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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May 06. 2022

비판적 교육 철학과 Ivan Illich

※ 본 원고는 지난번과 달리 공주대학교 "현대교육철학" 수업에서 교수님으로부터 혹평이 아닌 호평을 받은 발표문입니다. ^^


자연은  완벽하게 독특한 개인을 창조하기 바쁜 반면,
문명은 모두가 순응해야한 하는 단 하나의 틀을 발명해 오고 있다.
<크리슈나무르티>


1. 序: 비판적 교육철학, 그 뿌리를 찾아서…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면 교육이 당면한 숙제는 성장과 선발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완벽한 자유를 위해서는 평등을 포기해야 하고, 완벽한 평등을 위해서는 자유를 억압할 수밖에 없다. 교육 또한, 선발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모든 인간의 내적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반대로 교육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내적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는 늘 다양한 맥락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의 벽에 부딪혀 왔다.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로 촉발되었던 소위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crisis)”가 미국의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1983년 미국의 “국가교육우수위원회(?)”가 발간한 “A Nation at Lisk”*는 미국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의 방아쇠가 되었다. 스푸트니크 쇼크발 교육개혁이 당시 공부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던 학생들을 향했다면, A Nation at Lisk로 촉발된 교육개혁은 정확히 교사들을 겨냥했다.** 매번 바뀌는 시대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출 수도, 그렇다고 귀를 막고 그 장단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 또한 교육이 안고 가야 할 태생적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교육의 딜레마는 근대의 산물이다. 중세 이전까지 교육은 꽤 오랫동안 계급적 질서 안에서 평화롭게(?) 계급별 사회화(성장)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중세의 계급 질서 밖에서 주로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던 부르주아지들은 시민혁명에 성공한 후 교육의 새로운 기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시민계급은 아이들이 특정한 사회적 환경 – 귀족, 상인 혹은 수공업자의 자식으로서 – 에서 태어나더라도 그가 나중에 무엇이 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출생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으며, 그 이유는 출생의 원칙 대신에 개인의 업적이라는 원칙이 관철되어야 귀족계급의 특권을 깨뜨릴 수 있고 자신들의 신분상승도 가능했기 때문이다(Giesecke, 2002: 28-29).


일리치(Ivan Illich)와 라이머(Everett Reimer), 그리고 프레이리(Paulo Freire)가 주창했던 비판적 교육철학은 - 존 듀이(John Dewey)의 진보주의 교육철학처럼 - 경쟁으로 무장한 근대교육이 선발의 극단을 향해 나아갈 때, 다른 한 축에서 교육의 성장 기능이 작동하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브레이크를 밟아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학교 없는 사회를 주장하고, 타임스에 의해 “20세기 후반 가장 급진적 사상가”로 명명된 일리치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근대교육의 브레이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Energy and Equity)***”고 믿었던 일리치의 브레이크가 자동차의 속도에 이미 익숙해지고, 음속까지 가뿐히 돌파한 후 광속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근대교육의 폭주를 멈추거나 속도라도 늦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1983년, “미국에 위기가 왔다. 미국교육 개혁이 급선무다. 일본의 경제적 위협으로 미국이 위기에 처해있다”라는 요지로 A Nation at Risk: The Threat from Japan 이라는 보고를 National Commission on Excellence in Education이 당시 미국 문교부 장관이었던 T. H. Bell에게 보냈습니다. 중국, 일본, 한국, 인도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TIMSS나 PISA와 같은 국제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으니 미국 교육의 질이 낮아졌다고 미국 국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기에는 저는 교육국 본부에서 영어교육 및 다문화 교육 장학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A Nation at Risk’ 리포트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본 자동차 업계가 미국 자동차 업계보다 우수하다고 미국 교육을 나무라며, UCLA 짐 스티글러 교수가 쓴 ‘The Learning Gap’ 책을 읽고 미국, 일본, 중국의 교육 시스템을 비교, 대조하고 열띤 토론을 하던 때입니다. 미국사회는 경제사정이 좋지 않을 때마다 교육 시스템을 비평해왔으니까요(오수지, 2009/10/19).


** 학교 개혁 운동은 공립학교가 국가의 미래 노동력을 교육하지 않아 국가의 경제적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다양한 표현에서 학교 개혁가들은 교사들이 적절하고 유능하게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자주 지적했다. 많은 개혁 노력은 교사들이 그들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는 한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며, 직업 스트레스와 실직에 대한 두려움은 더 나은 교수 및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데 필요하다고 전제한다(드워킨, 2007: p. 120).


*** 1974년 발간한 일리치의 저서



2. 本: 비판이론과 비판적 교육철학


비판적 교육철학은 철학으로는 현상학을, 경제학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성립한 교육 사조이다. 중세의 질서가 계급과 종교로 유지되었다면, 시민혁명을 통해 시작된 근대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학교를 중심으로 구조화되고 있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비판이론가들은 교육이 자본주의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그리고 그 질서 안에서 민중들을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1) 비판이론 1세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와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호르크하이머 비판이론을  마디로 정리하면 ‘도구적 이성 비판이라고   있다. 인간은 악하거나 선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도록 태어났다는 진화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 말처럼 인간은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자연의 위협을 모방(mimesis)하였고, 자연으로부터 모방한 위협으로 다시 자연을 지배하고 있다. 원시사회에서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던 주술적 요소들은 근대에 이르러 사라지게 되었지만, 이후 관료제 사회에서 기술적으로 체계화되고 조직적으로 재생산되면서, 거꾸로 인간사회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공포의 위협을 체계화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도구적 이성이다. 도구적 이성은  생각의 동기와 과정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결과와 목적을 성취하느냐에만 관심을 가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생산성 증가에 기여한 기술과 과학분야는 높이 평가받게 되지만,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도 명확하게 보여줄  없는 - 시와 소설 같은 - 인문학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는 신화시대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며 이성의 도구적 합리성을 요구하는 실증주의와 실용주의에 이르러 만연해진 것이다. 결국  결과 인간을 단지 숫자로 파악하는 사회가 만들어졌고, 이는 나치의 발흥과 유대인 대학살을 초래했다는 것이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이론이다.


미학, 철학, 사회학, 평론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사유체계를 구축한 ‘아도르노’는 나아가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현대문명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파시즘의 근원이 계몽과 진보, 근대성 자체에 있다고 바라보았다. 아도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더불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으로 정신분석, 사회학, 철학 등으로 현대 문화와 파시즘 연구에 일생을 바쳤고, 동지인 호르크하이머가 1956년 동료 교수들의 반 유대인 발언에 항의해 교수직을 은퇴하고 나머지 프랑크푸르트 학자들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비판이론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정신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계승한 인물이 되었다.

아도르노의 사상을 『계몽의 변증법(Dialectic of Enlightenment)』(1947)을 통해 살펴보면, 아도르노가 주장하는 계몽이란 신화와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은 사고의 방향을 고정시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과학적', '수학적'인 사고방식만을 통해 이성이 합리적인 도구로 사용될수록,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은 '이성적'이지 않은 것으로 제외당하게 되며, 이러한 '이성'은 '합리성에서 벗어난 다른 생각'들을 막음으로써, 계몽의 체계에서 '동일한 생각'을 교육받게 한다는 것이다. 즉, 계몽은 동일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며, 동일한 생각의 사회는 '비판'의 능력이 사라져 버린 사회이다.** 비판이 사라진 사회란, 나치와 같은 파시즘의 사회와 다를 바 없다. 나치가 합리성을 주장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계몽'은 또 다른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계몽과 신화는 변증법의 형태로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것에 불과하며, 이것의 배후에는 '이성'의 힘을 과신하는 우리의 '사고체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공히 이성의 과잉을 비판했지만, 이성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정을 통해 더 강력하게 이성을 긍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68혁명 당시 강력한 실천을 주장했던 학생들은 ‘이성적’으로 비판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비판이론이 아닌 '비이성'을 통해 '이성 자체'를 비판한 푸코(Michel Foucault), 데리다(Jacques Derrida),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지지했다.***


*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통해 이러한 구조를 설명한다. 채희태(2021). “인간은 이유를 필요로 하는 동물이다” 참조. <https://brunch.co.kr/@back2analog/583>


** 이 지점에서 30여 년 전 민주화 투쟁의 경험으로 모든 이견을 계몽이나,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대한민국 586들이 오버랩된다.


*** 개인적으로 68혁명을 근대가 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탈근대로 이행하게 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나치가 본격적으로 청산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며, 기세등등하던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개량주의라고 비판받았던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의 사민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도 68혁명의 영향이다. 비틀즈 신드롬, 프라하의 봄, 우드스탁 등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68혁명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만 피해갔다.



2) 비판이론을 정리한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와 교육학자들

하버마스는 비판이론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의 대표 주자로, 유럽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공론장(Öffentlichkeit, Public sphere)과 의사소통의 합리성(Kommunikative Rationalität, Communicative rationality)을 주장한 사상가로도 유명하다. 하버마스는 인간이 개방적이면서 사안에 적합한 토론을 토대로 자유로운 합의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규범적으로도 우리 사회의 올바른 답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규범적 문제에 대해 상호간의 합의를 이끌어낼 보편타당한 답이 존재하며 우리는 원칙적으로 이성의 논변적 대화를 통해 그러한 답에 도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마르크스적 사회비판을 가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와는 다르게, 하버마스는『의사소통행위이론』등에서 복지국가가 심화된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운동이 더이상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으며, 생태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반핵운동 등 신(新)사회운동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하버마스는 이러한 신 사회운동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하는 폭력적인 행태는 좌파 파시즘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경계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하버마스의 주장을 노동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여겼고, 그로 인해 “지젝(Slavoj Žižek)” 같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하버마스의 이론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하버마스에 의해 이론적으로 집대성된 비판이론을 근간으로 한 비판적 교육이론은 1970년대 이후 프레이리(Paulo Freire), 애플(Michael W.Apple), 바우어(C. A. (Chet) Bowers), 지루(Henry A. Giroux), 파인버그(W. Feinberg)와 같은 교육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탈학교를 주장하며 근대교육의 질서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다소 아나키즘적 입장의 일리치, 라이머와는 달리 프레이리는 하버마스의 영향 탓인지 비판의식을 배제한 채 지식 전달에 급급한 “은행저축식 교육”을 비판하며 ‘의식화’의 도구로 교육을 소환했다.*** 한국과 특별한 친분이 있는 애플은 특정 계층의 이념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통제 장치로 교육이 사용되고 있다(애플, 1985: 44)는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교육을 진단하였다.


* 반면,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결코 그렇지 않으며, 그 까닭은 인간이 빠른 직관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 마르크스는 근대 인류에게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동‘과 ‘계급’이다. 마르크스 이전의 노동은 피지배 계급이나 하는 천한 행위였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 천한 행동이 바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노동의 가치는 신성한 것이 되었고, 그러한 인식의 확대는 마르크스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본가에게도 득이 되었다. 노동을 신성하다고 여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노동을 강요할 수 있었겠는가(채희태, 2020)!


*** 의식화는 자각적인 존재인 주체(a subject, a conscious being)에게만 가능한 것이므로 교육과 마찬가지로 의식화는 인간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프레이리, 1986: 101).



3) 하버마스와 루만(Niklas Luhmann)의 논쟁

동물과 분리할 수 있는 특징이자, 데카르트에 의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인식되어온 이성은 근대를 거치며 다양한 관점으로 도마 위에 올려진다. 관념론을 대표하는 헤겔이나, 헤겔로부터 변증법이라는 불을 훔쳐 변증법적 유물론 체계를 확립한 마르크스, 그리고 다양한 관점으로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이성을 인간의 의식이나 실천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이 중세를 지배했던 종교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철저하게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 보인다. 사회학을 본격적인 학문의 반열에 올려 놓은 베버나, 최근(?) 사회 체계이론으로 주목받고 있는 루만은, 이성은 이미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으므로 차라리 이성을 철저히 객관화시키는 것이 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보았다면 루만은 의사소통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의사소통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또한 루만이 더이상 나눌 수 없는 최종 요소 단위로 소통을 바라본 반면, 하버마스는 여전히 소통을 ‘행위’에 대한 수식어로 사용한다. 하버마스가 소통적 행위의 특징으로 사용한 (Verständigungsorientiertes Handeln)이해 중심의 행동에서 Verständigung은 상대를 알아듣게 하려는 노력, 상대를 납득할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그 자체로는 합의에 대한 강한 지향을 품고 있지 않다(정성훈, 2018: 115).* 반면 루만은 의식들은 서로를 꿰뚫어볼 수 없는 암흑상자들(black boxes)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네가 한다면,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한다”(Luhmann, 1984: 166)는 ‘이중의 우연성double contingency’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동어반복적이며 미규정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런 소통도 일어날 수 없다. 소통은 일방적인 ‘통지’ 행위에 상대방이 맞장구를 치는 것이 아니다. 소통이 성립하려면 발신자(타아)의 ‘정보’ 선택 및 ‘통지’ 선택 뿐만 아니라 수신자(자아)의 ‘이해’라는 선택이 일어나야 한다(정성훈, 2009: 244).


당대를 대표하는 두 사회철학자의 복잡하고 어려운 논쟁을 대한민국의 위대한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어놓았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소통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사실 ‘암흑상자’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의 시청자들 뿐이다.


희도 : 전학 가고 싶다는 거 진심이야. 나 이대로 시시하게 펜싱 그만두고 싶지 않아. 계속 성적 안 나오고 못하고 있는 거 맞는데, 나 진짜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도와줘.
엄마 : 노력하는 게 맞아? (희도가 입었던 옷을 집어던지며) 너 이 옷 입고 어디 갔어? 내 화장품도 손댔지? 화장하고 이 옷 입고 어딜 갔길래 술 냄새 담배 냄새 묻혀 왔어?
희도 : 나이트...
엄마 : 너 미쳤어? 응?
희도 : 미칠 만큼 간절했어. 나이트 가서 경찰한테 걸려서 강제 전학 당할 생각이었어.
엄마 :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있어. 이게 노력하는 사람의 태도야? 나희도 너 펜싱 시작할 때 천재 소리 들었어. 누구보다 우월한 시작이었어. 근데 지금 넌 어디 있니? 아직도 펜싱 신동, 거기 머물러 있잖아. 남들이 갈고닦고 나아가는 동안 너 혼자 제자리잖아!
희도 : 나도 그래서 답답하고 미치겠다고!
엄마 : 그럼 죽을 만큼 열심히 했어야지! 나이트나 들락거리고! 야, (만화책, 풀하우스를 찢어 던지며) 이딴 만화책이나 보고 있으면서 무슨 펜싱이고 전학이야!
희도 : (화를 내며) 엄마가 뭔데 풀하우스를 찢어? 엄마가 저 만화책보다 나은 게 있는 줄 알아? 엄마 내 경기 보러 한 번도 안 왔지? 나 경기 지고 집에 와서 혼자 속상할 때마다 나 위로해 줬던 거 엄마가 아니라 저 만화책이었어. 근데 무슨 자격으로 저걸 찢냐고! 뭐가 나아서! 엄마한테 오늘 전학 가고 싶다는 말 하려고 내가 무슨 용기를 냈는지 모르지? 강제전학 가려고 나이트 갈 때보다 엄마랑 대화할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더라. 엄마는 나한테 그런 존재야.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   

* 하버마스가 합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Verständigung”이 가진 단어 의미가 그렇다는 뜻(발표자 註).


3. 이반 일리치의 생애와 저서

For sweetest things turn sourest by their deeds, Lilies that fester smell far worse than weeds.
<세익스피어: 소네트94>

1) 이반 일리치의 생애   

이반 일리치는 1926년, 쇠락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중심지였던 빈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인 어머니는 유대인 출신의 명망있는 집안 출신이었고, 크로아티아인 아버지는 외교직에 종사했다. 1943년(17세) 일리치는 점점 고조되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어머니와 두 형제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피신했다. 그 후 로마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유럽에서 근무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갓 이주해온 푸에르토리코인들을 돌보는 사제로 봉직했다. 자신부터가 두 문화 사이의 경계인이었던 일리치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에 상충하는 깊은 문화적 모순들을 경험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푸에르토리코 가톨릭대학교 부총장직을 수행하고, 1966년(40세)에는 멕시코에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했다. 이 센터를 설립하면서부터 그는 교육, 에너지, 교통, 의학, 노동, 매스미디어 등 산업사회를 비판하는 저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저작들은 거의 대부분이 세계 문화를 장악한 서구의 헤게모니를 다루고 있다. 그는 서구의 사회제도뿐 아니라 그 세계관이 내적으로는 인간에 대해서, 외적으로는 자연에 대해서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있는지를 증명하는 데 주력했다. 1976년(50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를 폐쇄하고 나서는 미국과 독일, 멕시코 등지에서 강연을 하며 '유랑하는 지식인'으로 살다가 2002년(76세) 독일 브레멘에서 숨을 거두었다.


논쟁적으로 가장 첨예했던 그의 테제들은 1970~1980년대 전 세계 사회참여적인 그룹들의 일상적인 토론에 단골 주제로 등장하곤 했다. 샌프란시스코와 파리, 도쿄 등 산업화한 여러 도시들에서는 광범위한 독자층이 형성되었다.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 사람은 - 전기 작가인 마르티나 칼러가 강조한 것처럼 - "빛나는 생기발랄함과 전설적인 카리스마", 그리고 그의 명성에도 상당 부분 기여한 그의 성격 등에 단숨에 매료되는 제물이 되곤 했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카리스마도 그의 절망을 은폐하지는 못했다. 그는 사고에 있어서는 지난 세기 비극과 승리의 역사에 자극 받았지만 태도와 행동에 있어서는 숨길 수 없는 혼란과 암담함이라는 측면에서 21세기적인 사람이었다. 나치 독일 치하의 빈에서 태어난 절반의 유대인으로서 적대감을 경험하고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스콜라 철학의 사상 훈련을 받았던, 또한 푸에르토리코와 멕시코 토착민들의 삶의 세계에 매료된 동시에 산업 경제에 기여하는 미국식 해외 선교활동에 경악하며 남아메리카의 해방운동에 고무되었던, 아울러 포스트모던의 부도덕에 분노하다가 결국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건강한 생태국가를 지향한다는 의료 시스템에 저항한 이반 일리치는 기꺼이 '현대'라고 불리기 원하는 이 사회의 목격자인 동시에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교관 같았다(작스*, 2014).


* 볼프강 작스(Wolfgang Sachs): 독일의 사회학자이며 신학자, 환경운동가. 독일 그린피스 의장, 정부간 기후변화 전문위원회 위원, 현재는 베를린에 있는 부퍼탈 기후환경 에너지 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카셀 대학 명예교수이다. 대학생이었던 20대 중반 일리치를 처음 만나 30여 년 동안 우정을 나눈 친구이자 협력 연구자.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에 대한 작스의 비판을 계기로 학교라는 제도를 비판하던 데서 교육이라는 개념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근본적 관심사를 이동하게 되었다. 볼프강 작스가 엮고 일리치와 함께 주요 저자로 참여한 『反자본 발전사전The Development Dictionary: A Guide to Knowledge as Power』(1999)은 개발 분야 연구의 ‘고전’으로 불린다.



2) 이반 일리치의 저서   

1971(45세). 『깨달음의 혁명Celebration of Awarness』. 2018. 허택 역. 사월의책.

1971(45세). 『학교 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 2004. 심성보 역. 미토. / 2009. 박홍규 역. 생각의나무. (절판)

1973(47세). 『성장을 멈춰라Tool For Conviviality』. 2004. 이민열 역. 미토. (절판)

1974(48세).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Energy and Equity』. 2018. 신수열 역. 사월의책.

1975(49세). 『병원이 병을 만든다Medical Nemesis』. 2004. 박홍규 역. 미토. (절판)

1977(51세). 『전문가들의 사회Disabling Professions』. 2015. 신수열 역. 사월의책. (공저)

1978(52세).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2014. 허택 역. 느린걸음.

1978(52세). 『Toward a History of Needs』. (미번역)

1981(55세). 『그림자 노동Shadow Work』. 2015. 노승영 역. 사월의책.

1982(56세). 『젠더Gender』. 2020. 허택 역. 사월의 책.

1985(59세). 『H2O와 망각의 강H2O and the Waters of Forgetfulness』. 2020. 안희곤 역. 사월의책.

1988(62세). 『ABC, 민중의 마음이 문자가 되다ABC : The Alphabetization of the Popular Mind』. 2016. 권루시안 역. 문학동네.

1992(66세).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In the Mirror of the Past』. 2013. 권루시안 역. 느린걸음.

1992(66세).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Ivan Illich in Conversation』. 2010. 권루시안 역. 물레. (David Cayely 대담집, 절판)

1992(66세). 『반자본발전사전The Development Dictionary』. 2010. 이희재 역. 아카이브. (공저)

1993(67세). 『텍스트의 포도밭In the Vineyard of the Text』. 2016. 정영목 역. 현암사.

2005(사후). 『이반 일리치의 유언The Rivers North of the Future: The Testament of Ivan Illich』. 2010. 이민열∙서범석 역. 이파르, (David Cayely 대담집, 절판)


3) 일치리의 사제직, 파문당한 것인가, 버린 것인가?

인터넷에서 ‘일리치’를 검색해 보면 교회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던 일리치가 결국 1967년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는 내용이 다수 등장한다. 하지만 일리치의 사제직 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68년 여름, 일리치는 로마에서 열린 이른바 종교재판소라고 불리는 가톨릭 교리를 위한 집회에 소환당한다. 일리치를 재판하는 문서에는 '호기심 많고, 교회를 곤혹스럽고 떠들썩하게 하는 인물'이라고 되어 있었고, 일리치는 그의 정치와 교리에 대한 입장을 해명해야만 했다. 일리치는 바티칸의 지하실에서 심문관에게 자신의 입장을 진술하게 되었는데, 파문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심문 내용을 비밀로 해야 한다는 서약을 거절했다. 재판소의 대표인 유고슬라비아의 세퍼 추기경은 이러한 그의 입장을 받아들여 일리치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담은 문서를 들고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질문서 형식으로 된 그 문서는 '교리에 대한 위험한 견해’, '교회에 반대하는 잘못된 생각들’. '성직자에 대한 이상한 개념’, '전례와 교회의 규율에 대한 파괴적 해석'의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일리치는 그 때 받은 질문이 '언제까지 아내를 때렸는가?' 따위였다고 했다. 이런 부류의 질문에 답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전제들을 용인하는 것이므로 그는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화를 잘 내고, 모험심 강하고, 경솔하고, 광신적이며, 최면에 걸렸고, 권위에 대항하는 반역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질문 중 일부는 일리치가 전에 넘겨받은 CIA의 자료였고, 나머지 부분은 가톨릭 보수파의 소행이었다. 하지만 일리치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교황청 또한 일리치의 사제직을 공식적으로 박탈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후 독일의 카셀Kassel 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뒤 받은 첫 월급이 ‘신부 몬시뇰* 이반 일리치’ 앞으로 나왔다. 행정실에 조회해 본 결과 일리치는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케일리, 2010: 35-37).


* 몬시뇰(Monsignor)은 천주교에서 교황의 명예 전속 사제로 확정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들에 대한 경칭이다.


4) 학교없는 사회   

일리치가 비판적 교육철학자, 그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로 분류되는 이유는 일리치가 초기 저작으로 학교를 다루었고, 그 학교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주장이 그 당시 큰 파문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파문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리치를 ‘교육철학자’로 분류하기엔 그의 저작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미미하다.* 교육을 “복음”**으로 숭배하는 대부분의 교육학자들과 달리 일리치는 사실 교육을 철저히 수단으로 여겼다. 일리치는 인간의 본질과 근대 제도의 본질을 상호 연관지어 명확히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일반적인 관계를 제기하고자 했고, 그것을 위한 패러다임을 만드는 “소재”로서 학교를 선택했을 뿐으로 보인다(일리치, 2004: 14).***


일리치가 탈학교를 주장한 이유는 학교를 통한 보편적 교육의 제공이 국가의 이익에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기 때문이다(p18, 25, 26). 맨 처음에 인용한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 - 아이들보다는 자본에게 더 필요한 -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받게 되었고, 그 기준은 결국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더 불리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리치는 미국이 단일교회에 의한 종교적 독점을 위해 노력해 온 것처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의식적 의무를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pp28-29).


학습 대상으로서의 유년기(childhood) 또한 산업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출현한 현상이며(p55), 사람들은 자기의 아이에게 유년기라는 환경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자격이 있는 교사를 위한 시장이 무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pp57-58)고 주장한다. 문제는 어떠한 교사도 계급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잠재적 교육과정으로부터 학생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린 후 미국이 대학 졸업자 수에서 소련을 따라 잡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독일과 프랑스도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했는데, 대학은 구성원의 일부분으로 하여금 사회 전체를 비판할 것을 허용하는 독특한 환경을 제공하지만, 이러한 특권은 이미 소비자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 있고, 무엇인가 의무적인 공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에게만 부여한다(p71). 현실에 대한 판단능력을 육성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제도는 물론 학교뿐만이 아니지만, 학교는 다른 어떤 것 보다도 근본적이며 계통적으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p86).


학교는 지식을 규격화한다. 그리하여 비직업적 봉사자보다는 전문적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활동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를 만들어 낸다(p127). 따지고 보면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지식은 학교 밖에서 주로 습득한다. TV를 본다거나 독서를 하는 것을 통해 얻거나, - 심지어 지금은 일리치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터넷과 유튜브가 있다. - 우정과 사랑 또는 동료간의 예를 따른다거나 거리에서 닥친 일들에서 얻은 충격에서 더 생생하게 얻어진다(pp124-125).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의 마지막 장인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의 재탄생"에서 판도라 신화는 꿈이 해석되는 시대로부터 신화가 만들어지는 세계로의 이행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p176). 신화의 창조는 여러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지만, 일리치는 원시시대에 여러 악을 가두어두기 위해 만들어진 - 신화에서 출발한****** - 제반 제도가 인간에게 있어 결코 실패하는 일 없이 스스로 뚜껑을 닫는 관이 되었다고 주장한다(p181).


일리치는 1958년 푸에르토리코에서 라이머를 만난 후 제도화된 학교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1년, 15년에 걸린 라이머와의 토론을 정리해 일리치는『탈학교 사회(Deschooling Society)』를, 라이머는『학교는 죽었다(School Is Dead)』를 각각 출판한다. 일리치는 ‘가치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가 물질적인 환경오염, 사회의 분극화, 사람들의 심리적 불능화를 초래하며 이를 지구의 파괴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불행을 가져오게 하는 세 개의 기둥으로 보았고(p13), 나아가 일리치는 20세기를 “인간을 불구화하는 전문가의 시대”로 명명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일리치, 2015: 13). 끊임없이 문명으로 포장된 산업화에 반대했고, 인류 공생을 위한 도구로 숲과 도서관, 그리고 자전거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던 일리치는 교육 철학자가 아닌 생태 철학자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 물론 다른 주체의 책에게 학교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긴 한다.


** ‘복음’이라는 표현은 W. Norton Grubb∙Marvin Lazerson의 2004년 저서 『The Education Gospel』에서 가져왔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자본주의의 구조가 중세 종교의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보았으며(벤야민, 2008: 121), 일리치도 중세를 기독교 시대로, 현대를 학교교육의 시대로 규정하며 학교가 중세에 종교가 담당했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았다(일리치, 2004: 198).


*** 이 후 『학교 없는 사회』의 인용은 쪽수만 표기함.


**** 최초로 유아기(아동기?)를 제시한 사람은 루소(JJ. Rousseau)였다. 루소는 1762년 출간된 교육 소설 『에밀(Emile)』에서 “아동은 작은 성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닌 독립된 존재이이므로 아동의 현재 삶이 성인의 미래에 의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며 아동기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루소는 교육의 치명적인 문제를 정당화했는데, 그것은 바로 교육전문직과 교육과학과의 결합이었다(기섹케, 2002:30).


*****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와 결혼한다.


******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신화를 각각 ‘도구적 이성’과 ‘계몽주의’에 빗댄 것처럼, 일리치 또한 신화를 신이 아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산한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5. 結: 교육化~zation와 교육主義~ism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발명이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 내고 있다(다이아몬드, 1998: 347)며 에디슨의 말을 패러디해 뒤집었다. 이렇게 필요와 발명은 상호작용의 관계에 놓여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에디슨과 다이아몬드의 말을 일리치의 주장에 대입하면 교육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대중들의 필요에 의해 기획되었지만, 그 필요의 반복 재생산을 통해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교육은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교육의 영향을 받은 사회의 지배 아래 놓이기도 한다. 일리치와 라이머, 그리고 프레이리는 비판적 교육철학을 통해 모름지기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격하게 주장했지만, 마치 자본주의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참조해 더 세련된 모습의 괴물로 진화한 것처럼 역설적으로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더 강력한 교육화를 부추겼는지 모른다. 이는 소위 ~ism(主義)과 ~zation(化)의 차이다. 결과(~zation)로서의 교육이 심각한 사회문제이긴 하지만 교육이라는 과정(~ism)을 통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인간이 사회문제를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있겠는가? 탈학교를 주장하는 일리치의 급진적인 사상을 당장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다양한 교육 실험은 일리치의 “탈학교(Deschooling)”에서 대안교육의 한 형태인 “홈스쿨링(Home Schooling)”과 학교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언스쿨링(Un Schooling)”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것을 닫힌 결과로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만이다. 교육의 가치가 아무리 선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불확실하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면 일리치가 좋아했던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처럼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썩은 백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및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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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훈(2009). “루만과 하버마스의 대립구도에 관한 하나의 이해”.  『진보평론』, 40.

정성훈(2018). “하버마스와 루만의 논쟁이 남긴 문제: 소통과 행위의 관계 및 귀속”. 『철학연구』, 120.

채희태(2020). "반반(反半)전문가의 전문성 비판”. 『시그널』, (8/6).
 <http://www.signal.or.kr/news/articleView.html?idxno=11869>

채희태(2021). “인간은 이유를 필요로 하는 동물이다”. 『브런치』, (11/25).
<https://brunch.co.kr/@back2analog/583>

Apple, Michael(1985). 『교육과 이데올로기』. 박부권∙이혜영 역. 한길사.

Benjamin, Walter(2008).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역. 도서출판길.

Dworkin, Anthony Gary(2007). “School reform and teacher burnout”. 『School and Society』, 3rd. Pine Forge Press.

Elias, John L(1984). 『의식화와 탈학교』. 김성재 역. 사계절.

Cayely, David(2010). 『이반 일리치의 유언』. 이한∙서범석 역. 이파르.

Diamond, Jared Mason(1998). 『총균쇠』. 김진준 역. 문학사상사.

Giesecke, Hermann(2002). 『근대교육의 종말』. 조상식 역. 내일을여는책.

Illich, Ivan(2004). 『학교 없는 사회』. 심성보 역. 미토.

Illich, Ivan(2014).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허택 역. 느린걸음.

Illich, Ivan(2015). 『전문가들의 사회』. 신수열 역. 사월의 책.

Freire, Paulo(1986). 『실천교육학』. 김쾌상 역. 일월서각.

나무위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하버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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