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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n 02. 2020

“자본주의”라는 괴물과 함께 살기

"약속의 네버랜드"를 읽으며...

얼마 전 딸로부터 만화 하나를 추천받았다. 바로 잘 나가는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를 비롯한 일본의 만화 거장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약속의 네버랜드”라는 만화다. 최근 웹툰에 푸욱 빠져 있는 나는 그저 딸의 취향이겠거니 싶어 처음엔 추천을 무시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딸의 감시하에 꾸역꾸역 1편을 보고 말았다. 그런데, 대에박! 소오름! 이건 마치 '이가라시 유미코'의 "들장미 소녀 캔디"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를 결합해 놓은 대작이 아닌가!

"약속의 네버랜드"의 이야기는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고아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주인공 엠마가 등장한다.

시작은 마치 순정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발랄하고 유쾌하다. 일본 만화계에서 본좌급으로 인정받는 '아키모토 오사무'는 처음에 귀여운 그림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뻐뜨, 그러나...


일본은 엽기적인 소재를 상상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한 것 같다. 학원 멜로물 제목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든지, 심지어 "암살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목표가 대놓고 선생님을 암살하는 것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스토리는 제목처럼 엽기적이지 않으며, 결국 학생들이 선생님을 암살하는 "암살 교실"의 엔딩은 콧물까지는 몰라도 눈물을 참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감동적이다.

"약속의 네버랜드"도 GF(Grace Field)라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귀신이라는 존재의 식용으로 길러진다는 매우 엽기적인 내용... 식용이 될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엄마, '이자벨라'의 표정에서 "몬스터"의 빌런, '요한'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약속의 네버랜드"의 이자벨라(위)와 "몬스터"의 요한(아래)의 표정...

아무리 허구라도 현실에 존재할 법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드라마'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 이외의 지적 존재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판타지라 부른다. 그냥 호랑이가 등장하면 드라마지만,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면 그것은 판타지가 된다. 반지의 제왕처럼 엘프, 트롤, 오크 등 인간 이외의 상상 속 종족들이 등장하는 판타지도 있다. "약속의 네버랜드"에는 귀신이라는 지적 존재가 등장한다. 귀신은 인간을 먹어야만 지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식용 인간을 재배한다. 알고 있겠지만, 제목에 있는 '네버랜드'는 피터팬에 등장하는 나이를 먹지 않는 아이들의 섬이다. GF도 식용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이외의 아이들은 모두 12세 이전에 귀신의 먹잇감으로 "출하"되니 '네버랜드'처럼 어른이 살지 않는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같지도 않은 신들이 당시의 지배계급을 은유한 것이라면, 판타지에 등장하는 괴물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단단한 '사회 구조'를 상징한다. '정성훈'은 『괴물과 함께 살기』에서 용감하게도 '자본주의'를 대놓고 괴물에 빗댔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괴물이 태어나기 전의 인물로, "토마스 홉스"는 최초로 자본주의라는 구조를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로 대상화한 인물로,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자유를 지켜주는 괴물과 그 자유가 만들어 낸 괴물"로, 그 유명한 '루소'와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괴물과 맞서 싸우다 생겨난 괴물"로 표현했다. 그 이후에도 시대를 풍미한 유명한 사상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비유가 이어지지만, 아직 마르크스에 대한 합의에도 이르지 못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므로 생략한다. (참고1)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정성훈'의『괴물과 함께 살기』

"약속의 네버랜드"에 등장하는 소름 끼치는 설정... 아이들을 식용으로 먹는 귀신도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데, 마치 우리에 가두어놓고 키우는 소와 초원에 풀어놓고 키우는 소에 다른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약속의 네버랜드"에도 캡슐에 가두어 놓고 키우는 '식용아'와 GF에서처럼 엄마의 사랑을 받고 키워진 아이들은 다른 등급으로 분류된다. GF의 아이들은 아침을 먹자마자 매일 시험을 보는데, 시험에서 매일 만점을 맞는 엠마, 노먼, 레이는 왕족에게 진상되는 A+++ 등급의 식용아다. 그것을 알리 없는 아이들은 엄마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한다. 이건 완전히 미친 설정이다!

가장 맛있는 아이를 길러내는 '이자벨라'는 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육사로 인정받는다.


과거에는 그래도 '드라마'와 '판타지'에 등장하는 주인공 사이에 꽤 넓은 간극이 존재했다. 하지만 말기 자본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재, 언젠가부터 드라마와 판타지 사이를 넘나드는 괴물 같은 인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몬스터에 등장하는 '요한'이나 "약속의 네버랜드"에서 인간을 사육하는 '이사벨라'가 바로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찾아보자면 과거 인종학살을 자행했던 나치가 바로 인격을 가진 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치는 국가라는 집단을 통해 형성된 괴물이니 퇴치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등장하는 인격화된 괴물은 집단이 아닌 개인이 되어 일상의 거리를 활보한다. 넷플릭스에서 절찬 연재 중인 "인간 수업"에서 조건만남을 알선하는 고등학생 '오지수'나, 현실 세계에서 n번 방을 만들어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소위 '박사'들이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격화된 괴물은 사회 구조라는 괴물이 만들어 낸 '사생아'다.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사회 문제의 책임을 개연에게 전가하지 않고 구조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진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핏대 세워 사회문제를 비판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우리 모두가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 어마어마한 구조의 책임을 힘없는 개인에게 전가할 것인가!


딸의 강압에 의해 "약속의 네버랜드" 1권을 본 나는 바로 알라딘에 들어가 16권 모두를 e-book으로 구매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오매불망 오프라인으로 발매된 17권이 e-book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 1 : 그럼에도 이념 대립으로 민족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 땅에서는 정규교과 과정으로 마르크스 사상을 왜곡과 악마화 없이 있는 그대로 접할 기회가 없다. 2005년 영국 BBC에서는 설문조사를 했다. 전문가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를 뽑아달라고 했는데, 마르크스가 1위였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접촉면은 너무나 협소하다. (임승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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