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경박단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mien We Apr 02. 2024

15. 흘리기

어제로부터 펀치가 날아오면 흘려보내시죠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난 요즘 사는 게 이래도 좋을 것 같고,

저래도 좋을 것 같아"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유를 말해줘?

그건 당신이 실패해서 그런 거야"




오늘 나눈 대화다. 그의 조언에 나는 잠시 멈췄다. 이런 류의 피드백을 들으면 감정이 올라왔었다. 뭐라고? 하면서 솟아올라온 감정을 숨기고 조목조목 이런 말을 한 의도와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면서 상대의 표정과 반응을 살피면서 최대한 이성적인 느낌으로 화를 내거나 했다.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약간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려 했었다.


사실 성공이냐, 실패이냐는 비일비재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성공의 정의를 이렇게 말했다. '원래 추구하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의도대로 되어가게 하면서, 그 상황이 아무리 바쁠지라도 중간중간 성취감을 느끼면서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야 말로 어느 정도의 성공이야‘


이러한 정의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겠으나, 내가 봐온 세상과 너무 달랐다. 그가 이야기한 성공을 누리는 경우는 극도로 소수였다. 그러니 그의 정의에 따르면 '그 소수에 들어가야 성공'이다. 애초에 '놓아버림과 내맡기기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는 다시 과거에 가지고 있던 성공(?) 아니, 유지보수하려는 미친 듯한 집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가끔씩 생각하는 거지만,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해 주면 좋아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이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미끼 삼아 나에게 미친듯한 과부하를 원했다. 비전이 생기고, 미션이 만들어졌으며, 밸류를 달성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프로세스라고 주입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 파묻혀 살아왔다. 그 맥락 속에서 가장 몰입한 인간형이 되면, 앞서 나에게 화두를 던졌던 그가 정의한 대로의 성공이 따라오고 그것은 나에게 깊은 만족감을 줄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갑자기 새옹지마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생은 가끔씩 한 인간이 납득할 수 있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어릴 적 '투쟁이 곧 평화'라고 믿었던 대학친구는 이제 '투쟁'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산다고 했다. '영어가 제국주의의 언어라고 배우지 않았던 영문과 선배는 지금 영어교사를 한다'.


무거워지면 결국 가벼워지고

두꺼우면 결국 얇아지며

길어지면 결국 짧아지고

커지면 결국 작아진다


과학이 아닌 삶을 살아갈 때의 순간순간 생기는 Definition은 계속 변하게 마련이다. 신념이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닌, 개인의 삶에 달라붙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단어 자체가 흐려져간다.


이제야 들린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아닌, 스스로가 겪어내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한 명의 사람은 자신이 가진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된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조언이 어려워진다.


솔직히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씩 타인의 이야기는 그냥 흘려야 하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14. 뒤집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