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종류 2

백수의 사회학 #15

by 낭만박사 채희태

인류는 시대에 따라 노동의 목표가 변해 왔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절, 인류의 노동은 단지 생존이 그 목표였다. 인류는 수렵의 대상인 짐승을 키우지 않았으며, 채집을 위해 식물을 재배하지 않았다. 그러다 농경이 시작되었다. 야외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에 대로하여 “앞으로 너희는 수고로운 노동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것이다. 즉 농경은 인간의 노동 목표가 “생존”에서 “생산”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이브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자고 제안한 것처럼, 농경은 여성이 먼저 제안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성 사피엔스는 19만 년 동안 채집을 하며 농경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를 축적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목숨을 걸고 수렵을 떠나는 남성 사피엔스에게 자신이 획득한 선악과의 정보를 털어놓으며 농경을 ‘명령’했을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농경은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었다. 농경을 시작한 후 인류는 이전보다 더욱 극심한 기아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절보다 인간 개체수는 안전하게 늘었지만, 늘어난 개체수를 감당할 생산력이 뒤따르지 못했다. 약 19만 년 동안 모계 사회를 이끌었던 여성 사피엔스는 자신이 제안한 농경으로 인해 역설에 직면했다. 노동의 목표가 생존에서 생산으로 이동하면서 인류의 주도권을 남성 사피엔스에게 내어주는 암흑의 터널인 가부장제를 ‘허용’하게 된 것이다. 인류는 농업 생산량을 늘이기 위해 남성의 근육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으며, 수렵을 통해 축적한 남성들의 전투력은 농경을 통해 수확한 생산물을 빼앗거나 지키는 데 사용되었다.


생산력의 발전, 그리고 잉여생산물의 차지를 중심으로 인간의 관계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한다. 잉여생산물은 마치 관계를 통해 인간이 동물을 분리시켰던 것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인류는 역사의 대부분을 계급 사회 속에서, 계급의 유전자를 키우며 살아왔다. 사실 필자는 잉여생산물이 계급을 발생시켰다는 전통적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급의 분화가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시켜 잉여생산물을 발생시켰을 가능성에 대해 무게를 두는 입장이다. 즉, 마르크스는 계급의 관점에서 인류를 통찰했지만, 팔자는 관계를 통해 힘을 갖게 된 인류가 그 힘의 확장인 개체수의 확대에 따른 생산력의 필요가 계급을 발생시켰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 종착점이 바로 우리가 현재 익숙하게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목표를 인류의 “생존”도, 생존을 위한 “생산”도 아닌 “이윤”으로 변화시켰다. 이는 사실 대략 11세기 전후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부르주아지들만의 상식이었다. 일찍이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부르주아지들의 그 이질적인 문화를 폭로하기도 했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 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지를 가장 환멸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마르크스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목표가 이윤이 되는 부르주아지들의 세상을 경계했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인류 역사의 통찰인 동시에, 부르주아지들의 목표인 이윤을 향한 질주를 막는 브레이크였다.


인류가 생존의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위는 바로 연대와 협력이다. 인간이 불확실한 자연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것도 인간 사회를 통한 연대와 협력이었고, 여성 사피엔스가 기꺼이 자신의 주도권을 내려놓고 남성 사피엔스의 노동력과 전투력을 인정한 것도 인류의 생존을 위한 연대와 협력이었다. 설마 여성 사피엔스가 생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가부장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인간사회에서 억압적 구조로 고착될 것이라는 걸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실 생산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가부장제는 지배와 착취라는 계급적 질서와 만나면서 이미 자본주의 이전부터 수면 아래에서 인류의 목표를 생존에서 이익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연대와 협력이 필요했던 관계가 그것이 이익의 문제로 나아가면 경쟁과 대립으로 돌변한다. 필자도 여기서부터는 인류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한다.


이제 우리는 생존 본능과 자본주의를 통해 이미 불가역적 유전자가 된 이익 본능을 효과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백수와 비백수의 경쟁이, 그리고 이윤 노동을 기준으로 비백수가 백수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보편적 인류의 생존에 이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지지할 용의가 있다. 코로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본이, 국가가, 그리고 시장의 판단이 여전히 인류 앞에 놓인 문제가 생존이 아닌 이익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을 통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려는 시도는 이윤을 추구하며 성장해 온 전통적인 자본의 논리이자, 이미 단단하게 고착된 유전자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세계 500대 글로벌 기업은 전 세계 35억 명의 노동자 중 약 0.15%인 550만 명만을 고용하고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본의 목표가 무한 이윤의 추구라면, 자본을 포함한 인류의 목표는 지속 가능한 ‘생존’이다. 코로나 시대의 진보는 이윤이 목표인 자본과 생존이 목표인 인류가 경쟁과 대체, 그리고 소멸이 아닌 새로운 연대와 협력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 묘안을 백수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쓸모에서 찾고자 한다. (“백수의 종류 3”으로 이어집니다)

keyword
이전 06화백수의 종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