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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n 29. 2020

백수가 아프면, 더 서럽다.

백수의 사회학 #13

코로나가 지구를 멈춰 세웠다면, 오랜만에 찾아온 허리 통증이 나를 주저앉혔다. 쉬면 나을까 싶어 누워 있는데, 점점 심해진다. 백수가 아프면 더 서럽다. 심지어 직립보행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덕분에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허리가 아파 이틀째 침대에 누워 있는데, 마치 침대가 내 몸과 일체화를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전에는 베개 위에 살포시 머리를 얹었다면, 지금은 베개가 내 머리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몸도 어떻게든 침대와 접촉면을 늘리려는 듯, 누군가 강하게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니 몸과 머리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백수에게 침대는 벗어나기 싫은 곳인지 모르지만, 환자에게 침대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려면 자세를 바꿀 때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온다.


요통의 증상은 사실 며칠 전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좌골 신경통을 앓은 후 1년에 한 번 꼴로, 주로 긴장에서 풀려 났을 때 주기적으로 아팠던 허리였다. 뻐근하면서 아픈 경우도 있고, 갑자기 우두둑하면서 아플 때도 있고, 자고 일어나 보면 느닷없이 아픈 경우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하면 대책을 세우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보통은 초기 증상이 느껴지면 단골 한의원에 가 침을 맞으며 버텨 왔다. 그런데 이번엔 공주대학교에서 있는 회의 참석을 위해 무리를 했다.


백수 탈출을 위한 “자기 계발”이 아니라, 백수의 새로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자기 인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필자지만 막상 아파보니,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아프면 ‘돈 버는 일’만 못하는 게 아니라 백수의 특권인 ‘노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리고 백수가 아프면 비백수보다 더 치명적이다. 모태 관종인 필자는 병원에 입원 후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부분의 비백수는 걱정과 더불어 부러움을 표시했다. 비백수가 아프면 고단한 노동에서 잠시 비켜나 있을 수 있는 기회가 되있지만, 백수가 아프면 마치 바둑에서의 사석처럼 집은 집대로 내주고, 나중에 애써 지은 자기 집도 말아먹는다. 그러니 백수들이여, 절대로 아프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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