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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May 30. 2022

가장 오래된 역설, 페미니즘

 공주대학교 박사과정, "현대교육철학" 수업시간에 발표했던 원고입니다.


1. 序: 가부장제와 페미니즘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혹시 내가 알고 있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실체가 아닌 그저 편견의 덩어리는 아닐까?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페미니즘을 남성과 동등해지려는 여성들에 관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반(反) 남성주의로 여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훅스, 2017: 16/97)*. 우리가 페미니즘 교육철학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페미니즘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문명을 통해 환경을 지배해 온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문명이 개척한 환경의 지배를 받아왔다.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페미니즘 또한 가부장제라고 하는 지극히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배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Yoval Noah Harari)는 가부장제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인위성을 생물학적 사실과는 무관한 근거 없는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했다(하라리, 2015: 104/276).


가부장 사회는 농업이 시작되면서 등장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곽노필, 2020). 그리고 먼저 농경을 제안한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경은 남성이 담당했던 사냥보다는 여성이 담당했던 식물 채집의 정보가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약 19만 년 동안 모계사회를 이끌었던 여성은 어느 날 사냥을 떠나는 남성에게 사냥이 아닌 농경을 ‘명(命)’했을 수도 있다. 아마 인류가 맞이한 최초의 역설은 농경일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농경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농경이 시작되자 인류의 종족 생존에 필요한 여성과 남성의 기여도가 역전되었다. 다산은 여전히 중요했지만, 농사를 지을 노동력과 애써 수확한 농작물을 지킬 수 있는 전투력을 가진 남성을 낳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이른바 가부장제가 시작된 것이다. 가부장이라는 권력을 손에 쥔 남성들은 이제 그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모든 지배계급이 그래 왔듯, 생물학적 사실과 무관한 가부장제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신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구약 창세기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에덴동산 이야기는 농경의 시작이 선악과를 들이민 여성이었다는 증거와 애초에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에서 비롯되었다는 차별의 의미를 버무린 비겁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은 지난 1만여 년 동안 농경에서 비롯한 생산력 확대라는 인류의 새로운 목표를 위해 가부장제의 억압을 견뎌왔다. 11세기에 등장****해 중세의 계급질서 밖에서 후천적 노력으로 부를 축적했던 부르주아지들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과소비와 중복 소비는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솔루션이 되었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러 농경으로부터 이어졌던 인간의 고단한 노동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가부장제의 달콤한 권력에 취해 있던 남성들은 인류가 새로운 목표 앞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또는 부정했고, 여성들은 “미투”를 외치며 마침내 페미니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했다.


역사는 미시적으로는 변증법이 작용하는 듯 보이나, 거시적으로는 역설이 적용된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을 허무하게 무너뜨렸던 기독교의 역설은 암흑의 터널 중세로 이어졌고,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일으켰던 십자군의 역설은 7세기를 돌고 돌아 중세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가부장제의 역설인 페미니즘이 등장하기까지는 무려 1만 년이 걸렸다. 역설의 속도는 정보의 양과 속도에 비례한다. 지금 우리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역설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혹시 선거라고 하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등장한 굥정부도 촛불이 불러일으킨 어떠한 역설의 결과는 아닐까?


* eBook은 폰트의 크기에 따라 쪽수가 바뀌므로 전체 쪽수와 인용한 쪽수를 함께 표기하였음.


**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하라리, 2015: 57/276).


***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농업혁명과 놀랍도록 닮았다(하라리, 2017: 57/289).


**** 11세기 중세 유럽은 농업에 기반한 사회였다. 물자를 유통하는 행위는 혈통에 의해 지배 권력을 행사했던 귀족이나, 귀족들의 전투력을 담당했던 기사, 또는 땀을 흘려 토지를 일구는 농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다. 그 역할은 중세 봉건주의 시스템 밖에 있었던 제3의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몫이었다(채희태, 2021a: 103).


***** 신약에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지만(마가복음 19장 24절),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프로테스탄트는 이윤 획득과 물질적인 성공은 오히려 신의 축복이라고 여겼다(막스 베버,『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정신』). 이는 인류의 생산력이 기아를 해결할 수 없던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의 세계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 자본주의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과잉생산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와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물리적 경계의 최소 단위가 개인인 것처럼, 소비도 그 최소 단위가 공동체나 집단이 아닌 개인이 되어야 자본주의에 유리하다. 그래야 과잉생산의 맞은편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과소비와 중복 소비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과소비를 촉진하며, 유행은 중복 소비를 부추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금융 시스템은 미래까지도 소비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이 아닌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집단, 즉 관계의 공동체에서 빠져나와 소비에 굶주린 개인으로 살아간다(채희태, 2021b).



2. 本: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페미니즘의 이해를 위해 발표자의 관점으로 도식화해 보았다.

원래 발표 원고 2장은 로즈마리 퍼트넘 통(Rosemarie Putnam Tong)과 티나 페르난디스 보츠(Tina Fernandes Botts)가 쓴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의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다. 하지만 자유주의 페미니즘부터 퀴어 페미니즘까지 아무리 압축을 해도 발표시간을 너무 잡아먹을 것 같아서 별도로 페미니즘에 관한 내용을 PT 한 장으로 요약해서 발표했다. 보통은 한 주제당 발표시간이 짧게는 20분, 길게는 40분이 넘는 경우도 있는데, 난 15분 만에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께 칭찬을 받았다. 칭찬은 돈 다음으로 백수를 춤추게 한다. ^^


위의 그림은 페미니즘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한 도식화일 뿐, 이러한 방법으로 페미니즘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도식화는 이해가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편견과 교조주의로 빠질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태양빛의 파장에 따라 보이는 무지개의 색깔이 빨주노초파남보라는 것은 인간의 편의에 따른 도식화일 뿐 사실 각각의 색깔 사이에 무한대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심오한 사상을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사상을 도식화했지만, 그 결과 박제화된 과거의 위대한 사상에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가두려고 하는 교조주의자들을 양산하기도 했다.

“문제제기 - 저항 - 운동 - 분화 - 이론화 - 해체”의 도식화는 발표자가 페미니즘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일 뿐이다. 발표자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옮기며 이해한 척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들고 보니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상의 흐름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된다면 기독교, 지본주의, 마르크시즘, 나아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전개 과정 또한 이 틀을 사용해 진단해 볼 생각이다. 단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도식화일 뿐 시간의 흐름 위에 놓인 사상의 흐름은 언제나 상호 착종 관계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① 문제제기 : 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대한 최초의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신체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거짓된 믿음으로 인해 학교, 법조계, 노동 시장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가부장제라는 “차별”로 고착화되자,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젠더 정의를 위해 먼저 게임의 규칙을 공평하게 만들어야 하며, 그다음으로는 사회의 이익과 봉사를 위한 경주에서 어떤 참가자도 시스템상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공평의 주제는 주로 교육받을 권리와 참정권이었다.


② 저항 : 급진주의 페미니즘

문제제기 다음엔 저항이 뒤따른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이미 가부장제로 기울어진 사회를 평평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의 중심이었던 남성과 맞서기 위해 가부장제를 허물고 건설할 페미니즘 사회의 중심에 여성을 위치시켰다. 자유의지론 페미니스트들이 모든 여성은 남성과 함께 - 그것이 남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 성적인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격려받아야 하며, 가부장적 사회 내에서는 이성애가 여성에게 위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성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욕구를 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화 페미니스트들은 이성애적 성의 위험을 강조하며 여성들이 해방되고자 한다면 이성애의 구속에서 탈출하여 독신 생활, 자기성애, 혹은 동성애를 통해 뚜렷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창조해야 하며, 여성은 혼자서 혹은 다른 여성들과 함께일 때만 진정한 성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③ 운동 :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저항이 강력한 사회운동으로 전환되려면 기본 모순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억압의 원인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은 특권을 부여하는 거대한 사회적 규칙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종합을 시도했다.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은 『여성의 지위(Woman’s estate)』라는 책에서 여성의 상황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생각하듯이) 생산 구조뿐 아니라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믿는 것 같이) 재생산과 섹슈얼리티의 구조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동의 사회화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앨리슨 재거(Alison Jaggar)는 여성에게 부여된 아내, 어머니, 딸, 연인, 노동자의 역할 등이 여성해방을 방해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줄리엣 미첼이 여성의 궁극적인 적을 자본주의라고 보았던 반면, 앨리슨 제거는 여성에게 고통을 준 최악의 적은 자본주의보다 가부장제라고 주장했다.


④ 분화 : 유색인종, 돌봄 중심, 정신분석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사회적 파급력을 갖게 되면 그 이후엔 입장과 생각에 따른 분화가 시작된다. 유색인종 여성들은 19세기의 여권 운동과 여성 참정권 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주류 페미니즘은 마치 모든 여성의 경험이 태어날 때부터 백인 특권이라는 혜택을 받은 여성들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인 양 기능했기 때문에 유색인종 여성들의 관심사를 적절히 인정하고 설명하지 못했다.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억압을 설명하기 위해 가부장제, 자본주의, 국가주의와 같은 대규모 체계에 집중해 왔다면, 정신분석과 돌봄 중심 페미니스트들은 소규모 개인 세계를 분석했다. 그래서 여성 억압의 근원은 여성의 정신세계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주장했다.

돌봄 중심 페미니스트들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의 심리성적 발달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여아와 남아의 심리 도덕적 발달을 중요시했다. 또한 정신분석 페미니스트와는 다르게 (전통적인) 정신분석 이론의 성차별적인 특징들로 인한 짐을 지지도 않았다. 또한 돌봄 중심 페미니스트들이 정신분석 페미니스트들과 구분되는 점은 그들이 돌봄의 본질과 실천에 중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⑤ 이론화 : 에코, 실존주의, 포스트 구조주의 페니미즘

에코페미니즘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 상호 간은 물론이고 비(非)인간세계(동물과 심지어 식물)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에코페미니즘은 우리가 인간 세계는 고사하고 비인간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으며. 그 결과 인간은 세계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대량 파괴의 도구들로 무기 창고를 채우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한다고 주장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정신분석 페미니스트와 돌봄 중심 페미니스트보다 여성의 심리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여성 억압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실존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20세기 페미니즘의 핵심적 이론서인 『제2의 성』에서 그녀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실존주의 페미니스트인 보부아르가 여성의 타자성(otherness)을 주장했다면,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상태(타자성)를 거부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상태를 포용한다. 그들은 여성의 타자성이 개별 여성들로 하여금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지배적인 남성 문화(가부장제)가 모든 사람, 특히 그 문화의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제하는 규범, 가치, 습관들을 비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타자성은 제외되고, 회피되고, 불필요하게 여겨지고, 주변화되는 것과 연관된다고 하더라도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⑥ 해체 : 제3의 물결, 퀴어(Queer) 페미니즘

제3의 물결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이 가능한 한 많은 다른 종류의 여성들의 관심사에 반응한다고 여겼다. 다시 말해 그들은 현존하는 페미니즘에서 유리한 부분을 많이 포함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여성이 원해야 하는 것을 원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여성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에 반응하는 새로운 종류의 페미니즘을 형성하려고 했다.

퀴어 페미니즘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풍부하고 역동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퀴어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여성/남성의 이분법 안에 집어넣으려 하는지, 그리고 또한 사람들이 자신을 여성, 남성, 모두, 혹은 그 어느 것도 아닌 것으로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지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퀴어 페미니즘의 미래는 이미 논쟁 중인 여성의 개념에 새로운 측면을 더해 주었다.


3. 小結: 지역 갈등, 세대 갈등에서 젠더 갈등으로


모순은 반복되거나 교체된다. 그리고 해결이 불가능한 이러한 모순들은 점점 더 복잡성을 띤다. 혹자는 몇 년 전부터 떠오르고 있는 젠더 갈등이 더 심각한 모순이었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때 故노무현 대통령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두드렸던 대한민국의 가장 큰 모순은 정치를 둘러싼 지역 갈등이었다. 지역 갈등이 수면 아래로 잦아들자 수면 위로 떠 오른 새로운 모순은 세대 갈등이었다. 사회학자 전상진은 세대 갈등 논리는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게임일 뿐이며, 그 배후에는 계급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청춘을 민주화의 재단에 던졌던 586 세대는 민주화와 더불어 경제적 풍요가 만든 새로운 모순을 인지하려 들지도,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전쟁 세대가 계층 상승을 위해 학벌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무지한 꼰대였다면, 민주화 세대인 586은 우골탑 위에 세워진 자신들의 지위를 자녀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학벌을 이용하는 유식한 꼰대가 되었다. 악마와 싸우다 악마가 되듯, 586의 자녀 세대는 신념의 계몽주의로 무장한 부모 세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이른바 어린 꼰대로 거듭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젠더 문제에 전상진의 세대 게임 논리를 대입해 보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대남과 이대녀는 그저 젠더 전쟁의 총알받이라고 할 수 있다. 이대녀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가부장제의 수혜를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자마자 자동으로 가부장제의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이대남 또한 가부장제의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가부장제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기성세대는 세대 갈등과 버무려진 젠더 갈등 뒤에 숨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위치에서 그저 젠더 전쟁을 관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고 성찰해 보아야 한다.


한때 의도뿐만 아니라 노력과 무관하게 가부장제의 수혜를 누려온 죄책감으로 인해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남성들이 여성들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국가정책의 실패로 인해 등장한 거버넌스가 부도덕한 시장에게 다시 정책의 칼자루를 넘겨주는 것이 아니듯, 만약 페미니즘이 - 얼마 전에 타계한 벨 훅스(Bell Hooks)의 말처럼 - 착취와 억압의 반복이 아니라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는 것(훅스, 2017: 16/97)”으로 작동할 수 있다면 인류의 유전자에서조차 지워진 모계사회와 여전히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가부장제의 현명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혁명적 페미니즘 운동에서 남성의 페미니즘 의식화는 여성의 의식화만큼 중요하며, 남성과 연대해 투쟁하지 않고서 페미니즘 운동은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훅스, 2017: 21-22/97).


* 사실 빈곤 문제는 전통적으로 ‘계급’이나 ‘계층’의 사안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세대 전쟁론자들은 이를 세대의 문제로 새롭게 번역해냄으로써 앞서도 인용했던 레스터 서로(Lester C. Thurow)의 묵시론적 예언을 따른다. '가까운 미래에 계급 전쟁은 빈자와 부자의 대결이 아니라 젊은이와 노인들의 싸움으로 다시금 정의될 것이다(전상진, 2018: 118).’


** 채희태(2020). “남성들이여, 이제 코르셋을 입고 화장을 하자”. 『오마이뉴스』, (8/3).


참고문헌    

곽노필(2020). “가부장 사회로 미래를 맞아도 될까?”. 『한겨레신문』, (10/11).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5277.html>

전상진(2018). 『세대 게임』. 문학과지성사.

채희태(2020). “남성들이여, 이제 코르셋을 입고 화장을 하자”. 『오마이뉴스』, (8/3).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663678>

채희태(2021a).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작은숲.

채희태(2021b). “경계의 관점에서 바라본 존재의 이중성”. 『브런치』, (12/22).
 <https://brunch.co.kr/@back2analog/591>

로즈마리 퍼트넘 통∙티나 페르난디스 보츠(2019).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김동진 역. 학이시습.

벨 훅스(2017).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이경아 역. 문학동네.

유발 하라리(2015). 『사피엔스』. 조현욱 역. 김영사.

유발 하라리(2017). 『호모데우스』. 김명주 역. 김영사.

Pollo Del Mar(2014). “원더우먼은 여자 옷을 입은 슈퍼맨이 아니다”. 『허핑턴포스트』, (4/14).
 <https://www.huffingtonpost.kr/2014/04/13/story_n_51442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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