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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l 13. 2022

신화(神話)와 우화(偶話)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통해 교훈을 얻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난 주로 우화를 통해 삶의 교훈을 얻었던 것 같다. 토끼와 거북이, 여우와 두루미, 개미와 베짱이 등… 대충 등장하는 동물만 나열해도 이야기 전개와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과학 문명을 통해 옅어지기는 했지만, 우화 이전엔 신화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신화를 고지 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신화가 아예 사라졌을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눈에 보이는 현실 속에서, 그리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신념의 체계 안에서 신화는 여전히 열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의 한 형태인 신화와 우화의 정체는 무엇이며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1. 정의

먼저 "신화"와 "우화"의 정의를 살펴보자.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단어 사전을 가지고 살아간다. 애초에 추상으로 시작했던 모든 개념들은 지식이 축적되고 경험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사회가 합의한 단어의 꼴에 다가 가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단어의 꼴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무리 상식적인 단어라도 사전적 정의에서부터 출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사전적 정의를 통해 단어 속에 숨겨져 있는 모든 함의들까지 끌어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신화"와 "우화"를 찾아보았다.


신화(神話)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사적(事績),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나 설화 따위가 주된 내용이다. 


우화(寓話)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이솝 이야기≫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2. 신화와 우화의 차이점

사전적 정의가 다른 두 단어의 차이점을 굳이 살펴볼 필요가 있을까? 동의한다. 하지만 이 글의 목표는 사실 신화와 우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 구조적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마치 단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반대말을 공부하는 것처럼, 난 서로 다른 두 단어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선 먼저 차이점을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사전적 정의를 얼핏 봐도 신화와 우화의 차이점이 쉽게 보인다. 사전적 정의대로 신화가 신이나 신에 준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라면, 우화는 인격화한 동물이나 사물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나친 단순화는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다양한 명언으로 단순화를 찬양한 아인슈타인도* 지나친 단순화를 경계했다.


상식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 않다. ‘아주 간단하게’는 ‘우리의 상식에 반대되지 않게’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간단한 설명은 대부분 틀린 설명이다. 사태를 간단히 기술해야 하지만 너무 간단히 기술하면 안 된다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 중에서)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사전적 정의의 이면으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신화에 신이나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이유는 사실 부자연스러운 계급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반면 풍자와 교훈을 담은 우화는 주로 동물이나 사물을 등장시켜 도덕의 문제를 다룬다. 즉, 신화가 수직적 지배 질서를 고착하기 위해 작동한다면 우화는 주로 - 피지배 개급의 - 수평적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신화와 우화의 세 번째 차이점이 도출된다. 신화가 비교적 무겁고 엄숙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우화는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만약 신화를 읽으며 삐죽삐죽 웃음이 새어 나온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길 권한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신화와 우화의 공통점을 파헤쳐보자.



* 단순화(simple)와 관련한 아인슈타인의 명언들... 영어 못합니다. 해석은 알아서!

Everything should be mad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t simpler.

Most of the fundamental ideas of science are essentially simple, and may, as a rule, be expressed in a language comprehensible to everyone.

It shoule be possible to explain the law of physics to barmaid.

If you can't explain it simply, you don't understand it well enough.

Any intelligent fool can make things bigger and more complex... It takes a touch of genius and a lot of courage to move in the opposite direction.


3. 신화와 우화의 공통점

모든 스토리텔링에는 의도가 숨어 있다. 개인 간에 주고받는 시덥지 않은 농담에도 상대방을 웃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데,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화나 우화에 의도가 없을 리 없다. 신화와 우화의 첫 번째 공통점은 여느 스토리텔링보다 더 강력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매우 강력한 의도가 탑재된 신화와 우화는 그래서 작위적일 수밖에 없다. "작위"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그렇게 보이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이다. 즉, 신화와 우화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누군가 강한 의도를 가지고 창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신화와 우화의 두 번째 공통점은 바로 신화와 우화가 창조된 시대의 부자연스러운 질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신화인 그리스∙로마 신화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부자연스러운 계급 질서를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창조되었다.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는 토끼가 거북이보다 빠르다는 지극히 당연한 질서를 뒤집는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 지배계급은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했고,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통해 농경이라는 생산관계는 인간에게 잠시라도 쉬면 안 되는 근면 성실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자본주의에 이르러서는 경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까지…


위에 열거한 신화와 우화의 두 가지 공통점은 마지막 세 번째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신화와 우화 모두 의도에 반하는 해석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계몽의 변증법"을 주장한 아도르노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도르노가 주장하는 계몽이란 신화와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은 사고의 방향을 고정시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과학적', '수학적'인 사고방식만을 통해 이성이 합리적인 도구로 사용될수록,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은 '이성적'이지 않은 것으로 제외당하게 되며, 이러한 '이성'은 '합리성에서 벗어난 다른 생각'들을 막음으로써, 계몽의 체계에서 '동일한 생각'을 교육받게 한다는 것이다. 즉, 계몽은 동일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며, 동일한 생각의 사회는 '비판'의 능력이 사라져 버린 사회이다. 비판이 사라진 사회란, 나치와 같은 파시즘의 사회와 다를 바 없다. 나치가 합리성을 주장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계몽'은 또 다른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계몽과 신화는 변증법의 형태로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것에 불과하며, 이것의 배후에는 '이성'의 힘을 과신하는 우리의 '사고체계'가 있다고 주장했다(나무위키/테어도어 아도르노).


4. 신화와 우화의 현재적 의미

필자는 글의 서두에 신화는 과학 문명이 한껏 진보한 현재에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현실 속에서, 그리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신념의 체계 안에서 열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초에 혈통 지위라는 계급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등장했던 신화는 자본주의와 조우하면서 누구나 "노오력"하면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정반대의 질서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 성공 신화가 바로 자본주의의 탈을 쓴 신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는 중세에서 자본주의로 갈아탄 가증스러운 신화에게 통쾌한 어퍼컷 한 방을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의 내용은 통쾌하기 보다 매우 우울하다. ㅠㅠ



어렵게 골라 쓴 성공이라는 탈이 의심을 받게 되자, 신화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섰다. 자본주의를 긍정하다 의심을 받게 된 신화는 이번엔 그 반대 진영으로 숨어들었다. 존재하는 모든 가치가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포스트모던의 시대, 여전히 세계가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이 굳게 믿고 있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신념과 악마의 계약을 체결한다. 소위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과거의 진보주의자들을 소환한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테어도어 아도르노"다.


만약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진보주의자들이 아도르노를 제대로 소환했다면 반대편을 공격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성찰하는 도구로 계몽의 변증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핏대를 세워 주장만 하다 성찰의 근육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진보주의자들은 자신과 다른 신념을 일방적인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가장 강력한 꼰대가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치러진 두 차례의 선거에서 부분적이나마 진보를 지향했던 진영은 시민들의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혹자는 예상치 못했던 선거 결과에 대해 대부분의 시민들이 나쁜 놈보다 착한 척하는 놈을 더 꼴 보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제한적일 수는 있지만, 난 아도르노가 주장한 계몽의 변증법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마르크시스트라는 이유로 아도르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보수주의자들보다 상호작용을 무시한 채 보수를 향해 일방적인 계몽만을 시전하고 있는 진보주의자들에게 더욱 그렇다.


계몽의 변증법은 매우 역설적인 단어의 조합이다. 변증법에 따르면 역사는 정(正)에 반(反)해야 합(合)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계몽이라는 단어는 마치 신화나 우화처럼 반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보수는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진보주의자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얼마 전 난 진보와 보수를 새롭게 정의했다. 과거엔 자유와 성장을 주장하는 진영이 보수고, 평등과 분배를 주장하는 진영이 진보였다면, 지금은 취향(좋고/싫음)을 가치(옳고/그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보수고, 가치마저도 하나의 취향일 수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진보라고...


단단한 신화와 다르게 말랑말랑한 우화는 시대의 맥락에 빠르게 적응하는 듯 보인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쿠스들은 우화를 재기 발랄하게 패러디해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곤 한다. 이를테면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잠자는 토끼를 깨워 함께 결승점까지 가는 거북이의 이야기로 비튼다거나, 거버넌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여우와 두루미 우화를 대입시킨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걸그룹 <써니힐>은 미련하게 일만 하는 개미가 아닌 베짱이의 문화적 가치에 주목해 "베짱이 찬가"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써니힐의 "베짱이 찬가"

사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구조적으로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모두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개인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신화, 즉 가짜뉴스의 창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의 뿌리를 신정론(神正論)에서 찾았고, 영향력의 규모를 제외하면 가짜뉴스의 구조는 음모론과 매우 흡사하다.


5. 결론에 대신하여…

이따위 글을 쓴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지루하고 장황한 글에 빈말이라고 수고했다는 댓글이 달리는 것도 아니니 결론은 쿨하게 생략한다. 사실 내 글이 장황하면서도 늘 끝이 흐지부지인 이유는 내가 내린 결론이 혹여라도 누군가에게 계몽적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다. 훌륭하게 결론을 낼 자신도 없지만, 아무리 훌륭한 결론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이 내린 결론은 이 시대에 더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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