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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Aug 09. 2020

아버지의 사랑의 무덤까지 가고...

백수의 사회학 #33

지금은 사춘기의 끝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딸이 몇 년 전 중학생 때 타투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딸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대뽀로 저지르지 않고 먼저 동의를 구해준 딸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난 미성년인 딸의 신체에 대한 권리는 부모에게 있으니, 감히 내 소중한 딸의 몸에 손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 어쩌구하는 케케묵은 공자님 말씀을 소환하기도 하면서... 그때는 서울시교육청에 있을 때였는데, 마침 주차관리를 하고 있는 잘 생긴 공익근무요원이 목과 팔뚝에 타투를 하고 있길래 물어보았다. 중학생 딸이 타투를 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 친구는 자기도 지금은 후회가 된다며 나중에 돈을 벌어서 지울 생각이라고 했다. 부모 몰래 타투를 했다가 아버지한테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맞았다고... 그러다가 문득 팔에 있는 타투의 문구가 눈에 들어와서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았다.


이거요? 아버지의 사랑의 무덤까지 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뜻이에요.


The father's love lasts to the grave, the mother's love eternally. 사진 사용에 대한 사전 양해를 득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딴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몸으로 기억하고 싶어서 타투를 한 것인데, 아버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다. 아빠가 만약 타투의 의미를 먼저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예전엔 "앨런 아이버슨"이라는 농구 선수가 목에 "忠"이라는 타투를 해 신기해했던 적이 있다. 앨런 아이버슨이 과연 저 한자를 알고 있을지도 궁금했고... 영국의 축구 영웅 데이비드 베컴은 한 수 더 떠 "生死有命  富貴在天(생사유명 부귀재천)"이라는 공자님 말씀을 몸에 새겼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 부와 출세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목에 忠자를 새긴 '앨런 아이버슨(왼쪽)'과 공자님 말씀을 몸에 새긴 '데이비드 베컴(오른쪽)'

인터넷을 찾아보니 앨런 아이버슨이나 데이비드 베컴이나 몸에 타투를 새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앨런 아이버슨은 주로 자신의 경험, 결핍, 그리고 세상에 하고 싶은 말 등을 몸에 새긴다고 한다. 목에 새긴 충(忠)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충실하기 위해 새겼다고... 데이비드 베컴의 경우는 종교와 가족에 관한 내용이 타투의 주 내용이다. 한 번은 개인 비서와의 염문설에 즈음하여 새긴 "역경에 마주하여(in the face of adversity)"라는 타투로 인해 아내와 별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확실히 타투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 중학생 딸의 타투를 반대했던 것도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비겁하게 편견을 비비 꼬아서 표현했다. 아빠는 괜찮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타투에 대한 편견이 너에게 해가 될까 두렵다고... 타투에 대해 내가 편견을 갖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예전에는 문신이라고 불렀던 타투는 주로 조폭들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배우가 된 송강호를 주목하게 만든 영화, "넘버3"에서 욕쟁이 검사로 열연했던 최민식은 목욕탕에서 온몸에 문신을 한 조폭에게 몸이 무슨 도화지냐고 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아직도 문신을 한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단순한 나의 취향이 누군가에게 권력화된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성찰했다면, 그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노력이 내 편견을 깨뜨릴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먼저 타투에 대한 나의 허용 범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타투를 하는 대상이다. 앨런 아이버슨이나 데이비드 베컴의 타투는 나와 무관하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만난 등빨 좋고, 머리 짧은 사람의 타투는 솔직히 무섭다. 길거리에서 만난 청춘 남녀의 타투는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난 공익근무요원으로 인해 비호감에서 호감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딸이 하는 타투는? 노코멘트하겠다. 두 번째는 타투의 내용이다. 내가 모르는 문자가 새겨진 타투는 그저 나에게 그림일 뿐이다. 길거리에서 타투를 한 사람과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 타투를 유심히 볼 용기가 없으니 사실 타투의 내용은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차카게 살자"처럼 맞춤법이 이상한 타투가 눈에 비친다면 난 가급적 그 사람과 부딪히지 않지 위해 가던 길을 우회해 갈 것이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타투의 빈도와 위치이다. 하나는 되는데, 둘은 안된다? 아니면, 목까지는 되는데, 얼굴은 안된다? 섣부르게 편견을 깨기 위해 도전해 보았지만 참 어려운 문제다.


작곡가 이상순과 결혼해 "효리네 민박"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찍기도 했던 이효리가 한 번은 시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목욕탕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효리는 몸에 타투로 호랑이를 그려 넣었는데, 그걸 본 시어머니가 이효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우리 며느리가 동물을 참 좋아하는구나~


우리나라에서 타투는 의료행위와 예술행위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타투를 한 사람들을 만나는 빈도도 부쩍 늘었다. 한 번은 어공으로 있을 때, 사회적 품위를 지키도록 강요받는 공무원의 몸에서 타투를 보고 놀란 적도 한다. 취향과 편견은 우리를 얼마나 촌스럽게 만들고 있을까? 얼마 전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참석해 논란이 되었다. 이미 오래전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시민 의원이 캐주얼에 빽바지를 입고 의원 선서를 해 논란이 된 바 있었다. 만약 우리가 타투를 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난 타투를 한 사람과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타투를 한 사람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불행할까? 몸에 새긴 타투가 그러할진데, 치사하게 옷 가지고 문제를 삼는 찌질이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니... 혁신은 익숙함과의 투쟁이며, 시민의 성장 척도는 이견을 대하는 태도이다.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직장 없이 살아가고 있는 백수에게도 그 사정에 대해 같이 공감해 주고 이해해 준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글 도입 부분에 소개했던 딸은 결국 타투는 안 했지만 귀에 피어싱 몇 개는 뚫었다. 본인 생각에도 타투는 좀 심하다 싶었던 것 같다. 보통은 딸도 글을 쓰고 있어, 내가 쓴 글을 공유하는 편인데, 이 글은 딸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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