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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2. 2023

미래교육지구의 추억 1

미래교육지구 성과 공유회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

1. Prologue


제목부터 껄적지근하다. 아직 2023년 달력이 마지막 잎새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아무리 올해로 교육부가 주관하는 미래교육지구가 끝난다지만 벌써부터 추억을 운운하다니… 제목에 추억을 붙인 것에 대한 불만은 이 조잡한 글을 끝까지 읽은 다음 해 주시기 바란다. 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2023 미래교육지구 성과 공유회에 다녀왔다. 사실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성과 공유회 프로그램에 반가운 이름이 있어 참석을 결심했다. 가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지인 외에도 이름만 들어 본 전국의 내로라하는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들이 대거 참석해 있었다. 2020년 초기 세팅부터 미래교육지구 사업을 이끌어 온 양병찬 교수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성과 관리와 성과 관리를 위한 지표 개발 등을 주제로 한 강연과 분임 토론이 이어졌다. 럭셔리한 저녁식사와 넉넉한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다음날 지인이 참석한 토크 콘서트를 끝으로 미래교육지구의 “마지막” 성과 공유회는 막을 내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자칭 글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예전엔 하고 싶은 말을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 말쟁이였지만, "말이 많다", "너무 나댄다"는 민원을 접한 후로는 미리 정해진 스피커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돗자리를 실수로라도 밟기 전엔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말을 아끼는 대신 생각들을 꼼꼼하게 갈무리한 후 손끝에 담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자, 그럼 지금부터 미래교육지구 성과 공유회에 다녀온 소회를 글로 한번 풀어 보겠다. “할많하않”이라고 무대 위에서 한 마디 해 보라고 계속 시네루를 보내는 지인의 눈빛을 외면한 채 끝까지 마이크를 잡지 않았던 이유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었고, 그 많은 생각들을 몇 마디의 말로 정리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1. Prologue

성과 공유회 중 자주 등장한, 그리고 가장 심각한 키워드는 다름 아닌 '지역소멸'이라는 단어였다. 뉴스나 글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것도 남 얘기가 아닌 당사자의 입을 통해 뱉어져 나온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는 살갗을 비집고 들어와 내 심장에 머물렀다. 그래서 오랜만에 생각이란 걸 해 봤다. 지역소멸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 문제를 풀 해법이 있기는 할까?


이름은 다르지만 다양한 이름의 혁신교육지구를 통해, 그리고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마을과 학교의 동침이 시작되었지만, 과연 마을과 학교가 같을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토크콘서트에서 발제를 맡은 <삶과앎모두의평생학습>, 전하영 대표는 다행히 자식이 공부를 안 해 지역을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뼈만 가득한 농담을 던졌다. 솔직하게 물어보고 싶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이, 마을이라는 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마을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아니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골라내 소멸해 가고 있는 지방도시로부터의 탈출을 돕는 것인지...


1971년,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를 통해 모든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보편 교육은 아이들의 다양성을 학력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움으로써 역설적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꼬집었고, 1979년 <Pink Floyd>는 "Another brick in the wall"이라는 노래를 통해 제발 아이들을 냅두라고 외쳤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 Hey Teacher, leave them kids alone!


얼마 전 경기도 연천에서 열렸던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평생학습 연계 포럼>에 참석했던 모대학 관광학과 교수는 "관광으로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관광지로 유명한 나라들은 모두 부자나라가 되었어야 한다"면서, 소멸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나치게 관광에 의존하고 있는 지방도시들의 정책을 조심스럽게 비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자기 밥그릇을 걷어차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관광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저런 말을 해도 되나?


학교도 마을 사람들에게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한 행복이라는 말로 교육의 본질을 은폐하지 말고 솔직하게 속내를 밝혔으면 좋겠다. 학교가 원하는 것은 사실 모든 아이들의 행복이 아니라 더 많은 아이들이 '상대적' 낭패감에 빠지더라도 단 한 명의 1등을 골라내 지역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그러한 학교의 목표에 마을이 순진하게 동참할수록 지역은 더 빠르게 소멸할 뿐이라고...


마을교육공동체가 적과의 동침이 되지 않으려면 학교는 오로지 입시를 위해 도입된 상대평가를 내려놓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절대평가를 과감하게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도 다양한 지역이 안고 있는 서로 다른 사정을 오로지 경쟁과 선발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일반화시키지 말고, 현장의 합의를 존중할 수 있어야 진정한 "풀뿌리 교육자치"를 입에 올릴 수 있다.


몇 년 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교육부 장관으로서 꿈을 물은 적이 있다. 유은혜 장관은 대한민국 범주의 교육합의를 이루어 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난 대한민국을 아우르는 교육합의보다 전국에 있는 20,605개의 학교가 자신이 위치한 지역의 맥락에 부합하는 교육합의를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지방도시에 있는 학교의 목적이 서울에 있는 국립대학에 보내는 것이라면 과연 그 지역의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역 소멸은 학교가 제시한 교육의 목표에 마을이 아무런 의심 없이 동참하고, 자신의 아이가 교육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가 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부화뇌동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추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의미심장한 유머가 하나 있다. 기후 위기의 해법을 슈퍼 컴퓨터에게 물었더니 인류를 없애라고 답했다는… 만약 챗GPT에게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에 대해 설명한 후 지역소멸의 해법을 구한다면 다음과 같이 답할지 않을까?


학교를 없애라!

오해를 덜기 위해 부연하자면, 마르크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사회구조의 피조물일 뿐인 교사 개인에게 지역소멸의 책임을 전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근대 교육의 태생적 목표가 그렇다는 것이고, 학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으며, 마을은 그러한 교육의 목표에 성실하게 동참했을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일찍이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신념윤리'와 더불어, 신념이 만들어 낸 역설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를 강조했다. 지방도시에서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학교에 선한 의지가 만약 지방소멸이라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진다면, 마을교육공동체는 어떠한 교육합의를 향해 나아가야 할까?


연말연시를 앞두고 공사가 다망해서 할 말을 다 풀어놓지 못한 채 잠시 글을 맺어야겠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지만, 개인 사정으로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생각들이 글로 풀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수도 있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2. Pre-미래교육지구

2018년, 파이(예산?)의 확대가 아닌 파이의 분배를 위해 교육부가 주관하는 "풀뿌리 교육자치사업" 공모를 과감하게 포기했던 은평의 사례를 통해 소위 '공모'가 가지고 있는 민낯을 까발려 보겠다.


3. Peri-미래교육지구

2020년 공주와 부산 사하구 성장지원단에 참여했던 경험과 2023년 안양 미래교육지구 성장지원단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소외를 풀어보겠다.


4. Post-미래교육지구

성과지표, 격차, 미래 등 지역소멸 외에 미래교육지구 성장 보고회에서 나왔던 다양한 키워드들을 내 식대로 짚어 볼 예정이다.


5. Epilogue

마음이 가는 대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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