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회학 #11
백수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한번 정의를 내려 보자. 백수를 좁디좁은 의미로 정의하면 그냥 ‘현재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경제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취업이 결정된 사람은 백수가 될 자격이 없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이 결정된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그렇다면 고등학생이면서 수시로 대학 입학이 결정된 고3은 고등학생일까, 대학생일까? 고딩이지만 피 터지게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딩의 정체성을 가지지 아니하고, 그렇다고 대딩도 아닌... 말 나온 김에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 살짝만 짚고 넘어가자. 믿을지 모르겠지만, 필자의 전공은 사실 백수가 아니라 교육 사회학이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그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일 뿐이다. 그리고 교육이 통과해야 할 최종 관문은 모두 알다시피 대학이다. 일찍이 전 세계의 고수들과 맞짱을 뜬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최영의’도 이른바 도장 깨기라는 과정을 통해 무림의 최고수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도장을 안 깨고도 그냥 최종 보스만 잡으면 된다. 제도적으로 만 11세가 넘으면 응시할 수 있는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의무교육과정인 초, 중등 과정을 패스하고 대한민국 교육의 최종 보스인 대학과 맞짱을 뜰 수 있다. 윷놀이에도 도와 모 사이에 개와 걸과 윷이라는 과정이 있는데, 대한민국 교육에는 그저 도와 모만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입학이 결정된 고3의 정체성이 애매하고 모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백수의 정의로 돌아오자. 그래서 좁은 의미의 백수는 ‘현재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언제 경제 활동을 하게 될지 불확실하여 막막한 상태에 처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제 백수의 의미를 좀 더 넓혀서 생각해 보자. 좁은 의미의 백수를 ‘현재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언제 경제 활동을 하게 될지 불확실하여 막막한 상태에 처한 사람’이라고 정의했으니, 넓은 의미의 백수는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을 하고 있거나, 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사람들의 여집합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여집합? 수학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사람과 학교와 이별을 하면서 동시에 경쟁을 위해 축적했던 모든 지식을 지워버린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여집합은 전체 집합의 부분 집합 A에 관하여 전체 집합의 요소로서 A에 포함되지 않는 요소 전체가 만드는 집합을 뜻한다.
메에에~
필자가 잘못했다. 그냥 그림으로 설명하겠다.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을 하고 있거나, 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사람은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등이다. 경쟁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대학생과 헌법상 근로의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도 비백수에 포함시키겠다.
현재는 비백수에 속해 있지만, 성년이자 학생인 대학생은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순간 대부분 취준생이라는 백수가 된다. 비정규직 근로자도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잠재적 배수에서 실질적 백수가 된다. 2019년 기준 대한민국 임금 근로자 수는 2천55만 9천 명이고, 그중 36.4%인 748만 1천 명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자 그럼 광의(廣義)의 백수 숫자를 한번 계산해 보자.
대한민국 인구-{안정적 비백수(임금 금로자+자영업자+미성년자)+잠재적 백수(대학생+비정규직)}=51,851,000-{(13,078,000+6,734,000+8,874,000)+(3,326,000+7,481,000)}=12,358,000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중 약 24%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직접적인 경제 활동에서 배제된 광의의 백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백수라고 할지라도 21%(대학생+비정규직)는 잠재적 백수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총생산은 2019년 안정적인 세계 10위권이니 말이다. 국민의 24%가 경제 활동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된 광의의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10위의 총생산을 달성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생산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24%를 차지하고 있는 백수를 소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우를 범하지는 말기 바란다. 빙산의 일각이 수면 위에 떠오를 수 있는 이유는 차디찬 바닷속에 더 많은 비중의 빙산이 단단하게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빙산의 일각을 떠받치고 있는 백수가 사라진다면 빙산은 그 비중만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사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 것 보다, 나의 이웃이거나 가족이 언제든지 될 수도 있는 백수와 국민총생산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는 것이 국가 발전에 보다 효율적이며 국민들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의 백수는 단순히 일이 하기 싫어 노는 사람이 아니다.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해 경제활동에서 배제된 사람이다. 그들에게 백수에서 탈출하기 위해 처절한 경쟁에서 이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높은 곳에 올라가 사다리를 걷어찬 후 올라와 보라고 조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필자가 백수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이유는 백수, 비백수를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가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 모두가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는 시대이다. 백수와 잠재적 백수의 수가 국민의 50%에 육박한다면 더이상 백수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함께 연대하여 이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