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까지 가지 않고, 느낌까지만 가볼까?
나와 한 몸인 것들
잘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나와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다고 본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나라는 존재가 가장 붙어있는 것들.. 세상과의 통로라고 생각해 볼 때 그건 바로 '느낌'이다. 도대체 느낌이 무얼까라고 궁리를 해보는 중이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아주 다양한 '느낌'이 생긴다. 키보드를 건드리는 느낌, 손 목 위에 있는 시계의 무게감, 노안 안경 속으로 느껴지는 다소 건조한 안구의 느낌, 척추 양쪽으로 긴장되고 굳어있는 근육의 딱딱한 느낌, 사무실에서 나오는 에어컨의 바람에 대한 느낌 등 온몸의 여러 곳에서 느낌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적인 건 아니지만, 지난 몇 년간/몇 개월 간/며칠간/몇 시간 동안 있었던 다양한 일에 대한 느낌도 있다. 기억해 낼 수 있다. 힘들고 괴로웠던 느낌, 억울하고 분노했던 느낌, 다 잊고 싶어서 업무에만 집중했던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벌어지는 일련의 불쾌한 느낌들. 반면에 좋았던 느낌도 있다. 새로 만난 인연들에 대한 감사한 느낌, 오해가 풀어졌던 느낌, 갑자기 직책이 강등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느낌, 수도 없는 느낌들에 둘러싸여 있다.
첫 번째 질문. 느낌은 무엇인가?
지금 보고 있는 책에서는 이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느낌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서 살짝 복잡한 개념이 끼어든다. 느낌을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 느끼는 주체는 '나'다. 좀 민감한 사람들은 주변인들의 느낌도 같이 느낀다. 특히 타인의 고통과 내가 겪었던 고통이 공명할 경우에 그렇다. 느낌은 공유된다. 육체적인 느낌도 정신적인 기억에 기반한 느낌도 둘 다 공명하기도 한다.
느낌을 다른 단어로 이야기하면 뭘까? '감정/감각/분위기/Emotion/Feeling/Ambience/Mood' 뭐 이런 정도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다시 정리해 보아도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느낌'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자극이 들어가더라고 특히 육체적인 느낌은 타인과 유사하지만, 기억에 대한 느낌은 개인차가 크다. 그렇다면 차이는 '결국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기반한 느낌에 개인차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음식이나, 냄새에 대한 개인차 정도는 있겠으나 대다수가 유사하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두 번째 질문을 해보려 한다.
개인적인 기억에 대한 느낌이 결국 개인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있었던 일/사람/조직 등을 생각하면서 개인은 그 느낌을 쌓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가치관을 다르게 가져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느낌은 감정이 발화하기 바로 전 단계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럼 세 번째 질문을 해보자
느낌이 감정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반복된 느낌이 감정으로 바뀌는 과정은 굉장히 빠른 것 같다. 어릴 적 처음 무시당했던 일. 처음엔 당황하지만 정말 싫다는 느낌, 혹은 내가 무력하다는 느낌을 받고, 그 느낌이 '분노나 우울한 감정'으로 변화하곤 했다. 누군가 앞에서 발표를 잘했을 때 받는 '축하받는 느낌', '인정받는 느낌'은 '자신감, 권능감' 같은 감정으로 변화했었다.
요약을 해보면
육체적인 자극과 정신적인 자극이 내 육체와 두뇌에서 인식되는 찰나'느낌'이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발생하며,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그 느낌을 좋은 것으로도, 나쁜 것으로도 판단반응을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극에 대해서 즉각적인 감정발생'이라는 고정된 회로를 각인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난 수 십 년간 쌓아 올린 이 Input과 Output 사이에 뭔가 Filter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탐색하며 읽고 있는 '마음 챙김, 불교 서적, 뇌과학, 요가' 등 책들을 보면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서로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발화하는 고통/느낌/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조용히 바라보라고 한다. 그때 호흡을 조절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요가를 하거나, 걷거나 등의 방식을 추천한다'. 이 부분이 상당히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방법을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측면이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좀 쉽게 한국말로 표현하면 어떤 종류의 느낌이 들던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말란 말로 해석된다. 방법은 개인차가 있겠으나, Input으로 인해 요동치려는 느낌-감정 회로를 잠재워야 하더라. 느낌이 감정으로 변화하려는 즉각적인 화학반응을 얼마나 지연시킬 수 있는가가 결국은 요지이더라.
다들 쉽게 오해할 수 있지만, 싫은 느낌뿐만 아니라, 이건 좋은 느낌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것이 살아가는 것을 더 어렵게 한다. 좋은 input에 대해서 받는 그 좋은 느낌 역시 감정으로 화학변화하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가? 어렵다. 분노도 어렵지만, 사랑도 어려운 것이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해보고 싶다.
느낌을 감정으로 변화하는 속도를 늦추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변화합니까?
잘 모르겠다. 돌부처가 되려나, 극도 둔감자가 되려나, 내가 하는 업무의 효율이 떨어지려나, 올라가려나.... 솔직히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좀 확실한 건 '시끄러운 머릿속이 조금 더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과 같이 울렁거리던 가슴속이 다소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경박단소하게 살고 싶은 나에게는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울렁거림이 끊임없는 문제다', 반면에 '너무 행복해지는 것도 부담 가는 나에게는 쾌락도 문제다'. 주파수의 진폭이 너무 크다. 주파수의 진폭을 키우는 요소가 'input에 대한 느낌이 감정으로 변화하면 발생한다'라는 현재의 잠정적인 결론이 '날 돌부처로 만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좀 조용한 성격으로 변화시켜 가는 것 같다'.
물론 벌어진 일들에 대한 동요/요동도 줄어들긴 한다.
오늘도 모두 고요하게 주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