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Jul 16. 2022

사교육의 공교육 코스프레...

작년부터 난 평생교육학 박사가 되기 위해 인천과 공주대학교를 오가며 공부를 하고 있다. 국립대라 등록금이 싸다는 것과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박사과정 도전의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코로나가 잦아들면서 지난 학기엔 전면 대면 수업으로 바뀌었다는 것... ㅠㅠ 국립대라 그런가, 헌법 제31조 4항에 보장된 대학의 자율성과 무관하게 공주대학교는 교육부의 방침을 칼같이 받아들였다. 원래 박사과정 수업은 주로 토요일에 몰려 있는데, 토요일 수업으로 학점을 채우기 어려우면 평일 수업까지 들어야 한다. 지난 학기엔 토, 월, 화요일에 수업이 있어서 금요일부터 화요실까지 공주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난 공주에 작고 저렴한 자취방을 잡아 삼대가 선해야 할 수 있다는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인천에서 공주를 왕복해야 하는 교통비는 국립대학교의 싼 등록금으로 상쇄시킨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방까지 얻을 생각을 못했기에 매달 나가야 하는 월세는 백수인 나에게 심리적 부담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난 월세 마련을 위해 제민천에서 기타 강습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이라는 노래를 연주하고 싶어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던 난, 그 당시 기타 국민 입문곡이었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죽어라 하고 "Stairway to Heaven" 한 곡에만 매달렸다. 덕분에 고3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를 마친 후, 某고등학교 학생들이 유흥비 마련을 위해 열었던 일일 찻집에서 "Stairway to Heaven"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난 재수를 시작했다.


고3 때 영상은 없고... 며칠 전 작은 음악회에서 오랜만에 "Stairway to Heaven"을 불러 보았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난 수강생들에게 기타로 연주하고 싶은 로망곡을 한 곡 선택해 오면 무조건 한 달 안에 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뻥을 쳤다. 그 뻥은 대부분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졌다. 듣도 보도 못한 게임 음악(obstacles?)을 기타로 연주하고 싶다는 대학생은 정말 한 달 만에 어느 정도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하필 F가 들어간 로망곡(좋은 밤, 좋은 꿈)을 들고 온 고2 여학생은 3주 만에 F코드를 잡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기타 강습을 하며 나도 스스로에게 놀랐다. 히딩크가 선수로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끈 명감독이 된 것처럼, 기타 실력은 허접하지만 기타 강사로서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것이다.

아예 돗자리 깔고 기타 강사로 나가볼까?


이렇다 할 로망곡이 없는 중년의 수강생들에겐 입문이 쉬운 곡을 골라 그룹으로 가르쳤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입문곡으로 선택하는 것은 동기 유발 효과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고른 곡이 이상은의 "담다디"와 김광석의 "일어나"였다. "담다디"는 코드 진행이 C-Am-Dm-G7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같다. "일어나"는 #이 하나 붙는 Em 키지만, 코드 4개(Em, G, D, C)만 알면 연주할 수 있고, 무엇보다 F가 안 나온다. 문제는 "담다디"보다 주법이 다소 까다롭다는 것...


중년의 수강생들은 당연히 김광석의 "일어나"를 선택했다. 어디 가서 통기타 좀 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김광석 노래 한 곡쯤은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도 기타를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김광석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중학교 때부터 팝송만 불러왔던 난 기타를 연주하며 부를 수 있는 김광석 노래가 단 한 곡도 없다. ㅠㅠ


난 기타를 처음 만져본 수강생들에게 코드에 익숙해질 때까지 한 마디에 4번 다운 스트로크를 하도록 가르쳤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기타 수업에 임하고 있던 한 수강생은 일주일 만에 4비트를 완성하고 8비트까지 연습해 왔다. 반면 다른 수강생은 재능이 없는 건지, 아니면 연습을 안 하는 것인지 몇 주째 코드도 제대로 못 잡고 있었다. 기타 강습을 시작한 지 겨우 몇 주 만에 두 수강생 사이에 실력의 양극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부든, 아니면 신념이든 평소 양극화에 경기를 느끼고 있었던 난, 그 상황이 살짝 고민되기 시작했다.


난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왜 사내 동아리를 들지 않느냐는 직장 동료의 질문에 염미정(김미정 분)은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의 기준에 맞춰진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늘 버거웠고, 사내 동아리도 다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염미정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소심한 해방을 선택한다.

고심 끝에 난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전 늦게 따라오는 분께 진도를 맞추고 싶습니다. 그러니 복습은 하시되 가능한 선행학습은 해 오지 않으셨면 합니다.


오로지  명을 선발하기 위해 나머지 모두를 들러리로 만드는 학교교육의 행태가 지긋지긋해 나라도 다른 방식의 수업을 해야겠다는 철학을 어설프게 사교육에 적용하는 공교육 코스프레를  것이다. 며칠  열심히 기타를 치던 수강생으로부터 기타 강습을 그만두겠다는 카톡이 왔다. 사전에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것이 마음에 걸려 이유를 물으니 "자신은 열심히 연습해서 강습에 참여하는데, 연습도   오는 다른 수강생 진도에 맞추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했다.  그만두는 이유를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알겠다고 답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니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하고 있는 기타 강습은 야매긴 하지만 엄연한 사교육이다. 사교육은 사교육다워야 한다. 돈을 받았으면 돈을  사람이 원하는  주어야 한다. 확실히 사교육은 공교육에 비해 선발에 보다 효율적이다. 공교육과 사교육이 선발이라는 목표를 향해 경쟁한다면 당연히 사교육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교육을 하면서 어설프게 공교육 코스프레를  것처럼, 혹시 우리나라 공교육도 선발에 목을 매는 어설픈 사교육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속이 꽉 찬 책이 한 권 나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