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회학 #14
이제 백수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 아니 백수의 그 개별적 다양성을 존중해 적극적으로 분류해 보자. 지금까지 백수는 그냥 퉁쳐서 백수라고 여길뿐, 우리는 한 번도 백수가 가지고 있는 그 다양한 디테일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이제 앞에 언급했던 광의의 백수 24% 안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임금 근로자가 아니라고 해서 모든 백수들이 경제활동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백수 중에서도 비정기적인 수입을 통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을 우리는 보통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프리랜서는 백수를 포장하는 말 중에서도 가장 그럴듯하다. 거기다가 영어다 보니 뭔가 ‘있어’ 보인다. 사실 필자도 가끔 헷갈린다. 필자가 백수인지 프리랜서인지... 과거엔 백수였어도 프리랜서라는 포장지를 내 보였다면, 지금은 프리랜서라는 포장지를 까뒤집어 굳이 백수라는 내용물을 보여주는 편이다. 필자에게는 해당이 안 되겠지만 프리랜서 중에서는 사실 백수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의 고수익자도 있다. 필자의 프리랜서 코스프레가 감히 그런 고수익자 프리랜서의 위명에 누를 끼칠 수는 없다.
이렇게 백수를 나누는 첫 번째 기준은 경제활동의 유무이다. 알바든, 프리랜서든 돈을 벌고 있는 경제활동 백수와 부모에게, 배우자에게, 또는 자식들에게 기대 살고 있는 비경제활동 백수가 있다. 자 이제 따져보자. 비경제활동 백수가 진짜 놀고먹기만 하는지... 자본주의가 원하는 경제활동, 즉 부가가치를 통한 이윤 창출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이들이 공기만 축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고시생 백수로 등장하는 정봉이는 어머니의 구박을 받아가며 궂은 집안일을 도맡는다. 또한 동생 정환이 상대적으로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건 형 정봉이가 백수였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을 하찮게 만들어 주위를 더욱 빛나게 하는 백수만의 쓸모이다. 정봉이는 지금의 주부처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않고 백수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 정환이는 자신이 받은 부모님의 사랑을 금전으로 환산해서 형에게 주었어야 했다. 자 이제 정리해 보자. 경제활동을 중심으로 백수를 분류하면 돈으로 계량이 가능한 노동을 하고 있는 백수와, 돈으로 계량할 수는 없지만 나름의 가치 있는 노동을 하는 백수가 있다.
백수를 나누는 두 번째 기준은 세대, 즉 나이이다. 필자는 앞서 중년 백수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소비의 기준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보편적으로 백수 중에서도 그나마 제일 행복한 백수가 바로 필자 같은 중년 백수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불행한 백수는 시대를 잘못 만나 사회생활을 백수로 시작하는 청년 백수와 은퇴 나이는 그대로인데, 시대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늘어나고 있는 노년 백수이다. 청년이 시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의 빠른 변화는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청년 백수와 노년 백수는 서로 지속가능한 불행, 일자리를 놓고 피 터지게 경쟁에 임한다. 일자리 부족과 상대적 박탈감을 선사하는 이가 따로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가능성이라는 무기를 탑재한 청년 세대와 경험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노년 세대는 자신의 부족함을 상대방으로부터 채우려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전상진’의 독특한 세대 담론, “세대 게임”과 ‘로버트 드니로’와 ‘앤 헤서웨이’가 주연한 영화, “인턴”은 우리에게 세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세대 학자 '전상진'은 세대의 문제를 게임으로 보았다. 세대 문제를 두고 투쟁하는 대상 뒤에 그 투쟁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게임의 설계자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 "인턴"에서 은퇴한 70세 인턴으로 등장하는 '로버트 드 니로'는 열정으로 무장한 30세 CEO, '앤 헤서웨이'를 훌륭하게 '보완'한다. 단 보완의 전제로 앤 헤서웨이는 로버트 드 니로에게 인터이라는 일자리를 제공한다.
청년 백수와 중년 백수, 그리고 노년 백수의 대립과 투쟁은 누구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까? 대립과 투쟁이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고취시키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노동시장이 아닌 관계시장에서 서로를 보완하면 된다. 청년 백수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중년 백수는 누군가의 부모이고, 노년 백수는 누군가의 조부모다. 세대가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고, 그 인정이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다면, 일자리라는 먹잇감을 사이에 두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