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실리콘밸리의 나이차별
내가 10년 전 실리콘밸리로 이전했을 때 여기서 3-4년만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물가가 너무 비싸서 연봉을 고려해 봐도 여기서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둘째로는 바로 나이 때문이었다.
실리콘밸리 어디를 둘러봐도 45세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South Bay(San Jose, Mountain View 등)에 비교했을 때 그 현상이 더 심한 것 같다. 종종 친구들과 농담 삼아 여기서는 45살 되는 생일에 버스가 와서 다른 도시로 데리고 간다고 할 정도로 여기서는 젊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출근 시간이나 주말에 붐비는 지역에선 더 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흔히 중/ 고위간부급들인 경우가 많은 것과 대비해 여기서는 창업인이나 C-level executives들도 거의 20대 또는 30대가 많아서 더 그런 현상이 강조되어 보인다.
한국에서도 비 자율적 정년퇴직이 40대에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49.3세를 한국 근로자 퇴직 연령 평균으로 잡은 뉴스기사는 더욱 가속화되어 가는 한국의 조기퇴직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듯하다.
실리콘밸리에는 정말 젊은 사람들 밖에 없나? 나이차별이란 것이 있을까? 실리콘밸리에서는 몇 살이 퇴직 연령인가?
나는 몇 달 후에 45살이 된다. 실리콘밸리에서 본의 아니게 희귀종이 되었다. Google, Meta 등 큰 기업에도 45세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은 보기가 어렵다. 이런 현상은 당연히 신입사원채용에서 두드러지지만 앞서 말했듯 창업인이나 고위간부급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거의 20 - 30대가 대부분이다. 다른 실리콘밸리 지역과 비교해 봐도 샌프란시스코에 젊은 사람들(25 - 44세)의 분포가 크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함께 일하는 팀원이나 매니저 그리고 CTO도 마찬가지로 20 - 30대이다. 내가 회사를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약 7년 전) 총 45명의 엔지니어 중에 내가 2번째로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120명 중에 5번째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간혹 나이 많은 사람이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거의 1 - 2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이런 현상은 우리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여러 젊은 회사에서 나타난다. 아무리 원격으로 회의를 하고 팀원을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팀원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고립된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래서 가끔은 회사에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뽑는 것을 주저하고, 또 마찬가지로 나이 많은 경력자가 실리콘밸리 회사에 오는 것을 꺼려할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력이 많은 사람들을 뽑았지만 내 기억에도 3년 이상 회사에 머무른 경우는 50%도 되지 않는 듯싶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뽑아만 주면.. 하고 실리콘밸리 startup에 지원하지만 막상 다니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쪽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은 듯하다.
Ageism이란 연령차별주의라는 말로 나이를 이유로 하는 잘못된 사상이나 차별 또는 그에 따른 가정들이다. 예를 들면, 나이가 많으니까 새로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할 거야 또는 연장자는 잔소리가 많을 거다라고 하는 생각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들이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매년 Google, Meta처럼 큰 회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Diversity Report를 발간한다. 회사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현재 공존하고 있나 또 최근에는 얼마나 많이 입사했나 그리고 회사는 그들의 커리어를 도와주는 것에 얼마나 중점을 맞췄나 하는 것이 다양성 리포트의 주요 골자다. 다양성리포트는 회사 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람이 가능하도록 오픈되어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주목하고 있는 다양성은 인종과 성별이다. 모든 리포트들이 회사에 얼마나 다양한 인종이 다니고 있고, 또 여자와 남자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통계치를 내놓고 있다. 아래의 예는 Meta에서 가저온 것이다. 전체적인 Meta의 Diversity Report는 여기서 관람할 수 있다. 참고로 Google의 Diversity Report는 여기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요즘은 다양성에 LGBTQ와 장애인 고용등에 많은 정보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나이를 주제로 한 믿을만한 자료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나이에 대해서는 다양성차원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ageism이 실제로 실리콘밸리에 있는지,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는 정확히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우선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조사한 인구통계조사를 봤을 때 45세 이상의 연령은 전체적으로 그렇게 적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인구통계조사에 나온 사람들이 다 Tech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추측으로는 샌프란시스코를 제외한 South Bay에 많은 전통적 Tech회사들이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 안에서도 샌프란시스코와 남쪽과는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크고 전통적인 회사들 - Cisco, Juniper Network, HP, PayPal, EBay, Apple 등이 상주하고 있는 한 전체적인 실리콘밸리의 나이 분포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보통 "실리콘밸리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최근 10년간 거론되는 젊은 Social network 회사들이나 최근 인기 있는 Startup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현상을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이런 회사의 거의 모든 상품들이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런 상품을 만드는 곳에 젊은 사람이 대다수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유를 굳이 꼽자면 이런 젊은 기업에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꺼리는 것이 첫 번째 큰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여러 해 동안 면접을 보면서도 실제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면접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두 번째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퇴사가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경력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임으로 아무래도 이직이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고, 또 금전적인 여유가 되면 쉽게 퇴직을 결정할 확률도 크다.
세 번째로는 실리콘밸리의 환경 때문이라고 본다. 우선 나이가 45세 정도면 자녀의 학교등이 이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샌프란시스코나 근처 East Bay(Oakland, Fremont)등에는 몇몇 곳의 지역을 제외하고는 좋은 공립학교를 찾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나는 학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대다수의 자녀를 가진 직원들은 자녀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학교문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또 가파른 집값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아무래도 혼자나 아이가 없는 커플이 샌프란시스코에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경우는 많아도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그런 환경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복합적인 지역적 특성들이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실리콘밸리가 별로 좋은 옵션이 되지 않는 듯하다.
마지막으로는 회사에서의 보이지 않는 나이 제한이다. 내가 말한 Ageism이 솔직히 없지는 않다. 회사에서 면접을 본 후에 "우리 회사와 잘 맞지 않는 듯하다." 등의 이유를 들며 거절하는 경우들이 실제로 주위에 종종 있었다. 나도 경험한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경험으로도 거의 모든 팀원이 20대에 게임을 좋아하고 회사가 끝나면 같이 술 마시고 밤새 일하는 일이 많다고 소개하는 회사에 면접을 보고 나면 “cultural fit"을 이유로 거절을 받았다.
물론 나이가 많은 엔지니어들도 갈 곳은 있다. 실리콘밸리회사에도 그렇지만 좀 더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가령 Oracle, Intel, IBM 등 건장하고 큰 회사들에서는 나이가 좀 있는 엔지니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많은 Telecommunication 회사들 AT&T, T-Mobile 등 통신회사들 또는 은행 같은 대기업들에는 중년의 엔지니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엔지니어들은 전통적으로 4년제 대학을 나오거나 아니면 그 산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전문가들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전통적인 회사들은 시간을 가지고 경력을 쌓은 사람들을 우대한다. 빠르게 변하는 실리콘밸리에서 뭐든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우대하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럼 스타트업에 다니다가 이런 회사로의 이동이 쉬운가? 그것은 본인의 기술에 따라 다르다. 앞서 말했던 회사들이 사용하는 기술이 다르고 원하는 인재상이 다르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통신회사나 은행등에 이직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의 기술이 좀 더 보편화된 것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실리콘밸리에서 행복하게 젊은 친구들과 일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조언이다. 이것은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 살아남고 싶다 가 아니라 오래 즐기고 싶다는 마음 가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이런 문장은 머리에서 지워버려라. 나이에 상관없이 좋은 점은 배우려 하고 더 많이 아는 것은 나누는데 집중해라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너무 집중하지 말라. 남들은 별로 신경 안 쓴다. 본인만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영어로 Don't take yourself too seriously라고 한다.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즐기면서 일해라
어디서나 인생철학 늘어놓지 말고 자기 자랑하지 마라. 이런 사람들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한다
배우는데 늦은 나이는 없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을 항상 시도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배우는 것"도 기술이다. 배우는데 익숙해지면 뭐든 배울 수 있다
변화에 맞춰 자신도 변해야 한다. 꼭 필요 한 기술을 배우고, 본인의 기술이 별로 소용이 없으면 재빨리 다른 것을 배워라
지식을 나누는데 노력을 기울여라. 사람들은 이러한 노력에 좋은 점수를 준다. 나만 이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없으면 안 되겠지.. 는 착각이다. 이런 것에 연연하면 남들에게 오히려 인정받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45세 이상 구직자들은 큰 회사에 입사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많이 있고 도움을 받을 기회도 많다
참고로 여기서는 입사전형동안에는 나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이력서에도 나이나 사진을 첨부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를 졸업한 년도를 꼭 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혹시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서 기피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사항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빼도 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정말 중요한 것은 뭐든 것이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멋진 중년으로 남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즐겁게 회사생활을 할 수 도 있고, 젊은 사람들이랑 일하기 피곤하고 힘든 사람이 될 수 도 있다. 다 본인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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