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난이 부끄러웠던 적이 별로 없다.
전쟁 통에 소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신 아버지는
자식들 공부 시킨다는 일념 하나로
농사를 때려 치우고 일찍부터 장사를 시작하셨다.
미역, 내복, 시계, 전축 등등…
난 그런 아버지를 5살 때부터 따라다녔다.
장어를 잡겠다고 배를 타신 적도 있고,
사업에 실패해 노가다를 하신 적도 있다.
평화시장에 손바닥만한 매장 하나를 열어 놓고
한 벌, 두 벌이 아닌 무게를 달아 옷을 파셨을 때가
그나마 아버지 인생에서 제일 편하셨을까?
대학생 땐 더러 아버지 대신 야간 건물 경비를 서기도 했다.
나의 가난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어찌 부끄러워할 수 있단 말인가!
백수가 된 이후 가끔은
오히려 그런 나의 가난이 자랑스러울 때도 있다.
난 무지가 부끄러웠던 적도 많지 않다.
무지가 부끄럽다면 어떻게 이 나이에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보다 영어 단어를 더 많이 아는 둘째 딸이 부럽고,
늘 책을 옆에 끼고 사는 아내를 동경한다.
그런 내가 부끄러운 것이 있다면,
가끔 어떠어떠한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다.
그 행위의 대부분은 나의 의도와 무관하겠지만,
그렇다고 나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는 사실,
내가 누군가로부터 가장 받고 싶은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