저성장 시대의 백수는 직장을 안 갖는 게 아니라 못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박통 시절 본격적인 유신독재가 시작된 이듬해인 1973년 14.8%라는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찍었다. 이후 10%를 넘나드는 고성장을 거듭하다 1983년 다시 13.2%를 달성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경제성장률은 2%대의 저성장 시대를 지나고 있다. 바야흐로 갈수록 좋아지는 취업문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경쟁을 하면 할수록 취업문은 더 좁아지고 직장을 구할 수 없는 백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시대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세계 500대 글로벌 기업은 전 세계 35억 명의 노동자 중 약 0.15%인 550만 명만을 고용하고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는 백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 백수는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이웃이고, 가족이다. 누군가의 아들, 딸이거나, 자식들의 사교육비를 걱정하는 엄마, 아빠가 바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백수이다. 백수는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이웃일 수도 있고,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아들, 딸이거나, 자식들의 사교육비를 걱정하는 엄마, 아빠도 언제든 백수가 될 수 있다. 소수를 제외한 다수가 백수나 잠재적 백수로 살아가야 하다면, 백수의 정의는 과거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