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Other Choice?
주말에 기다리던 박찬욱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봤다. 한국에서는 10월에 개봉을 했지만 미국에서는 지난주 목요일에야 들어왔고 토란토 영화제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서 더 관심이 모아졌다.
비가 오는 목요일 4시 반 상영에 갔는데 영화관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영화표를 살 때 좌석을 지정받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좋은 자리를 원하면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가서 줄을 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영화가 시작하기 20분 전에 도착해도 자리가 없어서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서 봤는데 첫 한 시간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집중했다.
우선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박찬욱의 영화 중 가장 코믹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극장이 떠내려가게 웃음소리가 나는 장면도 꽤 있었고 관객들이 놀라 헉! 소리를 지르게 하는 장면도 여럿 있었다.
영화는 직장을 잃은 중년의 남성이 취업을 위해서는 나와 경쟁자인 사람들을 다 죽여야 한다는 너무 고지식하고 무식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중년의 남성이 연쇄 살인자가 되기까지 관객은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그의 생각에 다소 억지감을 느끼다가 서서히 그와 함께 한 사람 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그가 계획대로 취업에 성공하자 몇몇의 관객들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울창한 숲 속에서 나무를 가차 없이 베고 실어 나르는 트럭들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아름답고 고운 종이를 사랑해서 '펄프맨'으로 영원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던 주인공에게 나무가 종이가 되기 위해서 그들이 자연에게 마구 도끼질을 아니 전기톱질을 해대는 아이러니하고 끔찍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를 보자마자 영화의 바탕이 된 책 도끼(The Ax)를 읽기 시작했다. 영화는 한국인 감독 박찬욱이 한국을 배경으로 만들었지만 사실 영화에서 한국적인 면은 거의 없다. 주인공이나 다른 사람들이 사는 집들은 미국의 중소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개인주택들이고 다른 요소들 역시 한국적이지 않다. 꼭 부다페스트 호텔을 만든 웨스 엔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영화들처럼 영화의 장면들은 아름답고 스타일리시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특별히 '한국적인 정서'는 없다.
우선 크게 책과 다른 점은, 주인공의 캐릭터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종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제지 업계에서의 취업만을 생각한다. 반면 책의 주인공은 별 다른 생각 없이 취업을 하려면 나보다 잘난 6명을 죽이기로 결정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3명을 죽여야 하는 모티브를 만들기 위해 꽤 공을 들인 것과 반대로 책은 시작과 동시에 바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의 캐릭터는 독자를 이해시키려 하지도 살인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책 중간쯤, 'I have no other choice'라고 주인공이 한마디를 한다. 이미 둘이나 죽였으니 그 사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 죽여야 한다는 의미로 '어쩔 수 없다'라고 한다. 아마 영화의 스크린플레이를 맡은 돈 맥캘러(Don McKellar)가 여기서 영화의 제목을 착안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1997년 출판되었는데 여전히 스토리는 현실적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공지능 때문에 다들 짤릴 날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와닿는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아니 일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사람까지 죽이나?'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데, 실제로 주위에서도 직장을 잃고 심리적이나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이야기가 그렇게 과장되었다고만도 불 수는 없겠다.
설에 따르면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미국에서 만들려고 오랫동안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영화를 만들 제작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백번 간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이야기는 지금 너무도 사실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기저기서 총기난사에 칼부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미국에서, 해고 직후에 회사에 가서 총기를 난사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영화 제작사는 금전적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고소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은 51살의 중년 남성이다.
예전에는 '중년의 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참 많았다. 나이가 50 즈음에 들어서서 돈은 좀 벌었는데 청춘은 일하느라 다 날린 사람들이 허무함을 느끼고 번쩍번쩍한 스포츠카를 뽑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방황을 하는 등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영화나 책의 흔한 소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이야기들은 보기 어렵다. '중년의 위기'라는 단어는 아직 생산성이 최고인 40대 50대들이 퇴출당하고 다른 직장을 잡지 못해서 방황하는 현상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소제를 다룬 영화나 책이 많다.
특히 책에서 주인공의 세 번째 희생자가 말한다.
예전 사회에서 배고플 때 젖먹이 아이들을 버리거나 병에 걸린 노인들을 버렸다. 요즘 사회에서는 사회의 척추가 되는 중년들을 내다 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아직은 젊다고 믿고(영 40라나?), 주머니에 가진 돈은 생각만큼 많지 않은데 벌써 나이 때문에 회사에서 밀리는 사람들. 이 현상은 물론 한국에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미국에서도 이제 시작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여파로 예전 같으면 그래도 안전하다고 여겨진 화이트 컬러들, 즉 사무직 종사자들도 이런 현상을 피해 갈 수 없게 되었다.
학교 졸업하고 오랫동안 업계에서 일했는데 나와서 재 취업을 하려면 깜깜한 현실은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마찬가지고 요즘은 실리콘밸리에서도 흔한 현상이다.
물론 IT 업계에서는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학을 갖 졸업하고 직장 경험이나 경력이 많지 않은 사람들 보다는 나은 편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마 몇 년 있으면 장담 못할 것 같다. 인공지능이 전문직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고, 업계나 직종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여파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인다고 우리를 설득하려 한다.
업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인공지능 때문에 감원을 해야 한다고 하고,
회사의 우두머리들은 주주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서를 잘라야 한다고 하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너를 밀어내야 내가 살 수 있다고 하고,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우선은 몇몇 사람들만 더 잘 살게 해보자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또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을 가혹하게 대하고,
우리 세대가 잘 살려면 너네 세대가 어쩔 수 없이 희생을 해야 한다고 하고,
내 집값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집 없는 사람들이 고생하고 살아야 한단다.
내가 빨리 물건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 회사에서 물건을 시켜야 하고,
그 회사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일 시켜서 일 년에 한 두 명쯤 죽어도 어쩔 수 없단다.
어쩔수가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