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의 통찰과는 무관하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혁명과 반동이 격하게 투쟁하는 시대였다. 혁명을 주장하는 자들은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세력을 반동으로 규정했는데, 혁명의 주장이 강했다면 그들에 의해 규정된 반동의 패러다임은 매우 넓었다. 맑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혁명 세력의 적자가 ’로자 룩셈부르크’였다면 ‘베른슈타인’과 심지어 ‘그람시’는 수정주의를 주장한 맑스주의의 서자라고 할 수 있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현재 독일의 사민당으로 이어지는데, 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조선을 건국한 것도 서자 출신의 ‘정도전’인 걸 보면, 역사는 적자가 아닌 서자에 의해서 확장되어 이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적자생존이 아니라 서자생존? ㅋㅋ
여기부턴 페이스북 댓글에 달린 반론과 재반론입니다.
반론: 아재개그...
낭만백수: 그렇긴 한데... 그 속에 숨어 있는 뼈는 안 보이나?
반론: 로자를 적자로 그람시를 서자로 설정한게 맞나? 그럼 레닌이나 마오쩌뚱은? 시민사회에 발달하지 않은 러시아에서 맑스주의는 레닌식으로 변형된것 아닌가? 혁명은 구체의 산물이므로 적자 서자 구분이 타당한지? 하나더 맑스가 당대의 다른 조류들 생시몽이나 오웬 크로포트킨 등과 견해를 달리 했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통렬히 비판하고 제 1인터에도 개입하면서 독일 고테스베르크 강령에도 참여하였지만 자신만이 진리의 중심이라고 설정하지는 않은것 같은데..
낭만백수: 그냥, 뼈 없는 아재개그로 하자.
문제는... 맑스는 매우 훌륭하게 그당시 자신이 목도한 자본주의를 통찰했다는 것이고, 그냥 그 생각을 바탕으로 각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통찰하면 그 뿐인데, 모두 거인의 어깨 위에 경쟁적으로 올라타기 위해 자신이 적자임을 내세웠던 것은 아닌지... 이게 원조와 이식이 가지는 차이인데, 맑스가 태어났던 독일의 좌파 정당들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맑스주의와 선을 긋는 새로운 강령을 채택하고,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도 유교에서 벗어났는데, 여전히 시대의 성장이라는 본질이 아니라, 신념의 이익이라는 현상에 빠진 사람들은 소모적인 적자 논쟁에 몰두한다는 것이지. 마치 조선시대 성리학의 해석을 가지고 왕이 죽었을 때 장례를 며칠 치뤄야 하는지 싸웠던 유학자들 처럼... 참고로, 그람시는 러시아 혁명을 맑스의 자본론에 반하는 혁명이라고 했으니까... 서자의 서자가 아닐까? 잘 모르겠네.
반론: 그대 이야기나 내 이야기나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맑스의 저작을 경전 모시듯이 해서 어찌 맑스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킬수 있겠는가? 그대도 적절히 그람시를 인용했듯 맑스주의를 승계했다하는 레닌주의도 러시아적 특수성의 산물이고, 해서 난 적자니 서자니 하는 비유가 그닥 와닿지 않는다는 거야. 한때는 나도 수정주의적 견해를 모두 개량으로만 취급했다네. 북유럽 사민주의에도 매우 비판적이었지.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네. 주의에 경도되기 보다는 구체적 현실에 착목하려고 하지. 어쩌면 나도 개량주의자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야.
낭만백수: 개량에 대해 다소 주저하는 그대의 태도를 보면 아직도 (나에 비해) 멀었네! ㅋㅋ 김미경 교수님도 정통 맑스주의를 공부한 독일의 교수로부터 “개량주의가 뭐가 문제냐?”라는 말을 들었다지 않는가! 그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의미와 무관하게 적자는 교조로 흐르기 쉽고, 서자는 다양한 확장성을 가능하게 하지. ‘적자’와 ‘서자’라는 단어에 옳고 그름의 가치를 탑재한 것은 아니니 발끈하지 마시게. 그대의 개량엔 이 선배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보네만... 지금의 상황이 흡족하다면 감사한 마음을 갖게나... ㅎㅎ
반론: 헐.. 아깐 아재개그 이젠 자뻑 ㅋㅋ 내가 이건 도저히 못따라갈듯 ㅋㅋ
낭만백수: 그것이 나의 매력 아니겠는가! 내가 그러한 허술함이라도 없다고 한번 상상해 보시게, 얼마나 재수가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