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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Aug 30. 2020

고문관과 고민이 많은 사람

"비밀의 숲" 시즌2의 5화를 보면...

"비밀의 " 시즌2,
의미 심장하고 매우 시의 적절하다!


5화까지 지켜보니 "비밀의 숲" 시즌 2의 소재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고, 숨겨놓은 주제는 내로남불인 것 같다. 검찰과 경찰의 내로남불... 그 사이에 검찰과 경찰이 존재하게 된 애초의 목적 따윈 없다. 아니 목적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목적을 지키기 위해 동원되는 모든 온갖 수단들은 그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목적은 바다로 향하고 있는데, 수단이라는 녀석이 목적을 산으로 끌고 가고 있는 형국이랄까? 동료의 비리를 알고 있는 한 경찰의 죽음이 검찰을 위해선 타살이어야 하고, 경찰을 위해선 자살이어야 한다. 답을 정해 놓고 검찰은 공격 논리를, 경찰은 방어 논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5화의 주요 내용이다.

2년 전 종결 처리된 경찰의 자살 사건을 방어(?)하기 위해 투입된 배두나는 4화 마지막에서 "자살이지만, 타살이다."라고 보고한다. 결과는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그 동기는 경찰 조직 내부의 집단 따돌림이 만들어 낸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배두나가 주목하는 것은 죽음의 형태가 아닌 그 동기다. 배두나는 그 동기를 파헤치기 위해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을 만난다. 사건의 과정을 지켜본 한 고순경은 자신도 처음엔 죽은 송기현 경사가 고문관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고문관? 난 군대에서 처음 들었던 말이다.

서로 배치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고문관

애초에 고문관의 의미는 고문관 1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언제부터 고문관이 고문관 1의 의미와는 정 반대되는 고문관 2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게 되었을까? 고문관은 조언자이고 주관이 아닌 객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전문성의 사정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고문관의 의견이나 조언은 전문성이 추구하는 효율을 방해한다. 자신의 전문성에 입각해 성과를 내려면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앞을 향해서만 나아가야 한다. 적군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이 왜 적을 죽여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면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까? 시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정치인이 순진하게 시민의 생각만 살핀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학생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아이가 선발되기만을 바라는 학부모들의 등쌀을 견뎌낼 수 있을까?


우리는 구조적으로 내로남불일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문성이 가지고 있는 사정을 알지도 못한 채 어설픈 고민에 빠져 살면 꼼짝없이 '고문관 2' 취급을 당한다. 참 걱정이다. 입장과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가 지향하는 목표가 기껏 고문관 2였다니...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수세에 몰린 경찰에게 새로운 공격의 빌미가 생겼다. 자식을 부정 취업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전직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자신을 조사한 경찰의 수사 국장을 고소하자, 경찰 쪽에서 묵혀 두었던 칼날을 꺼내 들며 이렇게 말 한다.


아, 그거 벌써 쓰기 아까운 건데, 쯧...
아끼면 똥 됩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더 빨리 달리던 "생존 사회"에서 벗어나, 단지 경쟁자보다 한 발만 더 앞 서면 되는 "이익 사회"에 살고 있다. 이익 사회에서는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경쟁자를 자빠뜨리는 게 더 효과적이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검찰과 경찰은 서로 자신을 흠집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더 큰 흠집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전문성의 강화가 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네거티브화시키고 있다.




비밀의 숲 시즌 2, 제5화의 외전... 황시목은 검경 간의 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어렵게 잡은 범인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자, 동부지검장으로 있는 선배 강원철을 찾아가 서부지검에 구속영창을 발부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도록 부탁을 한다. 강원철 검사는 동부지검으로 오기 전 서부지검장이었고, 이전에 황시목은 전직 부장검사 출신이 변호사로 관여한 살인사건을 강원철 지검장이 하루 만에 조기 종결하자, 전관예우가 아닌지 따진 적이 있다. 황시목의 부탁을 받은 강원철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등장할 만한 대답을 한다.


강원철 : 형사3부 남인태... 그, 서부지검에서 전세 사기 영장 안 내 준 게 남인태야?
황시목 : 네, 6시간 후면 그 사기범 풀려납니다.
강원철 : 그래, 남인태... 기억은 나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황시목 : 검사장님...
강원철 : 아, 왜 여기로 왔어? 관여를 하려면 서부지검으로 갔어야지. 엄연히 주임 검사가 있고, 거기도 장이 있는데... '이러면 안 되네, 그럼 잘못이네.' 나더러 남의 지검에 압력이라도 넣으라는 거야?
황시목 : 사문서 인감 위조, 위조 공문서 행사, 주민등록법 위반... 놔줘야 합니까?
강원철 : 황시목아, 나야말로 전관이야. 너 지금 나한테 영향력 행사하라고 하는 거라고~ 야, 누가 여기로 딱 전화해서 나 전에 거기 지검장 했던 사람인데 이래라저래라 하면 그게 맞는 거야? 아, 물론 남인태가 경찰한테 더럽게 치졸하게 구는 건 맞는데, 야, 그거...
황시목 : (고민에 빠진다)
강원철 : 뭐냐? 이게 퇴근하는 사람 주저앉혀 놓고선 남 말하는데 듣지도 않아?
황시목 : 그러네요.
강원철 : 내 말 진짜 안 들었다고?
황시목 : 아니요, 여기 오시기 전에 서부지검에 계셨으니까, 제가 여기로 오는 게 가장 즉효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강원철 : 물론 내가 직방이긴 하지만...
황시목 : 저도 전관예우를 당연시했네요. 너무 당연하게 전임자한테 기댄 거고요.
강원철 : 뭔 뜬금없는 자아비판이야? 넌 사적인 이익을 노리고 위법하고 그런 건 아니잖아~
황시목 : 다른 사람도 그랬겠죠. 출입 통제선을 뽑은 사람도 전관 출신 변호사를 찾았을 때, 자기가 무슨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다고 생각 안 했을 겁니다. 그저 자기 일을 제일 잘 해결해 줄 사람을 찾은 거겠죠. 제가 여기 온 것처럼요.
강원철 :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생각했어? 스스로를?
황시목 :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 본 거 같은데요? 제가 청탁으로 결과를 바꾸려는 경우의 수는 넣어 본 적이 없어서요.
강원철 : (콧웃음 치며) 이게 진짜 폐단이 되려면 말이야. 내가 이번에 네 부탁을 들어줬어. 남인태한테 지랄해서 용산서에 영장 내줬대. 근데 다음에 내가 곤란한 일이 생긴 거야. 그래서 내가 너한테, "야, 이것 좀 어떻게 좀 해 줘, 어? 나 좀 살려 줘." 내가 그래, 그럼 너는? 해 줄 거야? "야, 전에 내가 네 부탁 들어줬잖아. 내가 그거 해결하느라고 얼마나 욕봤는지 알아?" 그러면서 슥삭슥삭 해 달라고 하면? 응?
황시목 : (단호하게) 안 되는데요!
강원철 : (픽 웃는다) 됐어! 그럼, 인마!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이 전관예우가 케이스로 늘어놓으면 진짜 나쁜 짓 같은데, 막상은 자연스러워...


그러나 황시목이 떠난 후 강원철 동부지검장은 서부지검장에게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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