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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9. 2020

신선함과 불편함 사이? "싱어게인"

연말연시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인해 집콕, 또는 집에서 반경 10Km를 벗어나지 못하는 뺑뺑이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요즘 유튜브에서 JTBC의 "싱어게인"을 찾아보는 낙으로 살고 있다. 며칠 전, 차마 만나지는 못하고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 친구로부터 "싱어게인"을 보냐는 질문을 받았다. 싱어게인? 전화를 끊고 바로 유튜브에 들어가 찾아봤다. 유튜브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다. 찾아보니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만 몰랐을 뿐, 이미 나도 한 번은 본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봤던 영상은 바로...

제목 참... 저 제목을 보고 손가락을 누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스카이 캐슬>의 테마 음악을 들으며 난 "싱어게인"의 심사위원들처럼 그저 팝송을 기가 막히게 선곡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수가 부른 노래라니... 신선한 충격을 받았지만, 난 그저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보이스 코리아" 류의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서너 가지 일이 겹쳐있어 바쁘기도 했지만, 봐야 할 유튜브 방송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싱어게인"을 봤냐는 질문을 받은 것이다.

친구로부터 질문을 받은 맥락은 사실 다소 불편했다. 얼마 전 첫 번째 책을 낸 후 가슴을 졸이고 있는 내게 친구는 책을 낸 것만으로도 큰 일인데 왜 그렇게 책 판매에 집착하냐는 질문을 받았고, 난 "지금보다 유명해지고 싶다"며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본심을 말해 버렸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도 숨기고 싶은 본심이라는 것이 있다. 자식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부모들 중, 그 훌륭하다는 경지에 다가간, 아니 다가가려고 마음이라도 먹은 부모는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내가 "유명"이라는 단어에 집착을 하는 이유는 예전에 받은 상처 탓도 있다. 얼마 전 책을 내고 싶은 마음에 출판사에 있는 지인에게 원고를 보낸 적이 있는데, 글은 좋은데 먼저 유명해지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글이 아무리 좋아도 유명하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싱어게인"에서 친구가 추천한 가수는 찐무명조의 63호였다. 친구는 63호의 노래를 들으니 유명하지 않아도 노래 부르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며 너도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

노래하는 모습이 진짜 즐거워 보이는 노란 신호등 같은 가수 63호

사실 나도 적지 않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진정 좋아하는 일은 직업이 아닌 취미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그 일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일반행정 기관인 은평구청에서 교육정책을 했을 땐 그저 즐거웠었다. 그런데, 교육행정 기관인 설시굑청에 들어가 지대로 교육정책을 해 보니 즐거움보다 책임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우리나라는 일반행정과 교육행정이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시장・구청장과 교육감을 따로 선출한다. 일반행정 기관에서 하는 교육정책은 '취미'일 수 있지만, 교육행정 기관에서의 하는 교육 정책은 책임이 따르는 '직업'이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약 내가 유명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행복할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내가 주변 사람들의 소소한 칭찬에 허파에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던 것 같다.

63호의 노래를 듣고 연관된 유튜브 영상을 계속 찾아봤다. 사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연관된 동영상이 자동으로 나를 유혹한다. 그 유혹을 따라가다 보면 한 시간, 아니 몇 시간이 훅 지나가 버리고 만다.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이 한 적이 있다. 김용의 18권짜리 무협 3부작 "영웅문"을 보며, 그리고 김영도의 15권짜리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를 보며 폐인으로 살았던, 소설은 끝이라도 있지... 그다음에 나에게 걸린 가수는 배 아픈 가수, 30호였다. 충만한 끼와 노래 실력을 제외하면 난 63호보다 이 친구가 더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를 부르기 전 30호는 자신이 매우 소심하며 다른 사람의 재능을 보는 것이 배가 아프다고 소개했다. (이런 뻥쟁이 같으니라구...)

30호의 허니는 선미의 심사평처럼 마치 밀당을 하는 듯한 딕션이 기가 막힌다.

63호와 30호에 이어 나의 눈길을 끈 가수는 나보다 살짝 어린 중년의 허스키 보이스 10호와 차분한 헤비메탈 록커 29호였다. 참고로 내가 대학교 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유는 타고난 미성(웩~)인 내 목소리를 허스키하게 바꾸고 싶어서였다. 차라리 사기그릇을 갈아서 물에 타 마실걸... 담배는 내 목소리는 그대로 두고 호흡과 고음만 골라서 빼앗아 갔다. ㅠㅠ

매력적인 허스키의 10호
감히 임재범의 노래를 범접해 극찬을 받은 29호

그 외에도 정말 대단한 가수들이 "싱어게인"에 등장해 나와 대중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홀렸다. 하지만 볼 것이 너무 많으면 무엇을 볼지 고르기가 쉽지 않은 법! 시장이 반찬이고, 가뭄 끝에 와야 단비지, 장마에 퍼 붙는 비는 민폐다. 그래서 그런지 63호와 30호, 10호와 29호 외에 기억이 나는 가수는... 신해철의 재즈 카페를 진짜 재즈풍으로 불렀던 비운의 아이돌 11호 정도? "나는 가수다"부터 느꼈던 거지만 우리나라엔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나다. 나름 고등학교 때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으로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던 나는 지금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를라 치면, 기타만 치라는 모욕을 일상적으로 감수하며 살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에 출간한 책,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의 해제를 써 주신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님도 "삶의 현장에서의 풍부한 체험, 작가로서의 노련한 솜씨, 사회진단가로서의 빼어난 혜안이 채희태 작가의 노래와 기타 솜씨보다 월등히 탁월합니다."라며 칭찬인지 악담인지 모를 글로 해제를 마무리하셨다.


자, 이제 "싱어게인"에 대해 비판적 관점의 고찰을 해 보겠다. 오해를 덜기 위해 밝히자면, 나는 기를 쓰고 "싱어게인"을 비판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테리우스가 숲 속에서 옷을 갈아입는 캔디의 모습을 보지 않고, 그저 눈에 비쳤을 뿐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나도 의도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내 눈에 그저 "싱어게인"의 부정성이 비쳤을 뿐이다. 원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고, 듣기 좋은 소리의 뒤편에는 딱 그만큼의 불편한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첫째, 유명과 무명을 가르는 불편한 기준

심사를 하는 사람과 심사를 받는 사람... 둘 사이의 기준은 무엇일까? 명쾌하고 아이러니한 기준이 있다. 바로 유명과 무명이다. "싱어게인"에 참가한 무명 가수들도 심사위원처럼 부모님이 정성껏 지어주신 이름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린다. "유명과 무명" 앞에 굳이 수식어를 붙이자면 "실력과 무관하게..."가 되겠다. 심사위원은 심사위원장을 맡은 유희열을 포함한 시니어(김종진, 이선희, 김이나)와 주니어(규현, 선미, 이해리, 송민호) 총 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포스터에 있던 전인권 옹은?). "싱어게인"에서 심사위원이 된 시니어와 주니어는 실력과 무관하게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는 무명가수들을 심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를 잘한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가수 '유미'의 등장과 탈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미는 실력에 비해 대중들에게 안 알려져 있다고 생각해 "싱어게인"에 나왔고, 심사위원들은 당신은 이미 충분히 유명하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유미는 2019년 자신의 얼굴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창현노래방”에도 나갔었다. 진행자 창현은 지금까지 출연자 중 가장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름을 밝히기 전까지 가수 유미를 알아보지 못했다.

초대받지 않은 잔치에 등장한 유미, 차라리 "별"을 불렀다면...

여기서 우리는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큰 모순을 깨달아야 한다. 성공은 결코 노오력의 결과가 아니며, 유명과 무명을 가르는 기준도 절대 실력과 재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행운이란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이보다 확실하게 구분하는 질문도 없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재능이 뛰어나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의 지적대로, 비슷한 재능으로 비슷하게 노력하는 다른 수많은 사람은 왜 그만큼 부를 이루지 못할까? (로버트 프랭크(Robert H. Frank). 2018.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정태영 역. 글항아리.)


그렇다. 우리는 운7기3도 아니고, 노력과 성공, 실력과 유명이 완벽하게 분리된 운7복3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기를 쓰고 성공하기 위해 '노오력'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책이 잘 팔려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둘째, 심사의 종말

얼마 전 "공정성 논란에 휘말린 미슐랭 가이드"라는 글을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미슐랭 가이드는 그저 취향일 뿐인 미각의 제국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해 온 유명한 레스토랑 가이드이다. 이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참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생존과 취식 사이의 관계는 그 시대의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데, 소위 배 부른 지배 계급은 먹기 위해 살고, 배 고픈 피지배 계급은 살기 위해 먹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음식을 맛의 기준으로 나누기 시작한 전통은 다분히 지배 계급의 문화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찍이 지배 계급은 자신이 노동 계급과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생존과 무관한 것에 주로 관심을 쏟아 왔다. 냄새로 와인의 맛을 구분하고, 포크와 나이프의 순서를 정하는 등 하등 생존과 관계없는 일에 몰두해 왔던 가장 큰 이유는 지배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고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태생적으로 무용한 것을 좋아했던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도 총을 들고 일제에 항거하지는 않았지만, 그 특유의 취향을 살려 의미 있는 항일운동을 하지 않았던가!

"난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총도... 들긴 했었군!

오늘날 심사만큼 덧없는 것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난 오래전부터 심사를 맡기면 평가가 아닌 컨설팅을 하거나, 아니면 참가자 모두에게 만점을 주거나, 그러다가 작년엔 아예 "불심사 선언"을 해 버렸다. 내 취향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재능과 노력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럴 주제도 안 되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싱어게인"의 심사를 차라리 "나는 가수다"처럼 100명에게 투표를 하게 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이건 뭐 전광훈 목사한테 예수님을 가르치라는 것도 아니고...


셋째, 경쟁, 네가 또 왜 여기서 나와?

“싱어게인"을 보며 나는 몇 년 전 "나는 가수다"를 처음 봤을 때 받았던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 희열은 딱 흙 속에 묻혀 있던 진주를 찾아내고, 등잔 밑에서 잠자고 있던 보물을 발견했을 때까지였다. "싱어게인"은 서로 비슷한 음악적 공감대를 가진 30호와 63호를, 그리고 10호와 29호를 주선해 만나게 해 주었으며, 선의의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마치 검투사처럼 원형극장으로 내 몰아 싸움을 붙였다. 그걸 아무런 자극 없이 지켜보는 우리는 칼에 찔려 피가 철철 흐르는 검투사를 눈살을 찌푸려가며 즐기던 로마의 시민들보다 덜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슷한 취향의 가수끼리 체급을 맞춰 경쟁시킨 제작진의 의도는 배려였을까, 아니면 둘 둥 하나를 배제하기 위함이었일까?


"싱어게인"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30호가 63호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잘난 심사위원들보다 음악적인 면에서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숫자를 달고 나온 무명 가수들이 바라는 건 딱 자신의 실력만큼 이름이 알려지고 싶은 매우 현실적이며 소박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에서 패배했으니 다시 무명으로 돌아가라고? 그 참혹함이 진정 선의의 경쟁일까?

이쯤 되면, 경쟁은 우리 사회의 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지독한 고질병이다. 어렵게 발굴한 가수들을 서로 경쟁시켜, 그중에서 단 하나의 승자를 반드시 선발해 내야 직성이 풀리는... 10호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29호를 다시 살리기 위해 이선희는 급기야 '슈퍼 어게인'을 사용했다. 1984년 강변가요제에 펌을 하고 나와 "J에게"를 부르며 대한민국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선희는 단단하고 시원한 목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다. 지나친 시원함에 질려 서서히 대중에게서 잊혀갈 즈음, "인연"이라는 노래로 다시금 촉촉하게 대중들의 마음을 적셨던... 여전히 앳된 얼굴, 하지만 모두를 품어 안는 이선희의 심사평은 "싱어게인"의 처참함을 달래는 한 줄기 빛처럼 보였다. 이선희는 ‘슈퍼 어게인’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29번이 떨어진 건 실력과 무관한 단지 심사위원의 취향의 문제라며 29번을 다시 무대에서 보고 싶다고 밝혔다.

싱어게인의 유일한 심사위원, 이선희

예전에도 경연 프로그램을 보며 말초신경은 좋아하는데, 마음은 영 찝찝한 ‘인지 부조화’ 상태를 경험한 적이 꽤 있었다. 아이돌 연습생들을 마치 아귀다툼과 다르지 않은 대규모 경쟁으로 몰아 세웠던 “프로듀스 101”은 너무 처참해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TV를 통한 대리경쟁을 통해 이 사회의 처참함을 학습한다.

요즘 아이들이 무섭고 싸가지가 없다고?


적어도 아이들 앞에 붙은 "요즘"이라는 단어가 주는 책임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함께 져야 하지 않을까?


이전 29화 경쟁을 너머 경계를 허무는 실험, 슈퍼밴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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