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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Oct 23. 2021

꼰대에게 희망을 1

  글은 민들레출판사의 『격월간 민들레』 137(2021 9 25 발행) 기고한 글이며 글에 등장하는 딸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 경이로운 일이다. 그 경이로움 안에는 오랜 시간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도 포함된다. 옆지기가 첫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내가 했던 첫 번째 행동은 머리카락을 샛노랗게 탈색하는 것이었다. 딱히 노란 머리카락이 어울리지 않는 사회적 지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전엔 부모 눈치, 회사 눈치를 보느라 탈색은 꿈도 못 꿨다. 나에게 탈색은 ‘아빠가 되고 나면 영원히 해선 안 될 것 같은 마지막 외도(?)’ 같은 것이었다.


첫째에 이어 둘째 딸이 태어나고, 난 아이들이 자라는 시기에 맞춰 동요를 배우고, 만화영화 주제가를 따라 부르고, 아이돌 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EXO 멤버 12명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EXO-K와 EXO-M을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지만, 딸이 느닷없이 EXO에서 탈덕하고 BTS로 갈아타는 바람에 나의 노력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때 즈음인 것 같다. 점점 멀어져 가는 첫째 딸을 따라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던 것이….


뜬금없는 BTS 사진

앞서 커나가는 첫째 딸과 공통의 관심사를 갖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했다. 책을 좋아하는 딸에게 내가 비슷한 나이에 읽었던 책을 몇 권 추천해주기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오른 책이 내가 중학교 때 읽었던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었다. 주문한 책을 딸에게 전해주기 전, 나는 중학교 때 추억을 떠올리고 싶어 책을 들춰 보았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중학생이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한낱 애벌레도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왜 인간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교육이라는 껍질 안에 가두려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줄무늬 애벌레가 노란 애벌레를 딛고 올라서는 장면에선 입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했다.


성급하게 일반화할 생각은 없지만, 육아가 처음인 부모들에게 첫째는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렵고, 어렵다. 그건 첫째로 태어난 아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모방할 대상이 없다는 것, 부모의 시선을 끌어줄 손위 형제가 없다는 것은 첫째가 감당해야 할 두려움이고 어려움일 것이다. 옛날처럼 첫째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부모를 대신할 권위를 갖는다던가 하는…. 첫째에게 적용했던 철저한 육아의 기준은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를 겪은 후 둘째에게는 비교적 관대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그렇다고 둘째가 가지는 설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잊지 못할 그날

딸들에게 사랑인지 기대인지 모를 감정을 일방적으로 키워가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건이 터졌다. 첫째가 중학생이 되던 해, 둘째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가족 외식을 하기로 했다. 시간이 되어 옷을 차려입고 나가려는데 첫째가 갑자기 가기 싫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차라리 몸이 아프다거나 하는 핑계라도 대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았다. 첫째는 중학생이 되면서 부쩍, 그것도 대놓고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난 옆지기에게 딸을 설득해보겠노라고 한 후 침대에 돌아누워 있는 딸에게 말을 걸었다. “동생은 얼마 전 네 생일에 선물도 줬잖아. 동생 생일인데 같이 밥만 먹고 들어오면 안 될까?”

딸은 등을 돌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난 계속해서 설득을 이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둘째만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고 와도 되었는데, 그 당시엔 갈수록 삐딱해지는 딸의 고집을 기어이 꺾어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조금씩 이 설득이 어떻게 끝이 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나는 대꾸라도 좀 하라며 누워있는 딸을 일으켜 앉혔다. 그러자 딸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왜 울어? 아빠가 때렸어? 아빠가 말을 하면 대꾸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내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난 딸에게 세수를 하고 오라고 ‘명령’했다. 딸은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난 딸의 팔목을 잡고 강제로 방에서 끌어냈다. 딸은 내 팔을 뿌리치며 나에게 고함을 질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딸의 뺨을 후려쳤다.


아빠! 여보!


둘째와 옆지기가 놀라 동시에 소리를 쳤다. 나도 내 행동에 놀랐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람 새끼면 그 정도 얘기하면 알아 들어야지!” 분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숨이 가빠 식식거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금씩 진정이 되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그 당시 서울시교육청에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혁신교육지구를 담당하고 있었던 나는 당장 사표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더 이상 ‘교육’이란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담배 한 갑이 동이 났다. 그제야 뺨을 맞은 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딸의 뺨을 때렸던 순간이 반복적으로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장면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집으로 들어가자 옆지기는 침대에 걸터앉아 딸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옆지기는 자리를 내어주었다. 난 옆지기가 앉았던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딸을 쳐다보았다. 나에게 맞은 볼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순간 나는 비겁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딸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채 통곡을 했다. 딸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아빠 이럴 줄 알고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거 아빠한테 맞아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긁어서 그런 거야.”

내 통곡 소리는 더 커졌다. 딸은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나는 울먹이며 딸한테 이야기했다.


아빠가 미안해.
앞으로는 네가 아빠한테 욕을 해도 너한테 손찌검 안 할게
나도 미안해, 그런데 난 아빠한테 다시 안 그러겠다고 약속을 못하겠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거든.


내가 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우는 사이 옆지기와 둘째 딸은 생일 케이크를 사서 들어왔다. 나의 돌발 행동에 놀란 가족은 케이크 앞에 어색하게 둘러앉았다. 초를 붙이기 전, 나는 가족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울먹이며 가족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를 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 "꼰대에게 희망"을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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