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ack2analo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2. 2020

아버지에 대한 기억 3

아버지에 대한 기억 1

아버지에 대한 기억 2


요양병원 원장에게 이 얘기를 하니, 그렇게 수없이 고비를 넘기면서도 지금까지 살아계신 건 아버지께서 운이 좋으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바라는 게 뭐냐고 묻더군요. 어머니 얘기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따뜻한 밥 한 그릇 해서 드시게 하는 게 소원이라고... 저는 그저 아버지가 한 번이라도 제 이름을 불러 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양병원 원장은 그건 어머니와 자식들 욕심일 뿐, 아버지는 뇌손상이 워낙 심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의식이 돌아오긴 힘들 거라고... 매우 직설적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했으면, 가족들은 최선을 다한 거라고, 더 이상의 치료나 기대는 오히려 아버지를 힘들게 할 뿐이라고...


아버지는 척추협착 수술을 잘 받으시고, 퇴원해 집에 오시는 길에 계단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크게 다치셨습니다. 퇴원할 때 병원에서 준 약과 옷가지가 들은 가방을 본인이 가지고 올라가시겠다고 하시길래, 제가 가지고 올라갈 테니 먼저 올라가시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왜 먼저 올라가시라고 했을까요? 그 말이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이전에도 아버지는 산에서 같이 약수를 떠 오면 부득불 당신이 더 많이 들고 올라가겠다고 우기셨습니다(부모님이 사시는 집은 3층 상가주택입니다). 물이 가득 담긴 통이 다섯 통인데, 제가 두 개를 들고 빨리 올려다 놓고 올 테니 두 개만 들고 오시라고 해도, 아버지는 낑낑대며 세 개를 들고 올라오셨습니다. 여름에 태어나신 아버지는 생신 때마다 시골 친척들이 올라오는데, 옥상에 텐트를 치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다 큰 아들이 텐트를 치러 옥탑 위로 올라가면, 위험하니 당신이 하시겠다고 우기셨습니다.


내가 코 흘리던 시절을 제외하면 진정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또 존경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즈음인 걸로 기억합니다. 철이 들어서였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사랑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가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경험했지만 잊혀졌던... 아니 정확하게는 나의 의지로 잊어버렸던, 아버지의 사랑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단칸방에서 셋방 살이를 할 만큼 어렵던 시절, 세 발 자전거를 사 가지고 오시던 모습... 시장에서 새 운동화를 사 가지고 자전거에 날 태우고 돌아오시던 모습... 당신이 스스로 거대한 놀이 기구가 되어 날 태워 주셨던 모습...


저는 2학년을 마치고, 1년 동안 휴학을 한 후 군대에 갔습니다. 큰형과 작은형은 부모님의 권유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전 2학년 2학기 때 과대표를 하느라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과대표를 맡은 아들이 자랑스러우셨나 봅니다. 주변분들에게 제가 과대표라고 자랑하시는 모습을 몇 번 보았습니다. 그까짓 과대표가 뭐라고... 전 대학 때 학생운동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었고, 대학 3학년을 학생운동의 꽃이라고 불렀습니다.

과대표도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학생회장을 하면 더 좋아하시겠지?


전 입대를 미루기 위해 과학생회장에 출마를 했습니다. 그런데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제일 먼저 자진사퇴를 했습니다. 입대를 미루기 위해 출마를 한다는 명분이 그닥 내세울만한 것이 못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던 상대편 후보는 저에게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전제 하에 사퇴하라고 하더군요. 전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1년 더 학교를 다닌 후 군대를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은 저 몰래 학교에 휴학계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전 부모님 몰래 병무청에 입영 연기를 신청했습니다. 휴학 후 1년이 다 되도록 입대 영장이 안 나오자 부모님은 감사원에 계시던 친척에게 왜 영장이 안 나오냐고, 빨리 군대에 보내달라고 연락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병무청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10월과 11월 중 언제 입대를 하겠냐고... 그리고 전 11월 15일 군대를 갔습니다. 전 군대 가기 전날 부모님께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다른 부모님은 빽을 써서 자식 군대를 안 보낸다는데, 세상에 빽 써서 군대 보내는 부모님이 어디 있냐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도 집엔 안 올 테니 그런 줄 아시라고!


다시 생각해 보니... 전 천하에 다시없는 불효자였던 것 같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전 부산에 있는 군수사령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한 번은 부대를 개방해 부모님을 모시는 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전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너무 머니 안 오셔도 된다고... 아버지는 미리 잡혀있던 친목계 약속도 깨시고 부산까지 내려오셨습니다. 부모가 안 가면 군대에 있는 자식 기죽는다고...



눈물이 나서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에 대한 기억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