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Jul 04. 2020

인류 문명의 메타포, “진격의 거인”

“약속의 네버랜드”에 이어 딸이 강력 추천한 “진격의 거인”을 보고 있다. 난 만화를 볼 때 그림체를 많이 따지는 편이다. 국민학교 때 마징가Z와 태권V를 보며 메카닉에 빠져 살았던 필자는 다른 만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만약 필자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 취향에 갇혀 있었거나, 나아가 순정만화에 대한 편견을 깨지 못했다면 “들장미 소녀, 캔디”는 만나지 못했으리라... 여자들은 테리우스에 대한 환상으로 캔디를 보았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이야기의 반전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매력을 캔디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알버트씨가 윌리엄 아드레이인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알버트씨가 1편부터 나왔던 떡밥인 동산 위의 왕자님과도 동일 인물이라는 게 밝혀지는 맨 마지막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소오름이 돋을 정도다. 캔디 이후 필자는 순정 만화에 빠져 살았다. 황미나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이유의 장미”,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까지... 심지어 필자는 그림체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한때 “공포의 외인구단” 마저도 멀리 했을 정도니 편견이 가지고 있는 폐해를 일찍부터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히 장담한다. 만약 당신이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너머에 있는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시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들이 모두 “진격의 거인”에 대해 입방아를 찧을 때 필자는 만화책 1권 표지에 등장하는 거인의 그림체가 별로라 흥미를 갖지 않았었다. 그 익숙하지 않은 그림 뒤에 엄청난 인류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고...

진격의 거인 1권 표지

지금에라도 딸의 추천을 받아들여 “진격의 거인”을 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굳이 고전이 아니더라고 성공한 문화 콘텐츠에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메타포를 함의하고 있다. 진격의 거인도 그렇다.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과의 싸움은 거인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인간과 인간의 싸움으로 옮겨간다. 주인공 에렌의 친구인 아르민은 자신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건,
우릴 잡아먹으려 해서 죽이는 게 아니야.
생각이 다르다고 죽이는 거지.”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살기 위해? 아니면 정보의 확장 속에서 갈수록 옹색해지고 있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정치는, 경제는, 문화는, 그래고 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해? 아니면, 그 안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섬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륙을 이해하지 못하며, 대륙의 한가운데에선 바다를 상상할 수 없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라고 말했다. 과거 원시 인류는 미지에 대한 공포를 이겨 내기 위해 신을 창조해 냈으며, 적어도 신 앞에서 겸허하게 손을 잡았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연대에서 벗어나 이익을 위한 투쟁에 익숙해진 인류 앞에 다시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가 등장했다.


인류는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해 연대할 것인가, 아니면 생존과 무관한 이익 투쟁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입원 5일째... 조금 살만해졌다고 잡생각만 늘어난다. 필자도 생존의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이전 25화 약속의 네버랜드 19권, 만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