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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Oct 06. 2021

오징어 게임과 대장동 사태(궤변 주의)

지금부터 나는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작금의 시대는 바야흐로 가짜 뉴스가 판치는 궤변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사실과 무관하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글은 논리로, 자신에게 해가 되는 글은 궤변으로 인식한다. 내가 대놓고 궤변을 늘어놓겠다고 한 이유는 나의 논리를 궤변으로 인식할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이 글이 그대의 이익을 침해할 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지어다. 이 글은 그저 궤변일 뿐이니…

작정하고 궤변을 쓰려고 보니 궤변의 달인, 변某 씨의 심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듣보잡인 나에게 나쁜 관심이라고 가져주었으면 하는 '모태 관종'의 기대랄까?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바로 국내 드라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오징어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미국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고 있고, 넷플릭스 역대 세계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브리저튼>까지 제칠 기세다. 연출은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린 황동혁 감독이 맡았다.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에 대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우회적으로 그린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라고 소개했다. 다양한 평이 난무하지만, 난 <오징어 게임>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을 소재로 글을 한번 써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때마침 <오징어 게임>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는 <대장동 사태>가 터진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어쩔 수 없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456명처럼,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적 고통은 우리 모두가 동의한 결과일지 모른다. 물론 동의의 방법이 적극적 참여냐, 적극적 무관심이냐의 차이는 있다. 이걸 전문용어로 “정도의 차이”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 투표를 하지 않아도, 또는 자신이 투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해도 다수의 선택을 받은 후보가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할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에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징어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고통을 생산하고 있는 이 시대의 구조에 민주적으로 동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의 차이를 내세워 고통의 책임과 자신을 간편하게 분리한다.


난 너와 달라!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통해 이 시대가 고통스러운 이유를 은유적으로 까발린다. 무한 경쟁을 앞세운 이 사회의 질서는 누군가의 이익(재미?)을 위해 설계된 하나의 게임이고 규칙일 뿐이라고…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에서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비합리적 종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공정을 요구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공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오징어 게임의 진행을 총 지휘하는 검은 마스크의 프런트맨도 공정을 이야기한다. 프런트맨은 게임에서 진 사람들의 장기를 팔아먹기 위해 의사 출신 참가자에게 게임 규칙을 미리 알려준 진행요원을 응징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들이 시체에서 장기를 떼어 내서 팔든 장기를 통째로 씹어 먹든 난 관심이 없어. 하지만 너희들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걸 망쳐 놨어. 평등이야.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5화 평등한 세상 중).


내가 확인한 <오징어 게임> 공정은 대략 다음의  가지로 보인다.  번째 운이든 실력이든 게임에서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  번째, (, 지식, 권력) 가진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을 언제든 죽여도 된다(4 쫄려도 편먹기).  번째, 짝이 없는 불쌍한 깍두기는 봐준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져 기억도 가물가물한  번째 빼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공정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4화 "쫄려도 편먹기"에서는 참여자들끼리 약한 경쟁자를 솎아내기 위한 공정한 학살이 벌어진다.


우리가 합의한 이 시대 고통의 질서는 열심히 노력해 공정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열심히 살면 살수록 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게임의 규칙을 미리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거나(달고나 뽑기), 2인이 함께 살기 위해 편을 먹었는데 편 먹은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거나(구슬치기)… 황동혁 감독은 우리가 이 고통의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 준다. 바로 과반 이상이 게임을 그만 하자고 합의하는 것이다. 참 쉽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 쉬운 방법이 가장 어렵다.


이제 대장동 사태를 살펴보자. 부동산 투자엔 관심도 재주도 없는 나는 그게 뭔 일인지,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는 이야기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 다만 부동산 개발이라는 게 원래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 대열에 기꺼이 끼고 싶지만, 배팅할 돈이 없다. 대한민국 경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토건 세력이 평당 10만 원짜리 땅에 거품을 섞어 1억 원짜리 땅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모종교 단체는 어마어마한 헌금을 세탁하기 위해 대규모 성지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게 궤변을 논리로 둔갑시키기 위해 끌어온 루머라면 그 말을 나에게 해준 지인을 공개할 용의도 없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거품 위에 건설된 경제 성장의 이익과 고통을 '공정'하게 함께 누리며 살고 있다. 원래 아파트 개발의 본질이 그렇다는 걸  몰랐다는 듯이 성내지 말자. 만약 성남시가 관여하지 않고 오롯이 민간 자본이 투자해 개발했다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까? 상기하자! 우리는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누군가는 이명박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에 투표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선거 제도의 간편함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결과를 만든 사람들이 1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이 떠들어 대고 있는 대장동 개발 사업에 분기탱천하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나도 가슴 졸이며 투자했는데 왜 난 저만큼의 수익을 못 냈을까? 화가 난다, 화가 나~
둘째, 과정은 중요치 않아 오직 결과만 보고 판단할 거야! 결과가 잘 된 거 보니 분명히 구린 데가 있을 거야, 아이고 배야~
셋째, 내가 벌레보다 더 혐오하는 정치인이 관여된 일이니, 기회는 찬스라고 무조건 엮어야 돼, 동네 사람들~~~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456억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불만을 제기하기 전에 모두 죽었으니까. 그런데 오징어 게임과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 게임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찌질하게 살아남아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한다. 방귀 뀐 놈이 당당하게 성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다 방귀를 뀔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어떤 사회적 문제에 분노하고 있고, 그 분노가 인류가 추구해 온 보편적 가치가 아닌 개인의 이익과 연관된 일이라면 이익과 가치를 버무려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문제는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플랫폼에서 이뤄진 거래액이 전년 대비 29.6% 증가한 약 126조 원으로 집계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음식 가격과 배달비를 합친 음식 배달 거래액은 20조 1천5억 원으로 전년(14조 36억 원) 대비 43.5% 증가했다고 밝혔다. 배달앱의 거래액이 증가한 것이 오롯이 배달앱이 노력한 결과일까? 그렇다면 코로나를 배달앱이 일으킨 것일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없다면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는 자동차를 팔아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를 팔기 위해 자동차 회사는 도로부터 깔아야 할까? 대장동 사태를 보며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대장동 사업에 투자해 수익을 올린 개인이 아니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수익을 가능하게 한 부동산 개발의 수익 구조이다. 5천 원을 주고 산 로또에 당첨되어 수십억 원의 당첨금을 받은 사람에게 왜 로또를 샀느냐고 비난할 수는 없다. 로또와 부동산의 수익 구조는 달라야 한다. 부동산 개발을 통한 이익이 개인의 정당한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적절하게 환수해 분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합의된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오징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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