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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May 10. 2022

마크 브래킷의 "감정의 발견"을 읽고...

※ 감정의 기술적 조작을 위한 자기계발서... 내 스타일의 책은 아니지만, 대학원 과제라 어쩔 수 없이 읽고 독후 에세이를 제출했다.


약점을 감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야생동물조차 그렇게 한다. 그야말로 자기 보호 본능인 셈이다.
- 감정의 발견 p.24 중에서 -


1. 序 : 감정의 역사


개념을 분리(separate)해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 중 하나다. 자연과 한 덩어리로 존재했던 인간은 이성을 갖게 되면서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분리를 통해 자연을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인간은 객관으로 존재하는 자연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분류(categorize)를 시작한다. 인간은 자연을 생명의 유무를 기준으로 생물과 무생물로, 다시 생물을 운동성과 세포벽의 유무 차이를 기준으로 동물과 식물로, 그리고 그 각각을 다시 종-속-과-목-강-문-계-역으로 분류하며 적극적으로 자연을 이해해 왔다.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분리 능력으로 이제 인간 스스로를 인종과 성, 나이 등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분리는 객관을 대상으로 하는 분류와는 다른 개념으로, 차라리 분열(division)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채희태, 2021).


감정의 역사는 곧 이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았던 인간의 감정은 동물적 본성에 가까웠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자연 생태계 속에서 연대와 협력이라는 독특한 생존 방식을 선택한 인간은 이성을 주로 동물적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전문화의 길에 들어선  이성은 동물적 본성과는 다른, 이성으로 충분히 통제 가능한 감정마저도 억압하기 시작했다. 생존의 필요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이익이 차지하게 되었고, 이성이 이익을 중심으로 분화(differentiation)하면서 등장하게 된 새로운 질서가 바로 계급이다. 지배계급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신화를 창조해 냈고,* 신들의 이야기 속에 절묘하게 자신들을 오버랩시켰다. 하지만 자연과학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신화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때마침 등장한 예수는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 신의 전형을 제시하며 지배계급이 만든 허접한 신들의 이야기를 모두 허무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 지배계급은 신의 자리에서 물러나 신의 대리인에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 인간의 감정 따위는 여전히 하찮은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감정을 더 깊은 지하세계로 곤두박질치게 만든 것은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에 의해 정의되고*** 칸트(Immanuel Kant)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성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에 이르러 마침내 중세 이전에 신이 누렸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이성이 가진 절대적 힘은 의도와 무관하게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홀로코스트와 세계대전을 초래했다.******


절대이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벼랑 끝으로 몰린 감정을 되살린 것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프로이트(Sigmund Freud)였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심리적 삶의 보편적인 토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라캉(Jacques Lacan), 은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I think where I am not, therefore I am where I do not think).”며 데카르트에 의해 정의되었던 근대 이성에 대한 명제를 뒤집었다. 이제 인간의 감정은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으며, 숨겨서도 안 되는 것이 되었고, 감정을 뇌의 물리적인 작용으로 이해하려는 뇌과학의 진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 단군신화는 곰을 모시는 부족이 호랑이를 모시는 부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자, 그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 지배의 정당성을 구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서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와 동로마제국의 리키니우스 황제는 지배의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신과의 동맹 관계를 시작한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이 당연한 명제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신이 아닌 생각하는 인간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이라   있다.

**** “이성이 무엇인지 보이려고 자연은 칸트를 낳았다(카울바흐).”

***** “역사는 절대정신이 자기 자신을 펼쳐 나가는 과정이고 절대정신이 살고 있는 집이다(헤겔, 『역사철학 강의』).”

****** 도구화된 이성과 변증법을 허용하지 않는 계몽주의가 나치의 발흥과 유대인 대학살을 초래했다는 것이 비판이론가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공통된 견해이다.


2. 本 : 감정의 발견


마크 브래킷의 『감정의 발견』은 감정의 기술적 조작 방법을 다룬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1부에서는 그동안 모호하게 다루어졌던 감정의 정체를 인식론적으로 밝혀내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감정이 가지고 있는 현재적 쓸모를 존재론적으로 증명했다. 2부에서는 감정을 조작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술들을 소개하며, 3부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마크 브래킷이 억눌려 있던 감정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 모티브는 매우 단순하다. 마크 브래킷은 마빈 삼촌으로부터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감정의 둑이 무너지고 격류가 쏟아졌다고 밝혔다. 무언가에 억눌려 있는 사람에게 그 억눌림과 공명할 수 있는 사소한 말 한마디는 매우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분노’라는 감정의 실체를 미처 몰랐을 때, 감정을 선택하기 애매한 상황에서 누군가로부터 화가 났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제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인지하게 되는 경험… 마크 브래킷은 “기분이 어때?”였지만, 그 당시 나는 “화났니?”였던 것 같다.

감정을 기술적으로 다루기 위해선 먼저 감정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감정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정체불명의 감정을 가축이 되기 전의 늑대라고 가정해 보자.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만약 호랑이를 늑대로 인식한다면 가축이 되기 전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야생의 늑대를 자신에게 충성을 바칠 개로 길들이기 위해선 먼저 늑대를 늑대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인식의 다음은 이해다. 늑대의 생물학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늑대를 길들일 수는 없다. KBS 예능 <개는 훌륭하다>에 출연해 개통령으로 알려지게 된 애완견 조련사 “강형욱”은 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훌륭하게 애완견을 조련한다. 인간이 늑대와 분절화된 언어로 대화할 수는 없겠지만, 반복되는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늑대를 이해해 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속 시원하게 말로 소통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 자칫 소통의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감정과 소통하는 것은 늑대와의 대화와 닮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질문이다.


‘왜?’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왜 지금이지? 감정 이해하기는 그런 질문에 대답하면서 시작된다. 어째서 이런 식으로 느껴지지? 이 감정의 기저에 있는 이유가 뭐지? 무엇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드는 거야? 이는 전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감정이 다른 감정을 자극하기도 하고, 사건과 기억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질문 하나를 던지면 더 많은 질문으로 이어져 깊이 파고들 수 있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말이다. 일단 질문을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으니 두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브래킷, 2020: 131-132).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마크 브래킷이 “기분이 어때?”라는 삼촌의 질문에 공명한 이유는 우리 모두 그 질문이 필요하지만, 그 누구도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크 고울스톤(Mark Goulston)은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 에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인식한다는 것은 믿는 것이고, 잘못 인식한다는 것은 속는 것(고울스톤, 2010: 32/142*)이라며 자신의 뇌가 뱀의 상태일 때 빨리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또 이해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인디밴드 <가을방학>은 노래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색은 제 몫의 명찰이 없기 때문에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어디쯤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무지개의 색깔을 빨주노초파남보라고 인지하는 것은 사실 빨주노초파남보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무한대의 색깔을 무시하고 7개의 대표 색깔로 도식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감정 또한 이러한 도식화가 도움이 될 수 있다. 1970년대 에크먼(Paul Ekman)을 비롯한 심리학자들은 여러 문화권에 걸쳐 일련의 연구를 진행한 결과 인간의 감정을 “행복”, “슬픔”, “분노”, “공포”, “놀라움”, “혐오”의 여섯 가지 기본 감정으로 도식화했다(브래킷, 2020: 119).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는 전지적 시청자 시점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주인공들은 늘 감정의 미로 속을 헤매며 시청자의 애를 태운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서로 사랑을 확인한 후에도 말 한마디면 풀릴 사소한 오해를 표현을 하지 않아 증폭시킨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작가와 감독의 농간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시청자들은 답답한 감정을 쏟아내며 자신도 자신의 삶 속에서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의 대리만족에 빠져든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정의할 수 있고, 또 표현할 수 있다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감정의 조절이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다. 감정 조절의 일차 목표는 감정적 반응을 관리하는 것이지만 이 기술은 훨씬 더 복잡한 협력적 조절(co-regulation)로 발전한다. 다른 존재와 함께 있으면서 상대의 감정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기는 불가능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브래킷, 2020: 210). 우리가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어쩌면 가깝기 때문에 더 먼 존재인 가족 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 학교에서, 그리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직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감정을 발견해 이해하고, 조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 누명을 쓰고 13년 동안 억울한 깜방살이를 하고 출소한 친절한 금자씨는 전도사가 출소 기념으로 준비한 두부를 엎으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언을 남긴다. 즉,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호소해 ‘일’해라, ‘절’해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나나 잘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부모가 감정을 능숙하게 다루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배우며, 부모가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사는 아이들을 살피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편견에 빠져 있을 수도 있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아이가 공부할 마음가짐을 품고 있는 교실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라도 모든 아이의 가정환경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브래킷, 2020: 281).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약한 면을 조금 드러낸 것이 오히려 학생들의 공감을 얻었다며, “그 경험 덕분에 교사가 진짜 가르치는 것은 교사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밝혔다. 1995년 감성지능(emotional quotient)이라는 개념을 대중들에게 선보인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2006년 SQ(social quotient)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대니얼 골먼은 SQ는 타고나는 것보다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부분이 커서 사람과 사람 간의 교감을 통해 충분히 개선이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학습능력이 떨어져도 사회적으로 성공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부터 대기업은 신입사원 공채 시 블라인드 테스트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는 학벌이 주는 편견을 제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회조직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그것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지구의 멸망에 투자해 돈을 벌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이다.** 만약 학벌로 선택한 신입사원이 회사의 이익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경험적 확신이 있었다면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불확실한 채용 방식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IQ가 높은 직원의 지적 장악력 보다 EQ와 SQ가 높은 직원의 협동 능력이 회사의 이윤 창출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 eBook은 폰트의 크기에 따라 쪽수가 바뀌므로 전체 쪽수와 인용한 쪽수를 함께 표시하였음.

** 영화 <빅 쇼트(The Big Short)>나 <국가부도의 날>은 그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주제로 다룬다.



3. 結 : 하지만, 정답은 없다


물론, 인간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이성에 의해 억눌려 왔던 감정을 발견하고, 또 기술적으로 조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성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순간 감정은 이성이 겪었던 역설적 불행을 다시 겪을지도 모른다. 이성과 감정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우러져 태극을 이루듯, 이성과 감정은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시대와 인간의 시대를 거친 후 결국 모든 것을 해체해 다시 구성하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된 것처럼, 1980년 즈음 등장한 거버넌스는 국가정책이 실패했으니 정책의 주도권을 다시 부도덕한 시장에 넘기자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성의 실패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감정 또한 이성과의 적절한 균형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인류가 전체 우주의 대략 4% 정도를 이해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4%는 겸손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매우 오만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인식하고 있는 우주가 코끼리의 뒷다리 일지, 꼬리 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4%는 100%를 가정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수치이다. 우주는 코끼리가 아니다. 장님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면서 “이게 코끼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략 4%는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있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 또한 비슷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 정도면 충분하다는 오만한 관점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마을이 최대한 협력해야 한다는 겸손의 관점이다. 아이들을 위한 모든 것이 그렇듯 감성 능력 교육에도 마을이 필요하며, 아이들의 감성 능력이 발달하려면 주변 어른들도 이 기술을 배워야 한다(브래킷, 2020: 293)는 마크 브래킷의 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크 브래킷은 자신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면 다음과 같이 『감정의 발견』을 마무리한다.


감성 능력은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푸는 열쇠이다. 이런 능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슴과 가슴, 마음과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 왔던 것과 다른, 그리고 상상했던 모 습에 더 가까운 문화와 사회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전체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바로 그 노력에 달려 있다(브래킷, 2020: 351).



참고문헌   

채희태(2021).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꼭 필요한 이유” 『ZDNET코리아』, (4/6).
<https://zdnet.co.kr/view/?no=20210406134337>

Brackett, Marc(2020). 『감정의 발견』.  임지연 역. 북라이프.

Goulston, Mark(2010).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  황혜숙 역. 타임비즈(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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