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도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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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상당히 많은 선택을 한다고들 이야기하나, 사실은 인생의 거의 99%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어날지 말지, 아침은 먹을지 말지, 운전 중에도 어느 길로 갈지,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에게 친절을 베풀지 말지, 오늘은 내가 가진 '정의'라는 가치관에 맞춘 선택을 할지 말지. 인생은 좌우지간 선택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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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기도 할 수 있지만, 무서울 수도 있는 것은 '현재의 나는 상당 부분 선택의 결과가 총 집합한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어릴 적 나의 피부는 꿀피부였다. 20년간 담배를 피웠더니 지금은 거의 사포에 가깝다. 타인을 배려하기 보다, 나의 길이 중요하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더니 내 인상은 상당히 '독고다이'스럽다. 그러나 조직에 기대서 살아간다. 내 얼굴과 조직과 어울리는가?하고 물으면 자신이 없다. 선거도 하지 않았었다. 내가 뽑은 한표가 국가 예산 5천만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난 무책임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할만큼 했으면 그만해도 되는가?'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난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을 혐오하면서 살았으나, 내 무의식은 계속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외쳤으니까. 교훈적인 가치관과 내 경험이 잘 믹스되면 좋겠지만, 협소한 나의 의식세계는 어떤게 정의인지, 부당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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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념
2. 가치관
3. 정의
이 세가지가 사회가 요구하는 선택의 기준이나,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장 큰 기준은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의 여부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자기합리화나, 타인설득이 점점 더 교묘해지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식할 때는 '객관화'해볼 수 있으나, 실제 상황을 만나면 '주관화'되어 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한다. '선택에도 예술적 가치'가 필요하다고...
내 스스로 내린 선택이 누군가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고,
나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손해' 좀 봐도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다.
물론 '나의 선택이 가족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무섭다.
그래도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품은 선택'이라면
내 딸내미도 커서 아빠를 더 이해해줄거다라고 믿고 싶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의지력은 작지만,
습관은 미래라는 생각은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선택은 나와 남에게
감동/카타르시스를
줄 만큼 예술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