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Oct 17. 2021

17년 만에 밝혀진 홍반장의 과거

<갯마을 차차차> 15화 리뷰

<갯마을 차차차> 15화에서 마침내 홍반장의 과거가 밝혀졌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이후 무려 17년 동안 미궁에 빠져 있던 비밀이 비로소 풀린 것이다. 홍반장의 과거사를 알게 된 시청자들은 "투자판을 모르는 작가의 억지 서사"라는 비판과 "경비원 가족의 감정선이 리얼해 이해가 간다"며 억지까지는 아니라는 옹호의 입장이 분분하다. 홍반장의 숨겨진 5년이 펀드 매니저였다니, 더 거창한 걸 기대했던 나 또한 힘이 빠지기는 하지만, 그런 관점으로 보면 개연성보다 알레고리로 가득 찬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쓰레기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홍반장>를 기억하고,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찾아보는 이유가 단지 홍반장의 과거가 궁금하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면 끝까지 비밀을 밝히지 않고 떠난 영화배우 "김주혁"에 대해 그리운 마음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더했을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굴레 안에서 돈이 아니라 행복을 좇는 홍반장의 모습을 통해 차마 그러지 못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영화 <홍반장>을 17년 만에 드라마로 소환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는 졸저,『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에서 홍반장의 과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견한 바 있다.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표지와 해당 페이지
영화에서 홍반장은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도 척척 해내는 신비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결혼을 독촉하는 혜진의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당 5만 원짜리 남자 친구 역할을 하게 된 홍반장은 혜진의 아빠와 바둑을 두며 한 수 물러 달라는 혜진 아빠의 애걸을 천연덕스럽게 물리치고, 프로급 골프 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경영 용어도 척척 구사하며 혜진 아빠의 환심을 산다. 주인공 홍 반장을 과도하게 돋보이게 하려는 지극히 영화다운 설정이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홍반장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로 나아갔다가 마을로 되돌아온 백수로 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홍 반장은 그래 봤자 상대적인 인간의 행복 지수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백수 과시 p124).


내가 15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그토록 기대했던 홍반장의 과거가 가지고 있는 무게가 아니라, 소위 피해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뻔뻔함에 대한 어이없음이었다.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인적 탐욕(이유야 어쨌든)을 위해 펀드에 투자해 손해를 본 것이 홍반장의 잘못일까? 그리고 펀드에 투자해 돈을 날리고 자살을 기도한 도하의 아빠에게 가는 도중 자동차가 트럭에 받혀 남편이 죽은 것이 과연 홍반장의 잘못일까? 홍반장은 도의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전재산을 도하의 어머니에게 갖다 바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지 못한다. 심지어 남편을 잃은 지PD의 이종사촌누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뻔뻔함을 고이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그때 너한테 그랬던 거 미안하다고는 안 할게.
그때는 나 정말 살고 싶지가 않았거든…


그럼, 의도된 필연이 아닌 우연한 자동차 사고로 남편은 살고 홍반장이 죽었어야 했다는 말인가? 홍반장을 원망하면서 잘생긴 홍반장의 얼굴에 스크레치를 내고, 가뜩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온 홍반장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안겨준 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다.

당신 잘못 아니야. 나, 내가 아닌 거 아는데,
나도 누구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어, 그냥.


뻔뻔함의 차이...

사람은 누구나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 주길 바란다. 그 잘못이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복잡한 구조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저 구조의 피조물일 뿐인 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문제의 해결과 무관하게 그러고 나면 진짜 속이 시원해지기는 한다. 과거 등교를 거부하던 사춘기 딸로 인해 늘 가슴에 유서를 품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난 딸의 패드립을 듣고 난 후 묵직했던 가슴이 갑자기 뻥~ 하고 뚫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고통의 책임을 전가할 대상으로 딸을 지목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 묘한 감정의 실체를 확인한 후 나는 스스로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내가 감히 누굴 탓하랴...


2004년 3월 12일 "김주혁"으로부터 시작했던 홍반장 스토리가 2021년 10월 17일 마침내 "김선호"의 <갯마을 차차차>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날도 쌀쌀해 지는데, 그동안 같은 백수로서 마음을 나누었던 홍반장마저 떠났으니 이 허전함을 어찌할꼬... <갯마을 차차차> 마지막회에 대한 5줄 평으로 일단은 그 허전함을 갈음해야겠다.


건강식품과 도미노 피자 PPL 대량 살포

깨알같은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 비판

제작비 절감을 위해 결혼식을 셀프 웨딩촬영으로 대체

감리씨가 홍반장 결혼하는 거 봤으면 좋았을텐데... ㅠㅠ

드라마의 주제를 담은 갯마을 베짱이 인트로 소개


갯마을 베짱이를 통해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을 되찾고 행복한 삶의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밴드2 최종 파이널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