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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Oct 29. 2021

웅이의 세포들이 끝났다!

드라마 “유미의 새포들” 후기

웅이의 세포들이 끝났다. 아니 내일(14화) 끝날 것이다. 사실 난 바비가 등장한 8화부터 유미의 세포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웅이는 바비로 인해 유미와 헤어질 것이고, 능숙하게 유미에게 다가온 바비 또한 나중에 어이없게 차일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에… 사실 캐스팅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 안 볼까 했지만, 웅이에 감정 이입하고 귀여운 세포들에 빠져 꾸역꾸역 봐 왔다.


유미의 귀요미 세포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랑세포, 불안세포, 응큼세포, 단짝 세포인 감성이와 이성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실사화된 드라마를 보니 웹툰을 볼 때보다 더 감정이 이입되는 것 같다. 그래서 웹툰에서는 그럭저럭 넘긴 사소한 사건과 감정들이 드라마를 보면서는 툭툭 걸렸다. 특히 웅이의 여사친 새이를 대하는 유미의 태도는 여사친이 드글드글한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은 다양한 관계 속에 존재한다. 물론 끊어야 하는 관계도 있겠지만, 어쩔  없이 구질구질하게 이어가야 하는 관계 또한 존재한다. 연애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맺는 특별한 관계이긴 하지만 기존의 관계를 오로지 연애의 기준으로 정리해야 한다면  연애가 바람직하다고만   있을까? 누군가에게 정답이 누군가에겐 오답일  있다. 웅이와 함께 일하는 루이는 (유미로 인해) 새이가 회사를 떠난  늘어난 업무에 불만을 토로한다. 어쩌면 유미는 웅이의 회사가 어려워지는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새이의 어장관리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자격지심 때문에 유미와 헤어지긴 했지만, 난 지금도 웅이가 뭘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다. 드라마 이전에 웹툰을 보며 몇 차례의 후기에서도 밝혔지만 웅이의 자격지심은 웅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 대한민국에서 자라온 남성들에게 주어진 원죄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여성도 마찬가지겠지만, 남성 또한 자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시대 분위기에 의해 길러진다. 김지윤 좋은연애연구소 소장은 세바시 강연, “긍정적인 관계 에너지를 만들고 싶다면”에서 남성이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재치 있게 풀어 주었다.


글은 안 읽어도 좋으니 이 강의는 꼭 보시라! 유익하면서도 재미지다.

나 또한 서른셋에 만나 1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 옆지기에게 먼저 결혼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지금은 마흔이 돼도 결혼을 안 하는 게 큰 흉이 아니지만, 내가 결혼했던 2000년만 해도 남자 나이 서른셋, 여자 나이 서른은 결혼 정년기를 훌쩍 넘긴 나이였다. 양가 부모님들이 강제로 등을 떠밀지 않았다면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었을지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그 당시 난 재능도 없는 프리랜서 작곡가로 살고 있었고, 모아 놓은 돈도 없었다. 난 적어도 남자가 하다못해 신혼집 전세금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결혼’의 ‘결’ 자라도 꺼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운영하는 회사 자금이 바닥 나 자신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남자 친구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다니,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말 나온 김에 잠깐 삼천포에서 쉬어 가자면, 최근 20대, 그중에서도 남성들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실 소위 “일베”가 등장할 때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던 결과이긴 하다. 나 또한 20대 남성들의 보수화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우려의 끝이 20대 남성들에 대한 비난이나 혐오는 아니다. 다만 그 이유와 사회적 맥락이 궁금할 뿐이다. 나의 가설은 이렇다. 가설은 틀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염두한 것이니 글의 논리가 궤변으로 흐르더라도 너무 노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50년 넘게 남성으로 살아온 나야 알게 모르게 가부장제의 혜택을 누리면 살아왔지만, 지금의 20대 남성은 가부장제의 수혜보다는 피해를 받으며 성장해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통 초등학생 때는 남성보다 여성의 발육이 더 빠른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남성은 절대 여성을 때려선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당연히 인간이 인간에게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가부장제가 뭔지도 모르는 만만한 남자 초딩에게 인류가 약 1만여 년 동안 앓아온 가부장제의 책임을 비겁하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초딩 남자아이들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냥 무조건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고 일방적으로 세뇌한다. 반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패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난 딸만 둘을 있어 잘 느끼지 못했지만,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부터 자신도 아들에게 여자를 때리지 못하도록 당부하지만 가끔 여자 아이에게 맞고 있는 아들을 보면 속상하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1980년대에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녔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당시 교육과정은 다소 남자들에게 유리했던 것 같다. 나는 쳐다보지도 못했던 전교 상위권에 평균적으로 남자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경쟁에는 "순위 경쟁"도 있지만 "규칙 경쟁"이라는 것도 있다. 순위 경쟁에 고착화된 경향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경쟁의 규칙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경제적 양극화가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즉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의 아이들이 일류대에 더 많이 들어가는 경향성이 존재한다면 입시의 규칙은 경제적 능력에 종속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불공정한 규칙의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농어촌 특별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삼천포에서 다시 삼천포에 빠졌다… ㅠㅠ 아무튼 난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교육과정이 과거와는 다르게 다소 여성들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는 의심이 든다. 물론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의도와는 무관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교육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이와 우열이 부각된다면 교육과정의 설계에 문제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의 목표가 오로지 학력의 양극화를 통해 우월과 열등을 변별해 내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남성들은 초등학교 때는 여성들의 물리력에 무장해제되고, 중, 고등학교 때는 여성보다 찌질하게 길러진다. 남자들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는 반론은 구조의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자기계발 논리다.


네가 찌질한건 재능이 없거나 노오력하지 않은 탓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됨과 동시에 사회로부터 가부장제의 가해자 취급을 받는다. 조커가 고담시의 빌런이 된 것과 다르지 않은 이유로 우리는 가부장제와 페미니즘 사이에서 남성들을 빌런이 되도록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주장은 보수화되는 20대 남성들을 혐오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세운 주관적 가설일 뿐이다. 아무리 가설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머금지 않고 글로 표현을 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세운 가설에 대한 비판은 언제든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감정을 앞세운 비난에는 대응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지향한다. 나아가 그것이 성이든, 신념이든, 아니면 나이든 그 어떤 것도 권력으로 작동하는 데에 반대한다. 내가 가능하면 그 누구에게도 언성을 높여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내가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대상은 나보다 약자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미치지 않고서야 깍두기 머리에, 어깨에는 "차카게 살자"라고 문신을 한 어떤 분께 소리를 지를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소리 높여 화를 낼 수 있다면 그 대상은 분명 나보다 먹이사슬의 아래에 위치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난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한 번 시작한 드라마는 의리상 중간에 끊어본 경험이 별로 없다. 하지만 웅이의 세포들이 끝난 지금, 귀여운 세포들이 보고 싶다면 또 모를까 굳이 웅이 없는 유미의 세포들을 찾아보진 않을 거 같다.  


웅이 안녕,
그동안 유미랑 연애 하느라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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