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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l 31. 2021

코로나발 학력저하, 교육의 위기일까, 교사의 위기일까?

1. 들어가며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021년 6월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축소로 지난해 교과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학년과 과목에 따라 많게는 갑절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생들이 국가 교육과정의 교육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으로, 매년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약 3%(지난해 2만 1179명)를 대상으로 실시된다(이유진, 2021).

마치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머지않은 미래에 대부분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며 공포감을 조성했던 2016년 다보스포럼이 떠오른다. 인류는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드디어 농경에서 시작된 고단한 노동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노동을 해 주겠다는데 그게 과연 호들갑을 떨 일일까(채희태, 2020: 59-60)?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억제하거나 부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는 경우가 잦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부동산을 보유하지 못한 국민을 위한 것일까? 코로나로 인해 기초학력이 저하되었다며 교육의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하고 싶다. 학력은 기성세대, 그중에서도 교육전문가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존재 이유일 수도 있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소위 교육전문가들이 자신이 아닌 아이들을 위해 교육의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고 자처하려면 학력 저하를 걱정하기 전에 학력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행복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과거와 다른 현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와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는 학력을 기준으로 교육의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살아갈 인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의심해 보고자 한다.


2. 평균의 종말과 총량의 법칙

학력이 학생 개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심리 공동체와 그 속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소수의 누군가에게 유리한 기준일 수 있다는 도발적 의심을 제기하는 근거로 ‘토드 로즈’와 ‘다이엘 페낙’ 만한 사례가 또 있을까?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과 "다니엘 페낙"의 『학교의 슬픔』 표지

현재 하버드의 교육대학원 교수인 토드 로즈는 중학교 때 ADHD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대학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통과해 지역대학에 입학한 후 주경야독한 끝에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인간발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토드 로즈는 『평균의 종말』을 통해 평균이라는 허상이 어떻게 교육을 속여 왔는지 고발했다. 최초의 평균은 천문학자인 ‘아돌프 케틀레’가 매번 다르게 측정되는 지구와 행성 간의 거리를 발표하기 위해 도입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굴절된다. 이후 평균은 영국의 귀족 ‘프랜시스 골턴’에 의해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가 ‘에드워드 손다이크’에 의해 학생들을 등급으로 나누는 근거가 되어 지금까지도 교육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다.


교사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 ‘다니엘 페낙’은 어린 시절 알파벳 ‘a’를 익히는데 무려 1년이나 걸릴 정도로 열등생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땐 부모의 금고를 털어 기숙학교에 보내졌는데, 그곳에서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되어 프랑스 니스와 엑스의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1969년부터 1995년까지 파리와 파리 근교 수아송의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다니엘 페낙은 『학교의 슬픔』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교육 현장의 아이러니를 살폈다.


“그러니까 학교에 관한 책이 또 하나 나오는 거네? 그런 책은 꽤 많지 않아?”
 “학교에 관한 책이 아냐! 모두들 학교를 다루고 있고, 신구 논쟁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어. 학교의 프로그램, 학교의 사회적인 역할, 그 궁극적인 목표, 과거의 학교와 오늘의 학교…… 그런데 열등생에 관한 책은 없거든!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 그리고 그로부터 겪게 되는 정신적인 충격을 다루는 책……”
 “그게 그렇게 힘들었어(다니엘 페낙, 2014: 22-23)?”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이승엽은 당시 한국 야구 대표팀의 4번 타자였다. 하지만 이승엽은 예선 7경기에서 23타수 3안타로 부진했고, 일본 대표팀의 호시노 감독은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계속 4번에 기용하고 있는 김경문 감독을 대단하다며 비꼬았다. 미루어 짐작건대 김경문 감독은 평균이 아닌 총량의 법칙을 적용해 이승엽을 계속 기용했을 것이다. 10타석에서 평균 3개의 홈런을 치는 선수가 매 타석에서 헛스윙을 한다면 총량의 법칙에 의해 홈런을 칠 확률은 점점 더 올라가는 것이다. 결국 이승엽은 준결승에서 만난 일본과의 경기에서 8회 역전 투런 홈런을 터뜨렸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1회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리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기뻐하는 이승엽선수(사진:연합뉴스)

관계의 고통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착각하면서 시작되고, 변하는 과정에 있는 감정을 변하지 않는 결과라고 오해하면서 증폭된다. 교육의 고통도 다르지 않다. 학력의 부각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시작되고, 변하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오로지 학력의 기준으로 억압하면서 증폭된다. 부모로부터 비롯되었으되 자주적 인격체로 존재하는 아이 개개인은 결과로서의 평균이 아니라 저마다 가지고 있는 소중한 총량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피그말리온 효과와 교육

피그말리온 효과는 무언가에 대한 사람의 믿음, 기대, 예측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을 말한다(위키백과).


1968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과 초등학교 교장인 레노어 제이콥슨(Lenore Jacobson)은 피그말리온 효과가 교육 현장의 아이들에게 해당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시행했다. 검사한 지능지수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20%의 학생을 뽑아 그 명단을 담임교사에게 주었다. 그 명단에는 '이 학생들은 지적 능력이나 학업 성취 향상 가능성이 크다고 판명된 학생'이라는 거짓 정보가 들어 있었다. 8개월 후 다시 지능검사를 하여 처음과 비교해 보았을 때 결과는 놀라웠다. 명단에 속한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평균점수가 높게 나타났을 뿐 아니라 8개월 전보다 지능지수가 큰 폭으로 향상되었다(안태환, 2020).


학력을 기준으로 1등과 꼴등을 변별해 수직의 줄을 세우는 것은 불평등한 구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제물로 삼는 것과 다르지 않다. 17% 빙산이 수면 위로 떠 오르려면 구조적으로 83%의 빙산이 수면 아래 잠겨 있어야 한다. 빙산의 일각이 되기 위한 극한 경쟁은 불평등한 구조를 더욱 고착시킬 뿐이다. 범람하는 자격증으로 인해 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지위는 갈수록 하찮아지고 있지만, 자격을 부여하는 사람의 지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in 서울 대학에 스카이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한 것은 in 서울 대학의 노력이 아니라 학력이라는 기준 앞에 아무런 의심 없이 줄을 서 있는 우리 모두인지 모른다. 나침반의 바늘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있다면 고장이 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왜 교육은 의미를 상실한 채 꼿꼿하게 서 있는 학력이라는 기준이 흔들리면 다시 세우기 위해서만 몰입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학력이라는 획일화된 기준이 무너져야 비로소 다양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소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4. 교육, 그리고 학력의 진정한 쓸모는?

교육의 관점으로 보아도 매우 흥미로운 두 편의 만화를 소개한다. 먼저 소개할 작품은 2010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어 얼마 전에 완결된 『진격의 거인』이다. 『진격의 거인』에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거인이 등장하는데, 인류는 거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삼중 벽을 쌓고 그 안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또한, 인류는 거인에 맞서기 위해 병단을 조직하는데, 성적이 가장 뛰어난 훈련병에게는 벽 중앙, 가장 안전한 곳에 있는 왕을 지키는 헌병단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거인에게서 멀어지려고 거인을 죽이는 기술을 익히는 구조가 말이야(4권 p.140 앨런의 대사).


『진격의 거인』4권 p137

두 번째 소개할 만화는 『약속의 네버랜드』라는 만화다. 시작은 마치 순정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발랄하고 유쾌하다. 일본은 엽기적인 소재를 상상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학원 멜로물 제목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든지, 심지어 "암살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목표가 대놓고 선생님을 암살하는 것이다. "약속의 네버랜드"도 GF(Grace Field)라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귀신의 식용으로 길러진다는 매우 엽기적인 내용이다. 인간처럼 지적 존재로 등장하는 귀신은 인간을 먹어야만 지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식용 인간을 재배한다. 눈치챘겠지만, 제목에 있는 '네버랜드'는 피터팬에 등장하는 나이를 먹지 않는 아이들의 섬이다. GF도 식용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이외의 아이들은 모두 12세 이전에 귀신의 먹잇감으로 "출하"되니 '네버랜드'처럼 어른이 살지 않는다. "약속의 네버랜드"에 등장하는 소름 끼치는 설정은 아이들을 식용으로 먹는 귀신도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데, 마치 우리에 가두어놓고 키우는 소와 초원에 풀어놓고 키우는 소에 다른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약속의 네버랜드"에도 캡슐에 가두어 놓고 키우는 '식용아'와 GF에서처럼 엄마의 사랑을 받고 키워진 아이들을 “등급”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GF의 아이들은 아침을 먹자마자 매일 시험을 보는데, 시험에서 매일 만점을 맞는 엠마, 노먼, 레이는 왕족에게 진상되는 A+++ 등급의 식용아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엄마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한다.

 

『약속의 네버랜드』 1권 p17~18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콘텐츠에 성인들의 관심사인 섹스와 권력, 그리고 음모가 주로 담겨 있듯, 만화가 아이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만화 속에는 기성세대를 바라보든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잔뜩 담겨 있다. 동화는 동심으로 충만한 아이들이 아니라 동심을 잃은 어른들이 읽어야 하듯, 만화도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눈에는 학력을 주장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모습이 마치 “약속의 네버랜드”에 나오는 괴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5. 나오며 :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교사들, 진화에 실패한 교육


우리는 우리의 먼 조상이었던 연체동물 이래로 생명체가 따랐던 두 가지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동물들은 골격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몇몇 종(種)들은 조직 내부에 뼈를 만들었고, 다른 동물들은 조직 전체를 둘러싸는 딱딱한 껍질을 만들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분명 효율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더 확실히 보호되는 듯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생체기관들이 드러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딱딱한 껍질은 변형시키거나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결국 가장 창조적인 진화를 한 것은 가장 보호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종이었습니다(알베르 자카르, 1999: 201-202).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 안에서 진화를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 갑각류

상호작용은 진화의 중요한 키워드이며,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을 동반한다. 관계의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는 상호작용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계급사회에선 계급이라는 관계의 기준을 지배계급이 정했고, 그 기준은 능력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귀속되어 있는 혈통이었다. 가부장제에선 남성이 여성과의 관계 기준을 폭력적 결정한다. 농경이 시작된 이래로 대략 1만 년 동안 여성들은 남성들이 정한 기준을 받아들여 왔다. 교육 안에서 학력의 기준은 누가 정하고 있을까? 권력과 결합한 기준은 상호작용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 정치도, 종교도, 심지어 교육도 미래를 예측해 준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다. 기준을 합의하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배제하고 수평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기초학력 저하를 걱정하기 전에 기초학력의 기준을 누가, 왜, 언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정했는지를 의심하고 진단해 보는 것이 먼저 아닐까?


요즘 “라켓 소년단”이라는 드라마에 푸욱 빠져 살고 있다.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라켓 소년단이라는 문화콘텐츠에서 교육이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차고 넘치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부상으로 핵심 전력 둘이 빠진 상태에서 결승에 임하는 해남 서중, 가장 중요한 결승 파이널 단식에 듣보잡 후보 선수를 배치한 오더를 본 국가대표 감독은 해남 서중이 경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해남 서중이 어떻게 소년체전을 준비해 왔는지 잘 알고 있는 라영자 코치는 왜 보지도 않고 훈련을 안 했다고 생각하며, 경기를 포기했다고 판단하냐고 묻는다. 꼰대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방탄, 아니 "라켓 소년단" 15화 중

사실 해남 서중의 윤현중 코치는 1등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배드민턴을 포기할 이유가 없으며,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기회가 온다며 후보들 훈련에 더 큰 심혈을 기울여 왔다. 교사의 역할은 학력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발 기초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교육의 확신 뒤에 과연 누구의 행복과 이익이 숨겨져 있는지 먼저 의심해 보았으면 한다.


참고 문헌 및 자료

이유진(2021). “‘기초학력 미달’ 최대 2배 이상 증가…코로나발 학력저하 공식 확인”. 『한겨레신문』 (6/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97659.html> 검색일: 2021/7/25.

채희태(2021).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작은숲.

안태환(2020). “로젠탈 효과”. 『경남도민일보』 (4/24).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27879> 검색일: 2021/7/25.

다니엘 페낙(2014). 『학교의 슬픔』. 윤정임 역. 문학동네.

시라이 카이주・데미즈 포스카(2017). 『약속의 네버랜드』1권. 학산문화사.

알베르 자카르(1999).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 장혜영 역. 동문선.

이사야마 하지메(2011). 『진격의 거인 』4권. 학산문화사.

토드 로즈(2018). 『평균의 종말』. 정미나 역.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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