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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Aug 13. 2022

전혀 우영우스럽지 않았던 13, 14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3, 14화 리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고, 지나친 기대에 따른 나의 셀프 배신감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3화에 이은 14화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잔잔한 감동으로 물들여왔던 우영우와는 사뭇 달랐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우영우가 아닌 정명석이었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 전개가 정명석 변호사의 컨디션과 동기화되기 시작한 건 12화, “양쯔강 돌고래”부터였던 것 같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스윗한 직장 상사의 모습으로 우영우의 “오피스 아빠”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기까지 했던 정명석 변호사가 인간적인 찌질함을 보여준 것 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 치자.


변호사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 이바지한다고 누가 그럽니까? 변호사가 하는 일은 변호예요. 의뢰인의 권리를 변호하고, 의뢰인의 손실을 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변호하는 게 우리 일이라고!
정명석이 뿔났다!

일반적으로 SF가 아닌 리얼리티에 기반한 문화콘텐츠의 성공 문법은 촌철살인과도 같은 현실의 반영이거나, 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대리 만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징어 게임>이 전자에 속했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례적으로 후자를 선택해 뭇 대중들의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회을 거듭할수록 작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대리 만족도 좋지만 대형 로펌 한바다에 소속된 정명석 변호사를 이대로 두었다간 리얼리티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것이고, 대리 만족이라는 약빨은 자칫 현실 은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우영우의 오피스 아빠 정명석을 현실과 이상 사이에 낑겨 고뇌하는 변호사로 포지셔닝한 것은 문지원 작가의 고육지계가 아니었을까?


보복을 두려워하는 한껏 위축된 변호사로, 변호사의 윤리보다는 대형 로펌의 이윤을 대변하는 현실감 충만한 캐릭터로 정명석을 묘사한 것까지는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명석을 3기 위암 환자로 만들어 드라마를 신파로 몰아가는 걸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인기가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아니면 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였을까? 제주도 로케를 감행하며 두 편으로 편성한 “제주도의 푸른 밤”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 문법을 읽어낼 수 없었다. 드라마의 뼈대인 법정 스토리는 구색 맞추기에 급급해 마지막에 어거지로 끼워 넣은 뜬금없는 변론으로 판결을 뒤집는가 하면,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소송에서 패소한 황지사를 찾아가 정권의 생리까지 운운하며 정부와의 협상을 도와주겠다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정명석 변호사가 무리하게 제주도 출장을 떠나며 대표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겠지만…


황지사 사건, 비록 소액 사건이지만 또 모르지 않습니까? 작은 사건이 큰 사건 되기도 하고, 또 새 사건 되기도 하니깐요.
밥값은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를 말아먹은 건 아닌지…

대형 로펌의 밥값을 다 하기 위해 우리의 호우프, 우영우까지 동원되어 영업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산으로 가는 드라마를 그저 맥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법은 우리를 도와주어요~
법은 우리를 지켜주어요~
살기 좋은 세상은 법이 살아있는 세상~


슬기로운 깜방생활에 나왔던 법무부 로고송이다. 법 따위는 필요 없다고 부정할 의도는 없지만, 모든 걸 법대로 하는 세상보다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더 바람직하다. 국회의원들에게 필요 이상의 권력이 주어지고, 그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열심히 법을 만들어 온 결과 우리는 법 없이는 옴짝달싹도 할 수 사회에 살게 되었다. 법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법을 둘러싼 소수의 전문가들은 일자리가 많아지겠지만, 나 같은 몽매한 일반인은 갈수록 살기 폭폭해 질 것이다. 김영란 법이 만들어질 때 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했다. 공직 사회가 조금을 청렴해질 거라는 기대와 법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우려… 법에 대한 일방적인 기대와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대한민국 초유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선출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봄 직도 하다.


14화에서 보여진 정명석과 우영우의 모습은 마치 드라마에 개연성 없이 등장하는 PPL처럼 대형 로펌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신자유주의 PPL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썼다.


정명석 변호사의 입원과 뜬금없는 전처(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갑다, 이윤지)의 등장, 아침의 햇살 최수현과 권모술수 권민우의 맥락 없는 러브라인, 우영우의 이준호 누나 상견례 등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마치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삐그덕거렸다. 정작 드라마 속 숨은 주연, 고래는 보지도 못하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 “피리 부는 사나이 수도권 시청률 18.1%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다음 주면 문화콘텐츠의 새로운 성공 문법으로  세계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주었던 우영우가 끝이 난다. 모쪼록 유종의 미를 통해  잔잔한 감동이 주었던 파문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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