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회학 #27
인류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은?
= 적응 능력!
인류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적응 능력을 지녔다. 인간은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는 다른 동물에 비해 추위에 약하다. 그래서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식물의 줄기를 엮거나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인간은 치이타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으로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것은 치이타가 아닌 인간이다. 인간은 곰이나 코끼리처럼 힘이 세지도 않다. 그러나 힘이 약하다고 인간이 곰이나 코끼리의 지배를 받지는 않는다. 인간은 새처럼 하늘을 날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인류는 하늘 너머 우주를 향해 나아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간이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그 어떤 쪽으로든 탁월한 존재였다면, 그저 매일매일 먹이를 찾아 떠도는 지구 생물체 중 하나에 머물렀을 것이다. 인간은 탁월한 적응 능력을 발휘해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결핍을 극복해 왔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내린 가장 큰 저주는?
= 적응 능력!
동시에 인간은 적응 능력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 인간의 적응 능력은 탁월하지만 그 능력이 발휘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오랜 시간 동안 환경에 적응하고 나면 이제 적응 능력은 변화에 저항하기 위해 작동한다. 인류가 성취해 온 문명으로 인해 물리적 변화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심리적 변화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은 갈수록 퇴하되어 끝도 알 수 없는 바닥을 향해 돌진 중이다. 보통 물리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죽임을 당하지만, 심리적 변화를 이기지 못한 인간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다.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이유는 갈수록 사소해지고 있다. 자존감이 낮아, 성적이 떨어져, 남들의 비난이 무섭다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경우는 과거에는 흔치 않았다.
적어도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변화의 시간이 있었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문명의 발전과 경제의 성장이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행복의 기회를 가져다주었지만, 고작 100년을 살아야 하는 한 개인에게도 그것이 행복의 기회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류는 현재 맹목적인 적응에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마 전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본격적인 선발 경쟁에 돌입한 둘째 딸이 시험을 봤는데, 점수의 분포가 "도 아니면 모"인 모래시계 모양이라고 했다. 성적의 상위권과 하위권은 있지만, 중위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상위권은 아마도 기를 쓰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려는 부류일 것이다. 그리고 하위권은 그 감당할 수 없는 변화에 적응을 포기한 부류 아닐까? 윷놀이를 하다 보면 알겠지만 윷이나 모가 좋은 것은 다시 윷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모보다 도가 더 절실한 상황도 있다.
예전에 서울시교육청에 있을 때 교육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치 태초에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를 위해 마을이 생겨났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마치 마을과 학교처럼 행복한 삶을 추구해 온 인간과 그 행복을 위해 성장해 온 문명이 서로 목적을 잃고 충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족한 개인인 한 인간이 누가 누릴지 모르는 문명의 이기와 경제 성장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대 변화의 적응을 포기한 백수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면 어떨까? 때로는 무엇을 하는 용기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용기가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모두가 사공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시대, 인류가 타고 있는 배가 강이나 바다가 아닌 산을 향하고 있다면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라도 잠시 쉬어갈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하지 않을 용기가 없다면, 그 용기를 발휘하고 있는 백수들에게 고운 시선이라도 보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