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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0. 2020

아버지에 대한 기억 2

아버지에 대한 기억 1


제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즈음 전 할머니와 형제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서울로 이사를 했지요. 제가 처음 터를 잡은 건 길음동, 미아리 극장 뒤에 있는 아담한 집이었습니다. 대학생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제가 살았던 흔적들을 찾아 혜화동에서 길음동으로, 길음동에서 다시 미아 5동으로, 미아 5동에서 쌍문동으로 무작정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봤던 길음동 집은 역시나 지나치게 아담했습니다. 제 기억에 곧 집을 늘려 미아 5동으로 이사를 했고, 3학년 말에는 지금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쌍문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저도 결혼 후 경험을 했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조금씩 집을 늘려 이사를 하는 재미는 매우 쏠쏠합니다. 제가 미아5동에 살았을 때, 아버지는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암에 걸리셨습니다. 당시 아버지 나이는 지금의 저보다도 어린 39세 셨습니다. 누군가 어머니를 위로하며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아이고 어떡해, 꽃 밭에 불을 질렀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동갑인 어머니의 연세는 39세... 3남 1녀를 키워야 하는 가장이 불치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전 집안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제 생일날 신문을 돌리겠다고 작은형과 함께 신문 보급소를 찾아갔습니다. 신문을 돌리고 집이 돌아온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생일이니까 특별히 봐준다고, 다시는 이렇게 늦지 말라고... 그 당시엔 아버지가 화를 내시면 암이 빨리 도진다고 해서, 모두가 아버지 심기 관리를 하던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건강을 위해 아침 일찍 등산을 하셨고, 그 산이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아버지를 따라 새벽같이 산에 오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 당뇨가 의심된다고 해서 딸들에게 같이 산에 가자고 했다가 무안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시대가 참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는 암을 치료할 수 없다고 포기했지만, 아버지는 당시 밭에 잡초처럼 자라는 쇠비름을 말려 달인 물을 드시고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 내셨습니다.


그리고 국민학교 4학년 때, 지금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쌍문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쌍문3동 103번지 144호, 응답하라 1988에서 소개되었던 쌍문동 골목의 바로 옆 골목에서 전 가장 기억에 남는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전 쌍문동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 22년 만에 쌍문동을 떠났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버지는 막내인 제가 결혼하기 전까지 환갑잔치를 안 하시겠다고 하셨고, 결혼을 하고 나서 돌아오는 아버지 생신 때 환갑잔치를 해 드릴 생각이었는데, 그만 돌아가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땅에 머리를 짓이기며 울었습니다. 환갑잔치를 못 해드린 게 한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 옆지기가 자면서 통곡하는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저는 울며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꿈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이 죽는 꿈을 꾸었으니, 내가 오래 살겠구나~


시간이 제법 지난 어느 날 어머니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 눈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는데, 안대를 차고 일 하러 나가셨다고, 아버지 좀 말려 달라고... 전쟁 통에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신 아버지는 그 당시 서울대학병원 앞 금강빌딩에서 주차 관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누나와 형들한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일하시는 회사로 찾아갔습니다.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애원했습니다. 자식들 이만큼 키워 놓으셨으니 이제 자식들 용돈 받으면서 편안히 사시라고... 아버지는 그렇게 일을 그만두셨고, 몇 년 후 저는 아버지를 쉬시게 한 걸 크게 후회했습니다. 일을 그만두시고 이전보다 부쩍 늙어버린 아버지를 뵈었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드시고 아버지께 두 번의 뇌졸중이 찾아왔지만, 다행히 빠른 대처로 큰 후유증은 없이 지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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